감사

by 지로 Giro

감사는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행복이 먼저 오고, 감사가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감사가 먼저 도착해
그 자리에 행복을 조용히 앉혀 놓는다.


나는 오랫동안 착각했다.
기쁠 때 감사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이 괜찮아진 뒤에야
비로소 고개 숙일 수 있다고.
하지만 삶은 늘 그 반대였다.


무너진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친 날에,
작은 숨 하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가 먼저 와서 나를 붙잡았다.
감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상처를 단번에 봉합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픈 자리에


조용히 손을 얹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해주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늘 완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약한 빛 하나로
다음 발걸음을 결정한다.


그 빛에 감사하는 순간,
어둠은 더 이상 적이 되지 않는다.
시련은 나를 꺾지 않았다.
다만 속도를 늦추었고,
슬픔은 나를 부수지 않았다.
다만 무엇을 잃어서는 안 되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렸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에게,
오늘도 멈추지 않고 흐른 하루에게.
말이 먼저였고,
마음은 그 뒤를 따라왔다.
감사는 그렇게 연습이 된다.
처음엔 공허한 소리 같지만
반복될수록
마음은 조금씩 방향을 바꾼다.
에너지는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임을
나는 뒤늦게 알았다.
기쁨과 감사는


나눌수록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온다.
더 조용하고, 더 단단한 모습으로.
삶은 혼자 버티는 일이 아니다.
도움 없이 살아온 사람은 없고,
완벽해서 살아남은 생명도 없다.
자신감이 없어도 괜찮다.
의욕이 바닥나도 괜찮다.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이유가 된다.


세상에는
불합격한 생명이 없다.
다만 각자의 속도로
살아갈 뿐이다.
2025년 한 해를 지나오며,
부족한 나의 글을
묵묵히 읽어주신 여러분께
조용히 감사의 마음을 남긴다.
감사는
삶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오늘을 떠나지 않겠다는
작은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 하나로.


우리는 다시,
조금씩 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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