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늘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것은 흰 벽처럼 조용히 서서,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만 길게 늘린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그 그림자 위에 내가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잃어버린 것들은 사라진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물속으로 가라앉은 돌처럼, 형태를 바꿔 무게만 남긴 채
몸의 깊은 곳에 잠겨 있다.
우리는 그 무게로 걷는 법을 배운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회복은 봉합이 아니다.
찢어진 자리를 꿰매는 일이 아니라
그 틈으로 바람이 지나가도록 허락하는 일이다.
차가운 공기가 스칠 때마다 통증은 생기지만,
그 통증 덕분에 우리는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어떤 감정은 말이 되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은 혀를 지나지 않고
장기처럼 몸 안에 눌러앉는다.
혼자 삼키는 밤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조금씩 깊어진다.
깊어지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견딤이다.
유대는 늘 칼날을 품고 있다.
가까울수록 날은 선명해지고,
베일 때마다 피는 더 붉어진다.
그러나 그 붉음 덕분에
우리는 무엇을 살리고 싶은지 알게 된다.
아픔은 선택을 남긴다.
버릴 것과 지킬 것을.
성숙은 완성형이 아니다.
그것은 수없이 멈추고, 앉고, 다시 일어나는 동작의 반복이다.
세상에 몸을 맡긴 흔적들이
주름처럼 쌓여
마침내 한 사람의 표정이 된다.
지금, 당신이 치료 중이라면
서두르지 말자.
상처가 아물기까지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허락이다.
느려도 괜찮다고,
오늘은 여기까지여도 충분하다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은
불씨처럼 작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불씨가 손바닥 안에서 따뜻해질 때,
하루는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흔들려도 괜찮다.
우리는 그렇게,
부서지지 않은 채로
조금씩 사람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