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해가 지는 시간에 서 있지 않다
하지만
노을을 미리 사랑하기로 했다
나이는
달력에 매달린 숫자일 뿐
마음은 아직도
바람을 배우는 돛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내려올 때”라고
그러나 나는 안다
은퇴는 무대의 불이 꺼지는 순간이 아니라
조명이 나를 비추기 시작하는 시간이라는 걸
젊음이 불꽃이라면
후반의 삶은 장작불
조용히 오래 타오르며
더 깊은 온기를 남긴다
주름은 패배의 기록이 아니라
웃음과 눈물이 지나간 강의 지도
그 위에 다시
작은 배 하나 띄워도 된다
배움은 끝나는 법이 없다
머리는 희어져도
꿈은 철들지 않는다
심장은 여전히
두 번째 봄을 준비한다
걱정은 안개처럼 밀려오지만
해는 늘 안개 뒤에 있다
한 걸음만 내딛으면
빛은 스스로 길을 만든다
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
푸르던 시절을 지나
향을 품는 열매가 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의 후반전은
남은 시간이 아니라
깊어질 시간이다
인생이라는 긴 이야기 속에서
지금부터가
가장 나다운 장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