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라는 씨앗

by 지로 Giro


어떤 날은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마치 깊은 강물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돌처럼.
빛은 보이지 않고, 물의 압력만이 조용히 몸을 누른다.
그러나 강물의 법칙은 단순하다.
바닥까지 내려가면,
이제 남은 일은 다시 떠오르는 것뿐이다.
나는 그 사실을
감사라는 작은 단어에서 배웠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한다고.
하지만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행복이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먼저 온다는 것을.
마치 겨울의 땅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감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삶을 바꾸기 시작한다.
어느 날 나는
습관처럼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책상 위의 낡은 시계에게도
손에 쥐어진 작은 플라스틱 병에게도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빛에게도.
처음에는
그저 빈말처럼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말을 반복할수록
마음속의 공기가 조금씩 따뜻해졌다.
감사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먼저 마음의 온도를 바꾼다.
좌절이 찾아오면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도 걸어갈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종종 흔들린다.
하지만 좌절은
우리를 부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찾아온다.
슬픔 역시 그렇다.
슬픔은 삶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소중한지
천천히 가르쳐 주는 어둠이다.
나는 이제 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아무리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때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한 뒤
나머지를 더 큰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것도.
바람이 나무를 흔들지만
나무는 바람을 붙잡지 않는다.
그저 흔들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람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혼자서 태어나지 않았고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다.
누군가의 손길과
누군가의 눈빛과
누군가의 조용한 지지 속에서
하루하루를 건너간다.
그래서 생명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키가 작아도
얼굴이 평범해도
자신감이 조금 부족해도
생명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이 세상에는
불합격인 생명은 없다.
다만 아직
자신의 빛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은 것들에게 말을 건넨다.
고맙습니다.
그 말이
또 하나의 씨앗이 되어
언젠가 내 삶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꽃으로 피어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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