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라는 계절이 우리 집에 들어왔다

by 지로 Giro


요즘 아이와 대화를 하며
나는 늦게서야 깨닫는다.
아이에게 조언을 하는 것보다
내 생각을 설명하는 것보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 이런 상황도 있구나.”
“많이 괴로웠겠구나.”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볼까?
엄마랑 같이 한번 연구해 보자.”
이런 말들이
생각보다 훨씬 늦게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아이는
어릴 때의 나처럼
유난히 예민하고 촉이 좋은 아이라서
세상의 작은 변화도
더 크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사춘기는
어느 날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온
하나의 계절 같다.
어제까지는 맑은 봄이었는데
어느 순간 바람이 거칠어지고
하늘의 색이 달라진다.
아이는 이유 없이 예민해지고
부모의 말은
자꾸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다.
그때 우리는 종종 묻는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하지만 사춘기는
문제가 아니라
성장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기후 변화다.
씨앗이 땅속에서
껍질을 깨고 올라올 때
흙이 잠시 흔들리듯이
아이의 마음도
자라는 동안
잠시 흔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춘기를 지혜롭게 건너는 방법은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바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떤 날 아이는
문을 닫고 침묵 속에 숨어버린다.
하지만 그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정리하는
작은 동굴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 아이는
사소한 말에도 화를 낸다.
그 분노는
부모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처음 만나는
감정의 파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여백이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여백.
아이의 선택을
조금은 기다려 주는 여백.
사춘기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
조금의 거리를 만든다.
하지만 그 거리는
멀어짐이 아니라
자라기 위한 공간이다.
나무가 자라려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자리가 필요하듯
아이에게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할
자기만의 하늘이 필요하다.
부모는
그 하늘을 대신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할 수 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이라는 등불이 되는 것.
“괜찮아.”
“엄마는 네 편이야.”
그 말 한마디는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항구가 된다.
사춘기는
폭풍이 아니라
날개가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붙잡기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말해 주면 된다.
“천천히 날아도 괜찮아.”
그 아이가
자기만의 하늘을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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