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 정원 그리고 그뒤 이야기

by 지로 Giro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10 시간이란 긴 시간을 잔 뒤에도, 꿈의 조각은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아침의 햇살은 창가를 쓰다듬었고, 나는 여전히 공허한 머릿속을 더듬었다. 꿈은 그렇게, 잊혀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하나하나 기억을 꺼내어 기록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그렇게 많은 걸 떠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했다.


문득, 지붕 위에서 웃고 있던 그 남자가 생각났다. 예전 집을 찾으러 갔던 날, 이미 철거가 진행 중이던 그 현장은 흔적도 없이 정리된 뒤였다. 그 후로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내 과거의 환영과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상하이의 그 집도 떠오른다. 이마에 상처를 입었던 그 집. 상하이 떠나기 1년 전, 아이들과 함께 다시 찾아갔을 때 외관은 그저 볼품없는 허물뿐이었다. 예전에는 정원에 수국을 가득 심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을 자랑했지만, 다시 찾았을 땐 잡동사니로 가득한 여유 없는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이웃과 친하게 지냈다. 종종 웃음이 오갔고, 작은 약속도 했다. 하지만 집을 내놓고 난 후, 그 집을 산 남자는 고위층에 뇌물을 준 죄로 붙잡혀갔고, 결국엔 지금의 주인이 샀다는 소문을 들었다. 옛 이웃은 내게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 나면 차 한잔 하자"던 말만 남아 있다. 그 약속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야 알겠다. 집이라는 건, 기억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걸. 그 집은 더는 나의 소유가 아니였지만, 나는 내 안에 그 시절의 정원과 수국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걸 빼앗을 순 없었다. 비록 그 남자가 웃던 지붕 위의 풍경도, 철거된 집도, 상처받은 기억도 모두 사라졌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기억 속에 다시 피워낼 수 있었다.


마치 한 번 지고 다시 피어나는 수국처럼, 나는 다시 마음의 정원을 가꾼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로 그 옛 이웃과 차 한잔을 나누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기억을 꺼내는 일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가볍게 하는 일임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