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인 줄 알았어요

국경 너머, 가족의 모양들

by 지로 Giro


국제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세상엔 참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이 많은 아빠와 젊은 엄마, 본처가 있는 남편과 아이의 엄마인 동거녀, 법적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어도 가족이라 부르는 사람들.

그런 조합은 더 이상 드문 이야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30살이 넘게 차이나는 부부도 있었고,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를 데리러 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하지 못해 종종 난처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할머니세요?” “이모님 맞으시죠?”

이런 질문 하나에 목소리를 높이는 아버지도 있었고, 선생님은 그저 난감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 장면들을, 한 발짝 물러서 지켜보곤 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가족의 정의가 조금씩 다르게 쓰이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큰아이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엄마가 외출을 하게 되어 내가 대신 픽업을 나갔다.

아파트 단지 앞에, 지긋한 나이의 여성이 아이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나는 별 의심 없이 말했다.

“할머니시구나.”


아이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 부인이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무 말도 못한 채,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머릿속으로 수십 번 그 말을 곱씹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걸까?’ ‘그럼 그분은… 누구지?’


며칠 뒤, 아이 엄마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이는 혼외자였고, 자신은 법적으로 남편과 아무 관계 없는 동거녀라고 했다.

하지만 법적인 부인과도 크게 싸우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득 TV 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불륜녀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는 본처, 눈물 범벅의 이별과 복수.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모두가 조금씩 체념하거나, 받아들이거나,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세상에는,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방식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걸.


이제 나는 더 이상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가족이란, 꼭 누가 누구의 엄마이고 아빠이고를 따지는 게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서 있는, 그 자리에 담긴 마음이라는 걸

이국의 작은 학교 앞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