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에는 종종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었다. 현지의 재벌 2세들이나, 갑작스럽게 부를 거머쥔 이른바 ‘벼락부자’들의 자녀들이었다. 어느 날, 내 친구 아들의 반에 한 아이가 한국 돈으로 400만 원이 넘는 고급 시계를 차고 등교했다. 다음 날엔 2,000만 원대의 시계가 등장했고, 그 다음날에는 무려 4억 원짜리 시계까지 모습을 드러냈다고 했다. 누가 더 비싼 시계를 차고 오느냐는 보이지 않는 대결이었다. 일종의 과시욕이었다.그리고 그 4억 원짜리 시계는 결국 3일째 되던날, 실수로 땅에 떨어졌다.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가며 작동을 멈췄고, 반 담임 선생님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곧바로 반 회의를 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비싼 물건은 학교에 가지고 오지 맙시다.” 학교는 학습의 공간이지, 부를 드러내는 전시장이 아니라는 그의 말은 단호하면서도 절제된 진심이 느껴졌다.아이들의 시선도 서서히 그 시계에서 멀어졌다. 그 순간, 과시의 열기는 조금씩 식어갔고, 모두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교실엔 다시 평범한 시간들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우리 학교는 교복이 있어 외형만으로는 누가 더 부자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운동 시간만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한정 판매된 고급 운동화, 심지어는 정식 매장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들이 운동장에 줄지어 등장했다. 그 뒤로 들은 이야기지만, 어떤 일본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짝퉁 운동화를 사줬다가 아이가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는 일화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주재원 가정이라고 해서 모두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대기업 소속이면 학비 전액 지원에 넓은 아파트까지 제공되지만, 중견기업은 사정이 달랐다. 학비 일부만 지원되기에 몇몇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본 학교에 다녀야 했다. 한 켤레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운동화를 산다는 것은, 어떤 가정에게는 여러 번 고민을 거듭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치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배움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음악, 수영, 미술, 연설. 아이가 꿈을 펼칠 수 있는 경험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투자라 믿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시계는 시간이 지나면 유행을 타고, 결국 손목을 떠난다. 하지만 진심을 담은 배움과 경험은 아이의 삶을 평생 밝혀주는 내면의 빛이 된다. 나는 그 빛을 믿는다. 그리고 그 빛이야말로 진짜 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