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나는 우리집 부엌의 요리사가됐다.

by 지로 Giro


나는 믿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막 만들어진, 따뜻하고 신선한 점심을 먹고 있으리라고.

엄마로서, 그 이상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2018년 10월 18일.

내 믿음은 차디찬 얼음처럼 깨져버렸다.


그날, 상하이 푸둥에 있는 대만 국제학교에서 급식 사고가 터졌다.

믿기 어려운 사진들이 돌았다.

곰팡이가 핀 재료들, 상한 고기, 썩은 채소.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건 충격이었다.

그리고 곧, 나는 뿔난 소처럼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주말을 보내던 나는,

그다음 월요일 아침,

학교 식당으로 향했다.

뭔가를 확인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다행히 매니저는 잘 아는 얼굴이었다.

별다른 말 없이 위생복, 장갑, 신발, 마스크를 내게 건넸다.

나는 그것들을 차례로 입고, 주방 뒤편 창고로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이미 주말 사이, 수습을 마친 듯했다.

깨끗한 채소들, 반짝이는 바닥.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문제는 고기였다.

그날 내가 손에 든 돼지고기는,

단단하게 얼어붙어 마치 둔기 같았다.

사람을 치면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5성급 호텔도 냉동고기 5년 된 거 씁니다."

누군가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안도했다.

그날 따라 나는 아이들의 도시락을 준비했으니까.


이후, 엄마들 사이에서 도시락 만들기 운동이 시작됐다.

그러나 오래 가진 못했다.

몇몇을 제외하곤, 아침마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일은 버거웠다.

나 역시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그 일이, 내 아이들을 지키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도시락을 시작한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지 않았다.

자주 체하던 증상도 말끔히 사라졌다.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 급식 사고는 상하이 내 국제학교들에 급식을 공급하던

대형 업체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 여파로 대만 국제학교의 교감과 몇몇 교직원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변화가 나에게 찾아왔다.

나는 그날 이후로 매일 아침,

아이들의 식탁을 책임지는 작은 부엌의 요리사가 되었다.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우는 게 아니었다.

그건 신뢰였다.

그리고 사랑이었다.


믿음을 배달하는 도시락.

그건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투쟁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