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러운 호스트 패밀리
사계절을 살았던 곳, 마음의 고향이라 여기고 사랑하는 나의 작은 도시.
영국 옥스퍼드는 가장 오래된 대학도시로 유명하죠. 규모는 작지만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명문 컬리지 같은 관광지 외에도 서점, 카페, 수많은 펍, 공원, 리버보트 등 곳곳에 매력이 있어요.
특히 개인적으로는 어학연수를 위해 지냈던 홈스테이를 통해 호스트 패밀리를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한 가장 큰 행운이었어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목수 아빠와 다정하고 뜨개질을 좋아하는 현모양처 엄마, 조용하고 의젓한 첫째 아들, 기타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브라우니도 맛있게 만드는 둘째 딸, 애교 많고 축구와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막내아들까지 다섯 식구가 사는 집에 거의 1년이나 머물었어요.
원래 홈스테이는 한 주만 계약하고 들어가는데 한 달을 더 늘리고 싶어서 호스트맘에게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더니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지내도 된다고, 예의상 하는 말일까 봐 경계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빈 말이 아니라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펜으로 내 이름에 특별히 표시해 뒀을 정도로 나를 하숙생으로 받은 것이 좋았다며 주방 서랍에 둔 캘린더까지 꺼내 보여줬어요. 정말 너무 놀랐죠. 집 안에 직접 뜨개질한 보라색 담요와 쿠션, 보라색 램프 등등 웬만하면 아무 색깔로 고르지 않을 아이템마다 보라색에 진심인 분인 걸 진작에 알아차렸기에.
아니 그나저나 진짜 1월부터 10월까지 허락하다니.
나 그럼 진짜 다른 플랫 안 알아보고 여기 눌러앉는다!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무슨 밥을 먹고살아야 하나 걱정이 컸는데 웬걸, 거의 네 달 연속으로 매일 같은 식단을 받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는 분을 만난 거예요. 광고에서나 볼 법한 아기자기하고 온화한 가정에서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한국 학생의 통과의례 수능을 치르고 사회생활로 잔뜩 찌들었는데 무려 저녁이 있는 일상과 매일 귀여운 인사에 잠들고 일어났으니 그렇게 충전한 에너지로 혼자서도 외로운 줄 모르고 여행을 다닐 수 있었나 봐요. 옷도 자주 세탁해서 단정하게 개켜 주시고 이불도 주말마다 세탁해서 침대 정리도 꼼꼼히 해주시고, 안전한 주택가의 소담한 집까지. 사려 깊은 사랑을 보여준 가족 덕에 정말 정서적으로 치유가 되고 인간적으로 배운 것도 많았어요.
언젠가 또 간다면 예전과는 다른 입장과 나이에서 느끼는 것이 다를 수도 있지만, 영국 답게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아침에 얕은 담장의 골목길을 다시 걷고 싶고, 해 질 녘에는 공원의 높은 나무 밑으로 달리기를 또 하고 싶어요. 옥스퍼드는 내가 나와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내기에 정말 최적의 소도시예요.
그 해, 아이폰6S로 남은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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