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 Dec 24. 2023

빠릿빠릿, 경력 만들기

처음부터 다 잘하는 게 더 이상한 거야

주문받고 커피도 내리고 음료도 만들고 디저트 데코하고 베이커리 구워서 제공하고 설거지하고 각종 기물 및 재고 관리하고 매장 청소하고...


꽤나 야무진 살림꾼으로서 이쯤이야 적응하면 별 것도 아닌데 처음에는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맞이하는 인사도 입에 잘 안 붙어서 어색했고 주문을 받는 자체로 긴장이 됐다. 포스에 입력된 수십 가지의 메뉴에서 해당 버튼을 찾는 것부터 허둥대며 손님을 기다리게 만들어야 했다. 각종 결제수단 및 작동을 파악하는 것도 쿠폰 제공 및 사용에 응대하는 것도 나날이 경험하는 만큼 늘긴 는다. 음료는 당장 레시피를 봐가면서 만들더라도 사용하는 기물이나 컵의 종류를 바로바로 알맞게 꺼내 쓰는 것부터 제조 시작인데 이것도 해볼수록 숙련이 되더라.


업무를 부지런히 익히려고 포스 화면이나 쇼케이스에 진열된 디저트와 음료 레시피를 사진으로 찍어와 옮겨 적으며 외우기도 했지만, 정작 이 일은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만들어보고 물건을 사용하고 닦아서 제자리에 두고, 모자란 비품은 창고 깊숙한 구석이나 높은 선반에서 찾아 낑낑거리고 꺼내서 채워놓는 것까지 모두 내 몸으로 자꾸 경험해 봐야 기억도 하고 동선도 효율적으로 움직여 시간 낭비와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일할 땐 일만 빠릿빠릿하는 편인데도 고객 서비스와 동료 간의 팀워크를 위해 얼른 능숙해지고 싶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으니 스스로 조급한 심리적 부담이 다시 큰 부작용이 되지 않도록 속으로 나를 다독이며 되뇐다.


‘처음부터 빨리 다 잘하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돼.’

‘하루하루 늘고 있으니 괜찮아, 괜히 위축되지 마.’

‘서두르다가 다치지 말고.‘




단 것을 안 좋아해서 형형색색 모형으로 보일 뿐인 수 십 가지의 디저트 이름을 차츰 분별해 가며, 레시피를 확인하지 않고도 척척 만들 줄 아는 음료도 늘려가며, 우유나 베이스 용액을 정해진 용량대로 딱 떨어지게 붓고 뿌듯해하며, 나름 예쁘게 띄운 라떼아트에 감탄하는 손님 덕에 조마조마했던 마음 안도하며


부지런히 경력을 만드는 중

작가의 이전글 카페알바의 꿈, 그윽한 바리스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