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에 어떤 이야기도 시작할 수 이들을 위한 성급한 제안
* 이 글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마지막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어떤 마지막 문장은 처음으로 돌아가 글 전체를 첫 문장부터 끈기 있게 읽게 하는 힘이 있다.
나에게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그랬다. 1, 2회 때 극에 몰입하지 못해 계속 보기를 중단했던 이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우연히 보게 됐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다른 대안이 없어 보기 시작했다가, 극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염미정이 내뱉은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미쳤나봐.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처음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현실에 순응도, 반항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로, 현실을 간신히 견뎌내는 것처럼 보였던 그녀가, 어떻게 저렇게 환한 미소로 자신을 가득 채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게 된 걸까. 그 전모가 궁금해졌다. 결말이 아니라, 회차를 거듭하며 그녀가 거쳐온 역사를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다시는 보게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결심을 뒤집고, 종영된 드라마를 첫 회부터 보기 시작했다. 염미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떻게 그녀는 자기 존재가 사랑으로 가득 찼다고 느끼게 된 걸까. 그렇게 다시 보게 된 <나의 해방일지>의 첫 회는 매 순간이, 모든 대사가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이야기를 접할 때 결말부터 보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어떤 이야기든지 작가가 가지각색의 비법과 장치를 써서 신중히 고안해낸 흐름을 따라가는 건 마치 잘 설계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몸에 힘을 빼는 것이다. 느린 속도로 정점을 향해 올라갈 때는 손잡이를 꼭 쥐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다스리고, 최고점에서 낙하한 뒤 빠른 속도로 내달릴 때에는 거친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기구에 몸을 맡기면 된다. 물론 몇 코스를 앞서서 예측할 수도 있지만, 최고점을 향해 올라가는 롤러코스터에서 종착점을 떠올리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마찬가지로 격정에 휩싸인 인물을 보면서 그가 맞게 될 종착지를 고민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 결말을 맞추는 데서 오는 희열이 있겠지만, 그것은 이야기가 주는 흥미진진함의 극히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롤러코스터와 달리 책이나 드라마, 영화 속 이야기는 언제든지 중도 하차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초반 몰입도에 따라 결말까지 갈 수 있는지 여부가 일찌감치 판가름 난다. 그래서 요즘은 자극적인 장면이나 궁금증을 자아내는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책 소개와 함께 책의 첫 문장을 함께 소개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나 장면이 첫 10분 이내에 등장한다. 도입부에 따라 확보되는 청중의 규모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을 꾸준히 목격한 이상 작품 구상에 이 점을 간과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작품이 읽히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감수하는 용기.
마지막 문장 내지 마지막 단락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런 현상과 괘를 같이 한다. 인생에는 결말이 없지만, 이야기에는 결말이 있다. 이야기의 결말에는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는데, 현실에서 지워질 위기에 처한 단면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준다. 마지막 문장은, 작가가 이야기의 시작부터 차곡차곡 문장을 쌓아가면서 스스로 명징하게 발견한 세계를, 극 중 여러 고난과 기복을 거치면서 농익은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된 작중 인물이 고도로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마지막은 어떤 엔딩이든 상관없이 아름답다. 독자는 아름다움을 한가득 머금은 채 마지막 장을 덮는다. 이야기에 몸을 맡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런 행운을 아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롤러코스터에 몸을 맡기기에 현대인은 많이 조급하다. 당장 스마트폰을 켜면 펼쳐지는 무한한 콘텐츠의 바다에서, 생애주기별 달성 목표에서 벗어나 매 순간 최선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직접 기획해내야 하는 세상에서, 10분 동안 자신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 이야기에 몇 시간 내지 며칠을 맡길 마음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롤러코스터에 속도가 붙기 전에 안전하게 하차하기를 선택한다. 나에게 <나의 해방일지>가 그랬고, 초반 몇 페이지를 앞날개로 표시한 채 책장에 꽂힌 많은 책들이 그랬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초반의 밋밋함으로 이야기 전체를 포기하느니 결말부터 보는 건 어떨까. 마지막 한 단락에 밀집된 아름다운 세계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을 주진 않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결말 자체가 아니라, 완결된 이야기를 겪어내는 거니까. 그 과정에서 그전에 조명받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감각할 수 있는 세계가 생겨나는 거니까.
그래서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완주하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가 있다면, 마지막 한 단락, 마지막 한 컷부터 시작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스포일러’라는 이름으로 결말 먼저 보는 행위를 신성하지 않다고 여기지 말고, 끝까지 읽고 싶은 궁금한 이야기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스포 당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당장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게 만드는 조급함을 잠재울 수 있다면, 스포 따위(?)가 대수겠는가. 중요한 건 이야기 전반에 타고 흐르는 서사인데, 그 흐름에 올라타 이야기를 충분히 겪어내는 것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