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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리 Nov 25. 2022

다정함, '기꺼이 조금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조 코헤인)>을 읽고

그냥  다정하게 대하면 안 될까요? 다들 혼란스러워서 그런  같아요. … 그러니 서로에게 조금만 다정해지자고요!” 
지금 우리에게  이상 필요한  있을까.


가끔 좋은 글을 읽다 보면, 미처 정리되지 않고 스쳐간 경험을 되짚어보는 행운을 누린다.  코헤인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읽으면서 십수 년  길거리 인터뷰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대학 시절  언론사의 신년 특집기사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새해 특집호로 거리의 시민들 100명을 인터뷰하여 통계를 내고 그중 인상 깊은 사연을 기사로 작성하는 일이었다. 인턴 4명에게 각각 인터뷰이 25명씩이 할당되었다. 활동 구간이 겹치지 않도록 조율했는데, 내가 맡은 곳은 광화문에서 종로를 거쳐 동대문까지 이어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데이터를 쌓은  회의실에 모여 서로의 취재기를 공유했다. 유난했던 추위에 거리에서 정처 없이 벌벌 떨어야 했던 것보다  가혹했던 , 갈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어렵사리 붙잡고 말을 걸었지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거절당하는 경험이었다. ‘거리 인터뷰' 컨셉이지만, 추위 때문인지 거리에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점심시간이 되자 인근 회사의 직장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왔지만, 오전 내내 기다렸을 숨통 트일 시간을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낯선 이에게 내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실내로 들어가야 뭐라도 진행될 것임을 알고는 인근 상가나 공공시설을 지키는, 한산함에 무료함을 느끼는 이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관광안내소에서 외국인들에게  안내를 해오신 노년의 자원봉사자, 수십 년간  자리에서 군밤을 팔며 자녀들을 대학까지 졸업시킨 노점상인, 중동의  국가에서 이주하여 동대문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외국인 상인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예상 밖의 이야기들을 접하는 놀라웠다. 이들은 내가 오길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자신의 사연을 줄줄이 풀어냈다. 특별한 비법이 있었던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낯선 이와 대화하는 비법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선언하지 않고 질문할 , 인생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떠올리는 질문으로 대화의 질을 높일 , 무엇보다 경청할 ! (이는 이들과의 대화가 기사 목적의 인터뷰이자, 주제 또한  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마구 눈물이 났다. 그러면 인터뷰이들은 ‘ 이런 걸로 우느냐   아니라는  웃어넘기면서도, 마음  켠에서는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 같은  느끼는 듯했다. 나는  우연의 대화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마감을 지켰다는 점에서도…)


인터뷰가 이뤄진 때는 아이폰이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2022년에 같은 미션을 수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언론사 이름을 밝히는 순간부터 반응이 환영과 적대로 명확히 갈릴 것이다. ‘적대'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다면 빠르게 사과하고 뒤돌아서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미션 완수에 골몰한 나머지 요청을 이어갈 경우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대화가 성사된다 해도 내가 갖고 있는 편견들로 인해 상대의 말에 몰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주제들의 경우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공고한 신념 일부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은 두려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를 저자는 ‘기생충스트레스 반응'이라고 설명했는데, ‘상대 진영' 생각들로 인해 자신의 생각이 ‘오염'되는  공포심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충분한 자기 성찰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에서 쉽게 차용한 생각일수록 이와 상충되는 생각을 마주하면 공격적으로 대처하게 된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생각일 경우 공격당하는 것이 자신을 넘어 자기 존재 자체라고 느껴지는 만큼, 이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 강한 공격성을 띠곤 한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양분된 요즘 사회는 사안 하나하나를 두고  진영이 전쟁을 치르는 듯한 형국이다. 전쟁에서 선명하지 못한 입장과 타협하려는 시도는 적에게 승복하는 것이기에 용납될  없다. 결국 진영 안에 갇힌 ‘우리' 승리를 위해 ‘그들' 생각을 공격적으로 제어하는데, 이런 대응 수없이 반복되다 보니 언제부턴가 사회 전체가 공격 태세에 갇힌 모양새다.  


공간의 제약 없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 스마트기기도 고려사항에서 빼놓을  없다.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상대에게 말을 걸기 전에 반드시 상대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건 기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육체만 거리에 있고 정신은 스마트폰 화면이 보여주는 세계 어딘가를 유영할 수도 있다. 시선은 스마트폰에, 귀는 이어폰 소리에 집중된 사람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해야 할까. 요청할 엄두를 낼 수는 있을까.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에서는 도시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는 개념을 보여준다. 이는 높은 인구 밀집도를 보이는 도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인풋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완화하도록 상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거리의 낯선 이들에게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협력 본성을 강화하는 예로 제시된 사례이지만,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21세기에는(어빙 고프먼은 20세기의 학자이다) 낯선 이를 지나쳐 보내는 행동을 새로운 물리적 환경 맥락에서 이해해야  것이다. (이런 점에서  표지에 적힌 ‘예의 바른 무관심의 시대, 연결이 가져다주는 확실한 이점들' 변경이 필요해 보인다.) 거리의 사람들을 인간 진화를 이끌어온 ‘협력 의지' 기대어 이해할  있었던 것은 거리를 걷는 동안 우리의 관심이 ‘잉여' 상태에 있기에 베풀  있는 배려였다. 하지만 거리를 걸으면서도 최신 영화를 시청할  있는 상황이 되면 우리가 낯선 이에게 베풀  있는 것이라고는 신체적 충돌이나 접촉 없이 상대를 무사히 보내면서 자신의 오락거리를 즐기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타인의 존재를 염두에  ‘협력' 달리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의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축소했다는 점에서 인간이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해 채택한 ‘협력' 폐기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시선을 빼앗길  마주 걸어오는 이의 얼굴을 확인할  없다.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타인은 '얼굴을 잃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역사적 사례를 들어 한 사회에서 위협이 가해졌던 대상모든 이방인이 아니라 '얼굴 없는 이방인,'  내집단과 직간접의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들이었음을 지적한다. 그만큼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행위는 얼굴을 인식하는  이상의 효과를 가젼온다. 과거에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얼굴 없는 자들'에게 위협이 가해졌다면, 이제는 오프라인에서조차 타인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에서 관심을 거두고 있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 ‘뉴노멀' 급부상하면서 낯선 이와 말을 섞을 기회마저도 희박해졌다.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내야 했던 취준생 시절 편의점 직원과의 대화를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여겼던 일도 까마득하다.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이제는 편의점 직원 자리를 소셜미디어가 대신하지 않을까. 이러한 행동이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현상이  , 낯선 사람에 적대감을 표하는 일이 늘고 사회안전망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있다.


최근 택시를 탔다가 운전기사분의 하소연을 들었다. 손님들에 말을 걸었다가 카카오택시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일을  차례 겪고 나니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걱정된다고 했다. 기사님의 (?) 풀어 드리고 싶어 계속해서 여쭤보았더니 이야기가 한 보따리였다.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심정이 복잡했다. 자차가 없던 시절 야근을 마치고 택시 타는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기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리액션' 좋은 편이어서   이야기를 시작한 분들은 내리기 직전까지 자신의 레퍼토리를 이어가셨는데, 너무 피곤한 날이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맥락이 전혀 다른 분의 인생사를 듣는  재미있기도 하고, 늦게까지 고생하시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렸다는 보람(내지 자기만족) 이야기를 끊는 법이 없었다. 건성으로 들을지언정 이야기가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카카오택시 도입으로  일말의 불편함이, 낯선 이를 대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반응이 확대 해석되어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일으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피할 방도가 없어 참았던 일들에, 이제는 피할  있는 길들(별점 매기기, 어플을 통한 호출과 결제 ) 생겼고, 이러한 편의에 많은 사람이 기대면 기댈수록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문화도 변화되고 있다.  문화의 영향은 기존에 전혀 다른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갖고 있던 사람마저 바꾸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느 순간부터 택시기사님이 승객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행위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비상식'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낯선 이와의 대화야말로 새로운 세계를 배울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세계와 존재에 노출된 사람일수록 안도감을 느끼고 타인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기 확대를 통한 배움과 성장을 이뤄낸 근간이라고 주장한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낯선 이들과의 교류가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세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같다. 어디든 혼자 다니다 보면 2 이상의 무리에 초대받는 일이 많았다. 초대자는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말동무가 되어준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셨을 테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상황이 역전되어 있었다. 호기심보다 불편함이 커질 때쯤이면 슬그머니 떠날 구실을 찾았고 예의를 갖춰 감사를 전하고 작별을 고했다. 이런 모든 의외의 만남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삶을 알게 되는 데서 비롯된 것도 있었지만 미지의 영역에 안전하게   내디딘 데서 오는 만족감도 한몫했다. 낯선 사람에게는  걸지 말라는 ‘사회규범' 어기고 쟁취한 행복이라는 점에서 오는 쾌감도 빼놓을  없을 것이다.  


일회성 만남이라는 점에서 당시에는 과소평가했지만, 일상에 점점이 찾아오던 만남들이 코로나 시절을 거치면서 속수무책으로 사라지자  진가를 재평가하게 된다. 엄격한 방역지침으로 외부 활동이 가로막히자 찾아온 고립감과 우울감, 외로움 등의 해결책을 처음에는 친밀한 관계 형성에서 찾았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도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체를   없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가늠할  있었다. 그것은 낯선 , 특히 나와 전혀 다른 삶의 맥락과 생각을 가진 이들과의 마주침, 가벼운 대화, 그리고 초코바나 캔디처럼 작지만 달콤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였다. 친밀한 관계도 결국은 다방면으로 확대된 사회관계망 안에서 위력을 발휘할  있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 영향이나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확대가 없었다면, 그래서 이런 마주침들이 계속해서 완충제 역할을 해왔다면, 이들이 각종 미디어에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집단으로 뭉뚱그려져 회자될  좀더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가정은 가정일 , 우리는 현실에 뿌리를 내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브레이버엔절스(Braver Angels) 사례는 문제의 원인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려는 시도이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동수로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워크숍을 진행하는 모습이 묘사된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당의 지지자가 되어  자리에 참석한 상황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밀려오는 것은 언제 어떻게 상대파로부터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다음은 상대로부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인정을 받아내야 한다는 조급함이었다. 브레이버엔절스도 이런 점을 간파하여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한 상태에서,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대화가 이어질  있도록 활동 단계별로 적절한 질문과 대화 규칙을 세심히 마련하고 참여자들이 따르도록 유도했다. 대화에 참여한 대다수가 상대를 악마화하는 데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관과 별개로 그들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으며 재참여 의사가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타인을 ‘예측하지 않고 ‘경험'함으로써 그들을 향한 편견이 줄고 좀더 넓은 세계를 인식하게  것이다. 물론 정치 영역에서는 선거에 따른 승패가 있고 이에 따라 정책 결정에 한쪽의 의사가 더욱 강력히 반영될 것이며, 원치 않는 정책이 추진되는  따른 감정적인 대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예처럼, 당장의 불편함은 차치하고, ‘워크숍에서 만난 00  상황을 두고 뭐라고 이야기할까?’ 식의 궁금증을 갖는 것만으로도 한 발짝 나아간 것이라 생각한다.


공동체 붕괴, 원자 상태로 고립된 개인들이 사회 문제가 되면서 ‘환대'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한다. 저자들에 따라 다양한 환대의 태도를 제시하는데,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은 다음과 같았다. 시어도어 젤딘의 <대화에 관하여>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내가 관심을 가진 대화 유형은 기꺼이 조금 다른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대화다. 이는 언제나 그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하나의 실험이다. 위험을 수반한다. 모험이다…. 이해할 수 없거나 불쾌한 사람한테서 감탄스럽거나 감동스러운 뭔가를 발견하는 것 또한 매우 큰 만족을 안겨준다고 나는 주장한다. 돌밭에 숨은 금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은 가장 흥미진진한 도전 가운데 하나다.

처음부터 완전한 연결을 기대하기보다는 호기심을 갖고 조금씩, 그러나 끈질기게 낯선 이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 지금 당장 변화의 수혜자가 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미래 세대를 위한, (혹은 인류를 위한)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이어가야  태도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압도적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후반부에서, 개인의 무한 욕망 추구로 모든  혼란에 빠지자 평소 조용하고 유약해 보이기만 했던 인물이 절박하게 외쳤다. “그냥  다정하게 대하면 안 될까요? 다들 혼란스러워서 그런  같아요. … 그러니 서로에게 조금만 다정해지자고요!” 지금의 우리에게  이상 필요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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