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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보리 Nov 08. 2023

당신은 어떤 산을 오르고 있나요

<여덟 개의 산> 영화와 책을 감상하고

“세상의 중심에는 높은 산이 하나 있다고들 하죠. 메루산이에요. 이 메루산 주변에는 여덟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가 있어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죠. … 여덟 개의 산을 돌아본 사람이 많은 것을 깨달을까요? 아니면 메루산 정상에 올라본 사람이 더 그럴까요?”(책 p. 210-211)


랫 동안  우물을 파면서 자기를 알아가는 사람도 있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자기에게 맞는 우물을 찾아내려는 사람도 있다.  우물을 파는 사람은  우물이  것이 맞는지 되묻는 불안을 마주하고, 여러 우물을 떠도는 사람은 언제쯤 진정한 내 것을 찾게 되는지 조바심을 낸다. 파올로 코녜티의 소설이자 최근 개봉한 동명의 영화 <여덟 개의 >에서 제기하는 ‘메루산과 여덟 개의 산’ 질문을 듣는 순간 자연스레 나의 인생은 여러 산들 중 어디쯤에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메루산 정상에 서는 일과 여덟 개의 산을 떠도는  중에서, 혹은 평생을 ‘()사람으로 살아낸 브루노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히말라야까지 떠난 피에트로 중에서 어느 쪽에  감정을 이입하는지에 따라 자기 삶의 궤적을 가늠할  있다. 나는 초반부터 끝까지 철저히 피에트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특정한 일을 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스파크’가 튀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작가, 작품 등을 ‘덕질’하는 이들이 있다. 갓 태어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탐색하는 아이처럼 아무 이유나 조건 없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이 별스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마주한 세상이 무서워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세상 구경을 즐기기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소위 성공한 이들은 누구에게나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이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게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혼의 단짝을 알아보는 능력이 언제 어떻게 발현되는지 좀처럼 갈피를 잡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작은 일이어도 좋으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조언만큼 막막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피에트로도 마찬가지였다. 타고난 체력과 강인한 정신으로 이탈리아의 험준한 알프스 산속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서 현명하고 용기 있게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자기 인생을 펼치는 브루노 앞에서 피에트로는 계속 움츠러든다. 그는 서른이 넘도록 변변찮은 벌이에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언젠가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만 막연히 갖고 있는 자신을 ‘반은 소년처럼, 반은 어른처럼’ 살아왔다고 평한다. 어릴 적 아버지, 브루노와 함께 빙하를 보러 가던 길에 극심한 고산병 증상으로 크레바스를 건너뛰지 못하고 하산한 기억은 피에트로에게 트라우마로 남는다. 자신이 산행을 망쳤다고 자책하며, 자신과 달리 어려움 없이 크레바스를 뛰어넘은 브루노를 떠올리며, 피에트로는 은근한 질투심을 느낀다. 빙하로 뒤덮인 산봉우리 정상에 서지 못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인생 곳곳에서 펼쳐지는 크레바스를 뛰어넘지 못한 채 웅크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의 유지와 브루노의 압박에 떠밀리다시피 하여 피에트로는 브루노를 도와 어린 시절을 보낸 알프스 산자락에 오두막집을 짓는다. 몇 개월간 도시를 떠나 산에 머물면서 쓰러져가던 기존 건물을 허물고, 비바람을 뚫고 노새에 자재를 실어 나르고, 육중한 돌과 나무를 들어 올려 벽을 짓고 지붕을 올리면서 피에트로에게 변화가 생긴다. 도시에서 웅크리고 있던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켜면서 활력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일하는 틈틈이, 아버지와 함께 등반하지 못했던 봉우리를 하나씩 오르면서 산에 갖고 있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찾는다.


무엇보다, 브루노와 끈끈한 우정을 쌓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보고 챙기는 세심함을 갖추었음에도 이를 세상과 연결 짓고 확장시키는 데 소극적이었던 태도를 극복하고, 매해 여름마다 함께 지은 오두막을 찾아 브루노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다른 문화권의 고산 지대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궁금해하며 히말라야로 배낭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글로 써서 첫 책을 펴내면서 안정감을 찾는다. 드디어 자기만의 산을 찾았다는 기쁨, 그 산을 착실히 오르고 있다는 뿌듯함!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피에트로는 브루노에게 선언하듯이 말한다. 내가 이길 거라고, 여덟 개의 산을 여행한 내가 평생을 산에서만 보낸 너보다 더 많은 것을 볼 거라고! (이 부분은 영화와 책이 다르게 나온다. 책에서는 “둘 중에 누가 더 잘될까?”라는 브루노의 질문에 피에트로는 “너.”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브루노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인다.) 그의 지나칠 정도로 당당했던 승리 선언은 모든 확신이 그렇듯 명백히 빗나갔음이 밝혀진다. 자신의 메루산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바로 브루노의 죽음과 함께.


끝까지 고집스럽게 산을 지키던 브루노가 최악의 폭설로 목숨을 잃은 뒤에야 피에트로는 자신의 메루산이 어릴 적부터 수십 년에 걸쳐 브루노와 함께 쌓아온 우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를 따라 산을 타던 것을 그만둔 지 한참이 지나서야, 어떤 인생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산이 존재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나와 그의 인생에서 정중앙에 있는 산, 우리의 인생이 시작된 처음으로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높은 첫 번째 산에서 친구를 잃은 우리 같은 사람은, 단지 여덟 개의 산을 배회할 뿐이다.(책 p. 303)”


정작 곁에 두고도, 아니 항상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게 되는 존재들이 있다. 인생의 산을 오른다고 할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는 내내 어떤 일에 주력했는지, 세상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주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방식과 관련된 것들이다.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일들, 자기의 가치를 드높여주고 세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일들. 메루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연스레 들었던 고민도 사회적으로 해온 일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의 메루산의 어떤 일일까, 나는 메루산 정상에서 얼마만큼 떨어져 있을까, 다른 이들은 어디쯤 도착했을까. 피에트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로에게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던 브루노를 잃은 뒤에야 그는 자신이 이미 메루산을 오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브루노와 함께 올랐던 메루산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사실에 망연자실해한다. 자기만의 메루산을 찾으려 히말라야까지 갔지만, 정작 그의 메루산은 언제나 떠나려고만 했던 곳에서 묵묵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여덟 개의 산>은 처음에는 나란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한 우물만 팔 것인가, 여러 곳을 떠돌 것인가를 묻는 것처럼 보인다.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가 돼서야 메루산과 여덟 개의 산을 대립 구도에 가두고 서사를 따라가던 이들은 강한 타격을 받는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저 멀리 파랑새를 찾다가 정작 자기가 기르던 비둘기의 푸른 깃털은 놓치고 있진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기 내면과 삶의 경험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의 무게가 느껴져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일이었고, 절제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켰다. 스파크가 튀는 일을 찾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애쓰지 않아도 흐르는 눈물을 따라가는 것도 좋은 답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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