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함께, 홀로 있을 이들에게
때로 가사는 참 고독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그릇을 씻고 정리정돈을 한다. 머리카락을 줍고 세탁된 수건들을 찬장에 하나씩 넣는다. 물론 때때로 이런 일들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때도 있다. 차곡차곡 개어진 옷가지들을 보면서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안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혼자서 이 일들을 하다 보면 적적한 마음이 스며들곤 한다.
<카모메 식당>은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다시 보는 영화이다. 이미 여러 번 봤기에 정식으로 자리를 잡고 볼 필요도 없다. 그냥 틀어 두는 것이다. 그리고 집안일을 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의연하게 해 나가는 주인공과 함께 집안일을 해 나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 자신에 대한 믿음, 주변의 사람들, 친구들, 건강한 음식, 그리고 숲.
그것이 집을 돌보는 일이건 직장 일이건 글을 쓰는 일이건, 일 없이 사는 삶은 무료해지기 쉽다. 우리는 일을 통해 세상과 우리를 연결한다. 가족과 나를 연결하고,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연결한다. 이렇게 세상과의 연결점을 만들어 가며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것이 어떤 일이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그 순간은 축복된 시간이다. 또한 사람과 일이 이와 같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일에 애정을 갖는 것이다. 그 일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 일을 더 잘 하고 싶고 또한 조금은 새롭게 하고 싶을 때, 우리는 일을 통해 적극성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카모메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가 그렇다. 영화 초반 식당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일본어를 배우는 학생 한 명만이 들러 커피를 마실 뿐이다. 사치에는 그에게도 정성을 다해 대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정성을 다하는 것은 보다 인간적이고 애정을 담는 것이다.
사치에게는 이 가게가 단순한 생업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 먼 나라까지 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부지런히 만들어가는 것일까. 우리는 사치에의 삶에 궁금증을 갖게 되면서도 그녀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의연한 태도에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손님이 많건 적건 깔끔하게 식당을 유지한다. 앞치마를 단정히 두르고 반갑고 예의 바르게 손님께 인사한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먹을 것을 만든다, 이것이 사치에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와 같은 사치에의 가게를 보면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게 ‘피터 캣’이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로서 엄격한 일상을 지켜 나가는 하루키는 가게 운영에 대해 말하면서, 열 사람이 찾아왔을 때 한 두 명만 그곳을 아주 마음에 들어하면 나름대로 괜찮다는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그는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소수의 마음이 맞는 누군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목소리를 좋아하고 그 목소리의 톤과 온도에 기쁨과 위안을 느끼는 독자들이, 다수는 아니라 할지라도 흔들림 없이 존재해 준다면, 정말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일 것이다.
영화 속에 드러나는 그녀의 삶의 면면은 지나치게 눈에 띄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삶을 ‘운용’해가는 그녀만의 방식을 보여준다. 그녀의 집은 필요한 것들이 적절히 자리하여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다. 저녁이면 아버지에게 배운 합기도 동작을 한다. 정기적으로 수영장에 가 수영을 한다. 그녀가 수영할 때 울리는 수영장의 찰랑거리는 물소리는 무척이나 듣기 좋다.
우연히 사람들과 엮여가는 그녀의 방식은 결코 부산스럽지 않다. 그녀의 가게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사람들 모두 다소간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 같지만 사치에는 그것에 대해 파고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과 거리를 두는 그녀의 태도는 무관심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보인다.
누구나의 삶에나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 설명되지 않는 면도 있을 것이다. 사치에는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영화 또한 사치에에 대해 모두 말해주지 않는다. 우리 역시 사치에처럼, 그녀의 현재 삶을 함께 보고 느끼되 그 이상의 그녀에 대해서 따지고 들어가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본다. 그럼에도 현재의 그녀의 모습은 어떤 편안함을 전달해 준다. 아마도 그녀가 너무나 의연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깔끔한 앞치마를 두르고 시나몬 롤을 성심껏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 자체로 사치에의 삶을 신뢰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카모메 식당>은 사치에라는 한 여성의 낯선 곳에서의 삶, 그곳에서 지켜가는 작은 신념, 운명처럼 우연처럼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 우리 삶의 부박함과 평범함, 매혹, 그리고 일상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목격하게 해 준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발견될지 모르는 그와 같은 순간들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지만, 100분 정도의 러닝타임 동안, 설거지나 청소나 빨래 개기를 함께 해 볼 것을 추천한다. 그럴 때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묘한 공동체 의식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bitterSweet life + cinema
text by 엘렌의 가을
이미지 출처: 영화 <카모메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