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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Mar 25. 2021

19세, 대학 대신 해외살이를 선언했다

모든 자료 조사를 마치고 계획을 정리했다.

이제 엄마의 허락만 남아 있었다.


엄마를 앉혀 놓고 나는 학비, 생활비 예산, 아르바이트, 학업 계획 등을 정리해 발표했다.


"그러니까 딱 한 학기 등록금만 투자해주면

그 다음부터는 학비랑 생활비랑 다 내가 알아서 할게.

그 등록금도 갚을 거야."


엄마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 돈은 어차피 외할아버지가 너 입학금 하라고

맡긴 돈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일단 승낙을 하자 시원시원한 엄마는 뉴질랜드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해 주고 끝까지 지원해 줬다.


피아니스트로서 독일 유학을 준비했지만 실패했던 엄마는 언제나 외국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

지긋지긋한 한국이 싫다고 했다.


아빠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어딜 여자애가 겁도 없이 혼자 외국을 나가. 안돼."


부잣집 막내아들로 오냐오냐 자란 아빠는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해야 했다. 집안 사업이 망한 후로도 허울뿐인 사업을 핑계로 밖으로 나돌았다.


생활비가 없어도 친구들과 골프 치러 다니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녔다. 가장의 의무는 버리고 가장의 권위만을 내세웠다.


"네 고모한테 물어보니까 어학연수 그거 가봤자 소용없다 하더라."


하여간 고모는 우리 모녀에게 일절 도움이 안된다.


"고모 아들 둘 다 미국에 있지 않아?"


"그러니까 더 잘 알지. 그리고 걔들은 남자잖아.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이랑 가면 몰라도 혼자 절대 안 돼!"


"허락 받으려고 말한 거 아니야. 갈 거야."


사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두려운 마음도 들고 가끔 마음이 약해 지기도 했다. 그런데 아빠의 반대에 난 꼭 갈 거야라 여러 번 소리내 말하자 나의 결심을 단단히 굳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마치 '이거 듣고도 네가 가나 보자' 하는 투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주 용한 점쟁이가 있는데 가서 물어보니까

절-대 가면 안된다 하더라.

'나가면 딸은 죽는다 생각하소.

한국 나가면 올해 못 넘기니까 딸내미 죽일라 하면 보내!' 이러더라!"


들끓는 부성애? 절대 아니다.

가부장적 사고 안에서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것에 대한 떼쓰기, 고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이런 걸로 내가 흔들릴 거라 생각하다니.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얼굴 한 번 안 본 생판 남이 뭔데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해?

내가 당장 죽어도 눈물 한방울 안 흘릴 사람 말은

신경 안써.

그 점쟁이보다 옆집 아줌마가 날 더 생각하겠다.”


"아무튼 미국 가지마!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아, 내가 뉴질랜드 간다고 말을 안 했구나.


"미국 아니야."


"..... 그럼 어딘데?"




막내 외삼촌은 날 백화점에 데리고 가 여행 가방을 사줬고 큰 외삼촌은 비행기표 값을 지원해 줬다.

이모는 잘 다녀오라며 용돈을 줬고

외할머니는 쌈짓돈을 보내 주셨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든든한 엄마와 외가 식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인천공항에 서 있었다.




#인스타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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