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오래된 첫 기억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자주 베란다 앞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곤 했다. 나의 가장 첫 기억도 베란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보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다.
멍하니 앉아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대체 왜 저렇게 이상한 자세로 앉아 있나 (당시 나는 겨우 기어 다닐 정도이니 무릎을 세워 팔로 감싸안는 자세는 그저 이상하고 신기한 모습이었다.) 저 창 밖에는 대체 뭐가 있길래? 하는 것들이 몹시 궁금했었다.
이 당시에 나는 신기한 문양의 바닥재, 문지방, 아파트 복도 천장(유모차 안에 누워 있었던 듯) 등을 신기해했던 기억이 많은데 그날도 나를 가로막은 올록볼록 튀어나와 있는 문지방을 만져가며 '이건 대체 왜 바닥에 있는가, 넌 정체가 뭐냐'라고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고개를 드니 엄마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저렇게 이상하게 앉아 있네?"라고 생각하며 엄마에게 다가가 물었다.
엄마, 왜 그렇게 앉아 있어?
그랬더니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앉으면 편해?
내가 또 묻자 엄마는 들릴 듯 말 듯
응...
하고 대답을 하곤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엄마처럼 앉을래
그리고 낑낑대면서 엄마를 따라 쪼그려 앉으려고 노력했던 그 날이 나의 가장 오래된 첫 기억이다.
겨우 기어 다닐 때이니 절대 저렇게 또박또박 말을 했을 리가 없다. 아마 알아듣기 힘든 옹알이를 했을 것이다.
나의 엄마는 언제나 시끌벅적한 사람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그 사람이 있고 없고 가 전체 분위기를 좌우하는 그런 사람. 그런 엄마가 가장 조용히 또 고요히 있던 모습은 이때의 기억이 유일하다.
검찰 공무원 출신 외할아버지는 키가 180이 넘고 시커먼 얼굴에 각진 턱과 부리부리한 눈매를 가진 사나운 인상의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게만은 흐물흐물 풀어져 당시 여자로서는 드물게 교육에 관한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앞으로 엄마를 평생 지지리도 고생시킬게 뻔한 남자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끝까지 반대하지 못했다.
그렇게 엄마는 만 22살, 오랜 기간 준비하던 독일 유학을 포기하고 결혼했다.
결혼 전 후, 출산 전 후 180도 바뀌는 당시 여자들의 삶.
"산후우울증"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시절.
하루 종일 '가정'에 갇혀 자그마한 베란다 창을 통해 뻥 뚫린 하늘을 바라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얼마전부터 딸이 쪼그리고 앉아 베란다 밖 창을 멍하니 바라보곤 한다. 운동하려고 산 스텝퍼까지 끌어다가 그 앞에 놓고 앉아서 하늘을 바라본다.
뭐하냐고 물어보면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딸은 그렇게 문든 문득 엄마의 흔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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