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장 5편
“과장님도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세요. 오늘은 제가 쏘는 날이거든요.”
회의를 마치고 다시 5층으로 내려가려는 안경과장을 김영국 차장이 붙잡았다.
“아유, 정말요? 그럼 전 감-사히 마시겠습니당~ 하하하.”
김영국 차장은 회사 지원을 받아 캐나다에서 MBA를 하고 얼마 전 복귀했다.
‘갑'인 영국 차장이 ‘병'인 자신까지 챙기는게 마치
노비 챙기는 자애로운 양반 코스프레처럼 느껴졌다.
‘스벅도 아니고 꼴랑 2000원짜리 사내까페로 생색내기는… 하여간 재수 없다니까 이 새끼는.’
안경과장은 영국 차장이 싫었다.
파견 나가 있는 ‘갑'회사 인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자신과 상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영국의 집안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부모 잘 만나 질 나가는 거라고 믿었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대뜸 영국에게 안경과장이 물었다.
"왜 그런 동네 사세요?
그 동네 말고 딴데로 이사 가시지."
머릿속으로 영국 차장의 집안 배경과 아파트 생각을 하던 안경과장은 자신의 질문이 뜬금없다는 것도 몰랐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자신을 보는 것도 몰랐다.
"네? 그런 동네라뇨?"
"거기 학군 진짜 별론데... 자가에요? 그럼 차라리 전세 놓고 학군 좋은데로 이사 가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하던 영국이 눈을 살짝 찡그리며 대답했다.
"저희는 학군 신경 안 써요. 학군 좋은 데는 애만 더 치일거 같아서요. 공부 시킨다고 애 잡고 싶지도 않고."
역시 입만 떼면 외국물 먹은 티를 내니 영국차장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안경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 차장님, 외국에 오래 사셔서 잘 모르시는구나.
그 초등학교에 별 그지 같은 집 애들 다 모여요.
왜 그렇게 한국 사람들이 기를 쓰고 학군~ 학군~ 하겠어요? 서로 수준 맞는 애들끼리 어울릴 수 있게 부모가 설계해 줘야 된다구요.”
부동산 다음으로 안경과장이 좋아하는 주제, '좀 수준이 되는 집안'과 그 집안에 입성하는 법을 쉬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초등 인연이 평생 가는데. 수준 있는 집 애들이랑 동창 인맥이 쌓여야 어? 그게 쭈욱 이어지고, 그러다 걔들 중 하나 물어와 봐요. 인생 한방에 펴는 거에요. 한 밑천 잡는 건 일도 아닌데? 완전 로또 터지는 거라니까!"
"전 자식 결혼으로 한 밑천 잡고 싶지 않습니다."
영국 차장은 나긋한 말투로 정색했다.
다른 사람들도 거들었다.
“자식 결혼이 장사도 아니고…”
안경과장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꼭 말을 이딴식으로..
나는 뭐 자식 팔아서 장사하겠단 말이야 뭐야?’
‘나도 다 자식 위해서 하는 말이지. 자식 잘 되라고!’
자식이 잘 된다면 그게 어디 저 혼자 잘나서 그런건가? 다 부모인 내가 설계해 준 덕분 아닌가.
다 내 덕인데. 잘 되면 부모에게 갚는게 자식된 도리지.
안경과장은 저도 모르게 울화가 솟았다.
"에헤이, 뭘 모르시네! 차장님은 집에 돈이 있으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에요. 저도 와이프 집에 돈 좀 있는 줄 알고 결혼했는데 완전 속아 가지고… 처가덕 보긴 글렀으니까 딸 덕이라도 봐야죠!"
“.....”
너무 나갔다.
스스로 치부를 드러낸 꼴이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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