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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Sep 27. 2021

개목걸이에도 등급이 있다

안경과장 4편

“뭐봐?”

종이컵을 한 손에 들고 안경 과장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다 김 과장의 모니터에 고개를 디밀며 말했다.


“아, TV가 고장 나서. 결혼 전부터 쓰던 거라 그런지 얼마 전에 액정에 검은 줄이 생기더라고”

김 과장은 보던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어떤 거 사게?

“삼성 올레드 괜찮은 거 같아서 보고는 있는데 너무 비싸서 고민 중이야.”


삼성 올레드? 얼마 전 친구 집에서 본 후로 몇 달째 장바구니에만 넣어놓고 선뜻 사지 못하고 있는 제품이었다.

‘아니,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 사는 주제에?
참나, 그 집구석에 앉을 데도 없겠구만…..
설마 이 자식, 이사 갔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도저히 안 찔러볼 수 없었다. 최대한 티 안 나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었다.


“… 올레드.. 내가 매장서 보니까.. 사이즈가 꽤 크던데?”

“…”


그제야 모니터에서 고개를 뗀 김 과장이 안경 과장을 빤히 바라봤다. 한 번씩 이렇게 김 과장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무표정하게 바라볼 때면 자신의 속을 훤히 내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안경알을 뚫을 듯이 바라보던 김 과장이 말했다.


“알아.”

짧은 대답.

하지만 ‘어, 근데 어쩌라고.’처럼 들려 안경 과장의 얼굴이 벌게졌다.


“아유, 벌써 10시네... 회의 가야겠다..”

뒤돌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안경 과장은 얼굴을 구겼다.

‘지가 뭔데 올레드를 사. 그런 아파트에 가당키나 해?
나 정도 평수는 살아야 어울리지.’



안경과장은 얼마전에 옮긴 자신의 아파트와 김과장의 허름한 아파트를 떠올렸다. 자신의 BMW와 김과장의 국산차도 비교했다.


안경 과장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그 사람이 사는 곳을 알아내려 했다. 자신보다 비싼 집을 깔고 사는지 아닌지 알아내야 마음이 편했다.

 

김 과장은 언젠가 바로 '그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무리하게 대출받지 않아 삶이 여유롭다고 했다. 하지만 안경 과장은 그 말을 '허세'로 치부했다.


그런 아파트에 사는 주제에 자신도 몇 개월째 못 사고 있는 삼성 신형 TV를 사면 안되었다.


책상에 돌아와 앉자마자 쇼핑앱을 켰다. 안경 과장은 회의까지 20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올레드 TV 최저가 구매법을 찾느라 마음이 급했다.


결제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너무 충동구매했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제야 이번 달도 적자인 것이 생각났다.

‘아냐, 마이너스 통장이 있으니까.
지난번 산 주식만 올라봐, 이런 건 돈도 아니지.’

불안감이 들어오려는 걸 얼른 밀어냈다.

‘에이씨. 인생 뭐 있냐.
내가 TV 하나 못 살 수준은 아니잖아?’


주섬주섬 노트북을 챙겨 일어섰다. 오늘 회의는 안경 과장의 회사가 파견 나와 있는 대기업과의 회의다.


파견업체, 협력업체, 파트너사, 다양한 이름이 붙었지만 결국 ‘을'인 회사들은 5층부터 7층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마다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중앙에 설치된 키오스크 앞으로 가 15층을 누르자 스크린에 ‘2C’라고 커다랗게 떴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손에는 사내 카페에서 파는 커피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목에는 사원증이 달린 빨간색 목걸이. 8층을 지나자 노란색 사원줄은 안경 과장 단 한 명이었다.

개목걸이에도 등급이 있다.


15.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눈을 들었다. 층수를 확인하는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안경 과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이 닫힐 때까지 노란색 목줄이 따가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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