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과장 3편
통근버스가 도착했다. 정거장 표시도 없는 인도 한켠이지만 이곳이 회사 버스가 서는 곳이다.
아직은 어두운 시간.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빨간색의 사원증을 꺼내 들었다. 안경 과장도 바지 주머니에서 목걸이로 된 사원증을 꺼냈다. 노란색이다.
잠시 후 버스는 출발하고 실내 불이 꺼졌다. 쪽잠을 자는 사람, 핸드폰을 보는 사람, 머리에 헤어롤을 감고 화장하는 사람, 그 틈에서 안경 과장도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안경과장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한 손으로는 믹스커피 봉지로 연신 종이컵 안을 휘휘 저으며 다른 손으로 주식앱을 켰다.
“과장님, 바쁘세요?”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올려다보니 최대리가 손에 하얀 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
“어, 아니? 왜?”
해사하게 웃으며 최대리가 말했다.
“저 청첩장 나왔어요. 여깄습니다.”
안경 과장은 청첩장을 꺼내 펼쳤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잠시 청첩장을 바라보다 짐짓 가벼운 투로 안경 과장이 최대리에게 물었다.
“신혼집은 어디라고?”
이미 옆자리 김과장에게 청첩장을 건네던 최대리는 고개를 뒤로 돌려 대답했다.
“요 근처예요. 빨리 이사 가고 싶어요.
거기선 회사가 코앞이거든요.”
“아니, 왜 거기로 했어? 서울로 하지.
서울 아파트도 아닌데 제수씨가 결혼하겠대?”
“네? 하하… 여자 친구도 회사가
여기서 훨씬 가까워서 저보다 좋아하던데요.”
“에이, 최대리가 아직 뭘 모르네.
그런데 이 근처면 요 밑에 롯데캐슬?
아니면 힐스테이트?”
“... 음.....”
“보자, 보자... 저기 역 건너편 자이?”
“...... 네..”
“자가?”
“…”
“왜, 전세야? 설마 반전세? 에이, 그래도 월세는 아니지?”
어느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옆자리 김과장이 끼어들었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요. 남의 신혼집 알아서 뭐 하게?”
“네? 아하하..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부동산이 취미라.. 하하하”
그 사이 최대리는 임부장 자리로 잽싸게 가버렸다.
오전 내내 안경 과장은 최대리의 신혼집 견적 뽑는데 바빴다.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파크뷰 자이 방1'의 매매가와 전세가를 뽑았다.
안경 과장이 처음 알아본 신혼집은 회사에서 가까운 서울 외곽의 신축 빌라였다. 고향에서 상경한 이후 내내 자취방만 전전하다 처음 생긴 자기 집이라 그 빌라가 꽤 마음에 들었었다.
그러나 아내 경은은 서울에 있는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면 결혼 못 한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서울 소재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면 주변에서 수군댄다는 것이다. 할 말이 없었다. 안경 과장이 바로 그 수군대는 사람 중 하나이므로.
결혼을 하네 못하네 싸우던 중 경은이 제안했다.
“우리 한 6개월만 강남에 월세로 살까?”
안경 과장은 뭔 헛소리냐는 눈으로 경은을 바라봤다.
“집들이할 때까지만 살다가 그 후 여기 빌라 들어가면 되잖아. 응?”
경은은 진지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요새는 브랜드 아파트 아니면 인스타에 신혼집 사진도 못 올려. 내 친구들 다 잘 사는 거 알지?”
어느새 경은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나 걔들한테 이런 꼴 절대 못 보여줘!
자기도 주변에서 신혼집 어디 구했냐고 죄다 물어볼 텐데. 강남 아파트 정도는 되야 다들 찍소리도 못하지.”
솔깃했다.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눈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동안 자신을 은근히 깔보던 친척들도 더 이상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집들이할 때 부러워할 고향 친구들 눈빛을 떠올리니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노후자금을 털어 마련해 준 빌라 전세금을 뺐다. 그리고 강남 방 3개짜리 아파트 단기 월세를 들어갔다.
청첩장을 돌리면서, 결혼식에서 손님을 맞으면서, 안경 과장은 남들이 묻기도 전에 강남 아파트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 경은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들까지 불러 집들이를 했다.
이 쇼를 하느라 결혼 6개월 만에 날린 금액은 3천만 원. 월세를 내느라 전세금을 깎아 먹어 계획보다 훨씬 작은 집에 들어갔지만 상관없었다.
남들의 부러운 시선이 좋았다. 6개월동안 누린 우월감이 황홀했다.
남들 보기에 정말 그럴싸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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