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과장 2편- BMW 타는 그의 새벽
차키를 손에 쥐고 튀어나온 BMW의 로고를 만지작거렸다. 또 한 번 안경 과장의 어깨가 쭈욱 펴졌다.
안경 과장이 반드시 외제차를 몰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10년 전이었다. 중소기업이긴 해도 서울 회사에 취직한 안경 과장은 고향 친구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야~ 출세했네. 서울에서 차도 따악 끌고 다니고."
이번에 면접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친구가 안경 과장의 중형차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안경 과장은 한 껏 여유 부린 목소리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너도 이번에 합격해서 이런 거 하나 뽑아.
서울에서 차 없이 못 살아."
'그래, 바로 이거지.'
이 맛에 그는 고향 친구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손에 쥐어주는 기름값도 거절하고 매번 차를 태워줬다.
그날은 좁은 서울 골목길로 잘 못 들어 빠져나가려고 한참 애쓰던 참이었다.
옆에 있던 고향 친구는 말이 없었지만 안경 과장은 그게 더 불안했다. 속으로 '촌놈 티 못 벗었네'라며 비웃느라 조용한 것 같았다.
그때 반대편에서 차 한 대가 골목 입구로 진입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가는 골목길 중앙에서 마주한 차 두대.
서부 총잡이들의 총 뽑기 전만큼이나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질 게 뻔한 상황이었다.
'뭐야, 짜증 나게. 지가 빼야지 나더러 어쩌라고!'
습관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클랙슨을 치려던 안경 과장은 멈칫했다.
상대방의 차는 값이 상당한 외제차였다. 상대 운전자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안경 과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로 끼익. 앞으로 끼익. 다시 뒤로 끼익. 오른쪽으로 끼익.
안경 과장의 차는 끽끼익 후진하며 보도블록 위에 오른쪽 바퀴 두 개를 기대고 기우뚱하게 섰다.
그동안 검은색 외제차는 고요히 서 있었다.
까딱.
외제차 운전자는 안경 과장의 차를 스치며 감사의 표시로 손을 들고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차창 너머 상대편 운전자와 눈이 마주치자 안경 과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신경전을 벌인 것도, 욕설이 오간 것도 아닌데 안경 과장은 그 순간이 치욕스러웠다.
자신이 먼저 비켜줬다는 사실은 어느새 잊고 말았다.
그 절제되고 매너 있는 감사인사 속에
'그래, 그런 똥차나 끌고 다니는 네가 양보해야지.'라는 비웃음이 있는 것 같았다.
부끄러웠다.
상대방 운전자에게, 옆에 있던 고향 친구에게.
이런 중형차 살 돈 밖에 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부끄러웠다.
그때 결심했다.
반드시 외제차를 타겠다고.
안경 과장은 다시 한번 차키를 손에 쥐며 현관을 나섰다.
차 때문에 대출을 더 받아야 했지만 괜찮았다.
외제차를 뽑기 위해 대출을 6천 더 늘려 받자며 아내 경은은 말했다.
"하여간 소심하기는.
어차피 대출받는 거 5억이나 5억 7천이나.
빚도 자산이야."
'그래. 빚도 자산이다.'
빚이 5억이나 5억 7천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찰칵.
안녕하세요 김미영 님,
고객님의 소중한 물품을 현관 앞에 보관하였습니다.
안경 과장은 현관 앞에 놓인 택배 물품 사진을 찍어 문자를 전송하면서 아직 닫히지 않은 엘리베이터로 쏙 들어갔다.
'아하아아아암. 이 짓도 오늘까지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눈 아래로 짙은 다크서클이 보였다.
단기 투잡으로 시작한 새벽 배송도 오늘이 끝이다.
처음에는 출근 전 한두 건만 하려고 시작했던 새벽 배송이었다. 그런데 기름 귀신인 외제차로 배송을 하려다 보니 도무지 계산이 안 나왔다.
그래서 하나둘 배송 건수를 늘리다 보니 지난달에는 새벽 4시부터 이 짓을 하고 출근을 했다. 당연히 회사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졸았다.
안경 과장은 차로 돌아와 퉁퉁 부은 종아리를 연신 주물렀다.
오전 6시 10분.
집에 돌아가 주차를 하고 통근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시동을 걸면서 안경 과장은 생각했다.
'다음 주부터는 음식 배달을 해볼까. 그건 퇴근하고 하면 되니까.
아유, 잠이라도 실컷 자야지.'
부릉.
서서히 밝아져 가는 새벽 아침 햇살에 BMW 520d의
엠블럼이 반짝였다.
-계속
(커버이미지: Photo by Chris Liveran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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