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빚투 안경과장1편
안경 과장은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며 그럴듯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안경 과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럴듯할 것.
물론 '남들 보기에'가 기준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경 과장과 아내, 경은은 천생연분이다.
안경 과장의 집 부엌에는 커피 머신과 캡슐커피 머신이 나란히 놓여 있다. 둘 다 영국에서 유명해 한국 엄마들 사이에 핫하다는 바로 그 브랜드 제품이다.
커피 머신은 고장 난지 오래됐고 캡슐커피는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둘 다 4번의 이사에도 살아남았다. 아내 말에 의하면 '손님들 보여주는 디피용'이라 절대 버릴 수 없단다.
얼마 전 이사한 안경 과장은 요즘 자다가 심장이 꽉 막히는 통증이 들어 벌떡벌떡 일어난다. 오늘 새벽에도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난 안경 과장은 부엌으로 가 물 한 잔을 마셨다.
그대로 서서 거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또 숨이 막혔다.
무리해서 이사 오느라 퇴직금도 중간 정산하고 2금융권 대출도 당겼다.
안경 과장은 지방 변두리이긴 하지만 그 동네에선 공부 좀 한다는 축에 속했다. 누나만 둘 있는 집 막둥이로 태어나 귀여움을 받으며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그러나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절감했다. 요즘 잘난 인간들과 일을 하다 보면 더 많은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이 아파트를 떠올린다.
지금 이렇게 거실을 둘러보니 대출을 많이 받긴 했어도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영끌' 대출을 받을 땐 손이 떨렸지만.
그런 자신을 보고 와이프는 소심하다며 '역시 시골 출신'이라고 비웃었다. 와이프가 이럴 때마다 안경 과장은 '서울 사람은 뭔가 다른가'하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돈에 관한 경은의 이런 대담한 면 때문에 결혼 전에는 처가에 돈이 꽤 있는 줄 알았다. 어린 나이에 명품 백을 들고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가길래 좀 사는 집이라 그런 줄 알았다.
이 여자와 결혼만 하면 자기 인생도 펼 생각에 설레기도 했었다. 결혼 후 전부 경은의 카드빚인 걸 알고 신혼 초에 많이 싸웠다.
그때마다 경은은
"그러는 자기도 아파트 대출 낀 거랑 학자금 대출 비밀로 했잖아! 이거 사기결혼이야!"
하고 따지는 바람에 되려 경은의 화를 풀어주느라 어영부영 넘어가버렸다.
‘그래도 한 십 년 후엔 대출을 깔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배로 늘다니..’
입이 썼다.
이제 안경 과장, 자신의 대에서 '갑'으로 일어서긴 아무리 생각해도 글렀다. 모든 희망을 자식에게 걸기로 했다.
모쪼록 자식이 잘 돼야
나도 갑질 하면서 살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 답이었다. 그래서 무리하게 학군이 세다는 아파트에 들어왔다.
하이월드 센트레케슬
긴 외국어로 된 아파트 이름은 주소를 말할 때마다 안경 과장을 으쓱하게 만든다.
멍하게 시계를 보니 벌써 나갈 시간이 되었다.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아차'했다.
하마터면 차키를 놓고 갈 뻔했다.
-계속-
커버이미지: Photo by Jakub Dziubak on Unsplash
#커피머신 #과장 #회사생활 #브랜드아파트 #영끌 #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