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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Sep 10. 2021

그가 고장 난 커피머신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영끌 빚투 안경과장1편


안경 과장은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며 그럴듯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안경 과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럴듯할 것.

물론 '남들 보기에'가 기준이다. 이런 의미에서 안경 과장과 아내, 경은은 천생연분이다.


안경 과장의 집 부엌에는 커피 머신과 캡슐커피 머신이 나란히 놓여 있다. 둘 다 영국에서 유명해 한국 엄마들 사이에 핫하다는 바로 그 브랜드 제품이다.


커피 머신은 고장 난지 오래됐고 캡슐커피는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둘 다 4번의 이사에도 살아남았다. 아내 말에 의하면 '손님들 보여주는 디피용'이라 절대 버릴 수 없단다.


얼마 전 이사한 안경 과장은 요즘 자다가 심장이 꽉 막히는 통증이 들어 벌떡벌떡 일어난다. 오늘 새벽에도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난 안경 과장은 부엌으로 가 물 한 잔을 마셨다.


그대로 서서 거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또 숨이 막혔다.

무리해서 이사 오느라 퇴직금도 중간 정산하고 2금융권 대출도 당겼다.


안경 과장은 지방 변두리이긴 하지만 그 동네에선 공부 좀 한다는 축에 속했다. 누나만 둘 있는 집 막둥이로 태어나 귀여움을 받으며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그러나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절감했다. 요즘 잘난 인간들과 일을 하다 보면 더 많은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이 아파트를 떠올린다.


지금 이렇게 거실을 둘러보니 대출을 많이 받긴 했어도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영끌' 대출을 받을 땐 손이 떨렸지만.


그런 자신을 보고 와이프는 소심하다며 '역시 시골 출신'이라고 비웃었다. 와이프가 이럴 때마다 안경 과장은 '서울 사람은 뭔가 다른가'하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돈에 관한 경은의 이런 대담한 면 때문에 결혼 전에는 처가에 돈이 꽤 있는 줄 알았다. 어린 나이에 명품 백을 들고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가길래 좀 사는 집이라 그런 줄 알았다.


이 여자와 결혼만 하면 자기 인생도 펼 생각에 설레기도 했었다. 결혼 후 전부 경은의 카드빚인 걸 알고 신혼 초에 많이 싸웠다.


그때마다 경은은

"그러는 자기도 아파트 대출 낀 거랑 학자금 대출 비밀로 했잖아! 이거 사기결혼이야!"

하고 따지는 바람에 되려 경은의 화를 풀어주느라 어영부영 넘어가버렸다.


‘그래도 한 십 년 후엔 대출을 깔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배로 늘다니..’


입이 썼다.


이제 안경 과장, 자신의 대에서 '갑'으로 일어서긴 아무리 생각해도 글렀다. 모든 희망을 자식에게 걸기로 했다.


모쪼록 자식이 잘 돼야
나도 갑질 하면서 살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 답이었다. 그래서 무리하게 학군이 세다는 아파트에 들어왔다.

하이월드 센트레케슬

긴 외국어로 된 아파트 이름은 주소를 말할 때마다 안경 과장을 으쓱하게 만든다.


멍하게 시계를 보니 벌써 나갈 시간이 되었다.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아차'했다.

하마터면 차키를 놓고  뻔했다.


-계속-


커버이미지: Photo by Jakub Dziubak on Unsplash

#커피머신 #과장 #회사생활 #브랜드아파트 #영끌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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