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레브 Sep 30. 2021

그놈의 가방. 그놈의 친구남편

안경과장 6편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거실에 아이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엄마는?”

“엄마, 방에서 울어.”

뒷골이 싸했다.


예상 가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돌리며 안방 문을 열었다. 경은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였다.


안경과장은 침대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왜 그래?”

“아까.. 오랜만에 미정이랑 브런치 먹었는데… 흑흑”

감이 왔다.

“남편한테.. 결혼기념일이라… 가방 받았다고.. 끅.. 끅..”


“근데.”

“비싸서 몇 달 동안 난 쳐다만 보던 건데… 딱 그거더라!”


“네가 가방이 왜 또 필요한데?”

“뭐?”

경은은 획 돌아누웠다.


“몇백만 원짜리 들고 어디 가는데? 애 유치원 갈 때? 마트? 동네 아줌마들이랑 브런치 먹을 때? 어?”


“됐어! 그래~ 내 팔자가 이렇지 뭐! 미정이 년은 남편 잘 만나서 때마다 샤넬에 루이비통에! 목에는 떡하니 반클리프 차고! 팔자 늘어졌는데!!”

이제 아내는 빽빽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그놈의 가방.

그놈의 친구들.

그놈의 친구 남편들.



신혼 초만 해도 이렇게 살 줄은 몰랐다. 결혼만 하면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다. 먼저 결혼한 고향 친구 경수 놈처럼 나도 처가덕 좀 보나 했다. 아내는 소위 땅값 좀 있다 하는 동네에 그럴싸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처음 인사드리러 방문했을 때 기가 확 죽을 정도로 화려한 가구들로 가득 찬 집이었다.


경은의 씀씀이도 안경과장의 오해를 부추기는데 한 몫했다. 당시 머리는 연예인들이 다닌다는 청담동 미용실에서 잘랐다. 인스타에서 핫한 맛집을 가느라 밥값과 술값이 안경과장의 자취방 월세를 넘었다. 신상 명품백도 여러 개 들고 다녔고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도저히 직장인 3년 차의 월급으로 감당할 수 없는 씀씀이라 당연히 있는 집 딸인 줄 알았다. 경은과 결혼하면 자신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결혼 얘기가 오가자마자 경은이 샤넬백을 사달라길래 시원하게 알았다고 했다. 투자라고 생각했다.

다만 ‘언제’ 살 것인가가 문제였다.


“신혼여행 가면 면세점에서 사줄게.”

“싫어. 청첩장 돌릴 때 들고 가야 한단 말이야.”


“아니, 천만 원이 누구 애 이름이냐? 청첩장 주는 데 가방이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면세점 가잖아. 거기서 사면 3백 가까이 싸게 살 수 있는데!”


“안돼. 원래 청첩장 모임 때 예랑(예비신랑)이 사준 샤넬백을 들고 가는 거야! 내 친구들 알지?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떵떵거리고 사는 거. 남편도 죄다 대기업에 ‘사’ 자에 연봉도 억대란 말이야!

솔직히 자기는 지방 출신에 대기업을 다니는 것도 아니야, 키가 큰 것도 아니야, 근데 원래 들던 가방이나 들고 가 봐, 친구들이 날 뭘로 보겠어?”


그러다 경은이 쏘아붙인 마지막 말에 눈앞에 번쩍 불이 일었다.

“왜, 못 사 주겠어?”

안경과장은 어금니를 꽉 앙다물었다.

“알았어! 사! 사! 사주면 될 거 아냐!”

그놈의 가방.

그놈의 친구들.

그놈의 친구 남편들.


안경과장은 경은이 부모님과 살고 있는 아파트를 떠올렸다. 경은은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우리 집, 저 아파트, 내거나 마찬가지야.”

“처남도 있는데 어떻게 저게 네 거야?”


“올케 고게 한 게 뭐가 있다고 그걸 받아?! 울 엄마 아빠가 걔한테 저 집을 줄 거 같아? 두고봐. 내가 결혼하면 저 아파트 나 주실 거라니까.”


그 아파트 시세를 떠 올리자 침이 넘어갔다. 그래. 그까짓 2-3백 때문에 쪼잔하게 보일 거 뭐 있어. 평생 ‘을’로 살다가 드디어 ‘갑’의 인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날로 안경과장은 경은과 갤러리아 백화점에 갔다. 샤넬백을 샀고 결혼은 무사히 치렀다. 강남에 (월세지만) 신혼집도 차려 남들의 부러움 속에 집들이도 마쳤다. 만 5개월 뒤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서울 외곽의 작은 빌라로 이사도 무사히 갔다.



그런데 결혼기념일 1주년을 앞둔 어느 날 문제가 터졌다.

5천만 . 무려 5천만 원이었다.


(커버이미지: Photo by https://unsplash.com/@monsswnt) ​#명품 #친구남편 #가방 #샤넬 #반클리프 #청첩장 #청첩장모임

이전 05화 그 초등학교, 별 그지 같은 집 애들도 다니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