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장 7편
6년 전이었다. 결혼기념일 1주년을 앞둔 어느 날 문제가 터졌다.
“뭐? 얼마라고?”
운전대를 잡은 안경과장의 손이 떨렸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덜컹.
앞에 있던 과속방지 금지 턱을 보고도 속도를 못 줄였다. 차가 크게 흔들리는 바람에 옆자리에서 경은이 ‘깜짝이야’하고 투덜거렸다.
5천만 원.
경은의 입에서 나온 금액은 무려 5천만 원이었다.
그중 순수한 카드빚은 3천만 원. 제2금융권과 각종 캐피털을 합하면 무려 5천만 원이라고 했다.
그 빚을 결혼 후까지 끌고 와 놓고 이제껏 비밀로 했던 것이다.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둔 경은이 도저히 매달 오는 빚 독촉을 감당 못하고 안경과장에게 털어놓았다.
“자취도 안 했고 생활비도 한 푼 낸 적 없다며 월급은 어디 쓴 거야? 카드값은? 캐피털은? 대체 그 큰돈을 어디에 쓴 거야? 대체.. 언제.. 왜.. 대체.. 뭐하러.. 왜…”
안경과장은 버퍼링 걸린 동영상처럼 뻑뻑대며 입만 뻐금거렸다.
“회사는 빨가벗고 다니냐? 그때그때 옷도 사고, 화장품도 사고, 스트레스 받으면 친구랑 여행도 가고 해야 나도 숨통이 좀 트일 거 아냐!”
경은은 되려 억울한 듯 울분을 토했다.
“그럼… 그동안 가방 사고 해외여행 돌아다닌 거 다 카드로 긁은 거야?”
“요즘 다들 그 정도 가방은 다 들고 다녀. 남들에 비하면 그렇게 많이 산 편도 아니야. 나라고 뭐 흥청망청 쓴 줄 알아? 몇 개는 짭으로 샀어.”
“짝퉁을 들고 다녔다고?! 허! 그러면서 결혼할 때 나한테 샤넬백을 사달라 그래?!”
속았다. 완벽하게 속았다. 시골 촌놈은 별 수 없나 보다.
가짜인지도 모르고 명품백 좀 들고 다닌다고 돈 많은 집 딸인지 알았더니, 이건 명백한 사기결혼이다.
5천만 원과 샤넬백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아!! 그러는 너야말로 신혼집 대출 낀 것도 속였고, 샤넬백도 36개월 할부로 산거라 아직 갚고 있잖아!”
그놈의 샤넬백 할부금은 아직도 26개월이나 남았다.
“너도 결혼 전에는 분명히 장인어른 깔고 계신 아파트 그거 결혼만 하면 너 주실 거라며. 근데 전세잖아. 대출 낀 전셋집을 무슨 수로 물려받냐? 어?”
“나도 너 시골에 땅 꽤나 있는 줄 알았더니. 개뿔.. 정말 속았어, 이건 사기결혼이야!”
경은은 실눈을 가늘게 뜨며 입가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실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리고.. 너 나 돈 보고 결혼했냐?”
“지랄한다. 돈이 있어야 돈 보고 결혼하지…”
“뭐? 지랄? 지라알?”
신혼 생활 내내 안경과장 부부는 틈만 나면 다퉜다. 전세자금 대출, 샤넬백 할부금과 결혼자금 카드값, 학자금 대출, 자동차 할부금에 경은의 카드값 5천까지.
그때 안경과장은 확실히 느꼈다. 결혼생활은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대출금을 전부 갚고, 어디서 돈이 뚝 떨어지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로 6년이 흘렀다.
대출금은 더 늘었고 어디서 돈이 뚝 떨어지지도 않았다.
안경과장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돈 있는 집에서 태어났으면 삼수를 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을 텐데. 부모님이 남들처럼 뒷바라지를 해줬으면 대기업에 들어갔을 텐데. 결혼하기 전에 조금만 신중했으면 처가덕 보며 살 수 있었을 텐데.
안경과장은 그대로 등을 돌리고 누워 꺽꺽 울고만 있는 경은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그 미정이네 집구석은 돈이 어디서 나는가.
‘그 집 돈은 뭐 화수분이야? 월급쟁이 수입 뻔한데.
혹시 처가에 돈 나올 데가 좀 있나?
아니면 주식이 대박 났나?’
그때 안경과장의 핸드폰이 울리자 안경과장은 벌떡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깜짝 놀란 경은이 소리를 질렀다.
“어디가!”
“돈 벌러 간다!”
-계속
(커버이미지: https://unsplash.com/@jpva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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