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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Oct 23. 2021

난 니들이랑 급이 다르다 이 말이야

안경과장 14편


요즘 안경과장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밤새 울리는 가상화폐 거래소의 가격 변동 알림 때문이다. 거의 잠을 못 자고 회사에서 꾸벅꾸벅 졸지만 기분은 날아갈 듯 상쾌했다. 처음 가진 모든 돈을 끌어다 코인 구매를 마친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백만 원을 벌었다.


점점 상승세에 오르자 주변에서 돈을 빌려 투자했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수익은 어느새 몇천만 원 단위가 되어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안경과장은 판을 크게 벌렸다.



회사에서도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마감을 넘기기 일쑤였고 실수도 잦았다. 임부장은 심심하면 잔소리를 해댔지만 안경과장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지까짓게, 꼴랑 파견업체 부장 주제에..’



얼마 못가 안경과장은 ‘대기발령' 신세가 되었다. 파견 나간 대기업 팀에서 안경과장의 업무 태도에 대한 컴플레인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날로 안경과장은 업무에서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계약기간은 남아 있어 ‘대기발령'이 되었다.

지원받은 노트북도 반납하고 개인 장비는 보안상 들여오기가 힘들어 빈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신세이건만 안경과장은 신경쓰지 않았다. 하루종일 코인 거래소를 들락거리며 이리저리 대출을 받아 투자를 늘렸다.


매일 이 돈으로 뭐하지?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던 어느 날, 입이 근질근질해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썰을 누구에게 풀까.. 고심하던 끝에 만만한 박주임이 보였다.


“박주임, 뭐해. 바빠?”

“무슨 일이세요?”


하여튼 까칠하기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상사가 부르면 대답이나 할 것이지. 뭔 일인지 지가 알아서 뭐하려고.

안경과장은 불만을 숨기고 호탕한 척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안 바쁘면 나랑 잠깐 커피 한잔 하지?”

“다녀오세요. 전 이거 1시까지 마무리해야 해서요.”


이제 주임 주제에 해봤자 뭐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겠나 싶었지만 명백한 거절에 안경과장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모니터를 보며 연신 방글거리는 소정이 보였다. 웃는 걸 보니 일하는 건 아닌 게 분명했다.


“소정 씨, 바빠?”

“네? 왜요?”


하여튼 요즘 애들은… 또 대답은 안 하고 질문이다.


“커피 한잔 어때? 할 말도 좀 있고.”


일부러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직 햇병아리 신입인 소정에게는 확실히 먹히는 것 같았다.


소정은 눈에 띄게 긴장했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했을 온갖 실수들을 떠올리는 게 보였다.


“아.. 네..”


근무 중인 대기업 건물 안에 사내 카페가 있지만 회사 직원카드로만 결제가 된다. 파견사 직원들은 3배는 비싼 바로 옆 스타벅스나 길 건너 ‘1000원 아메리'에 가야 했다.


평소 얻어먹을 때 말고는 가지 않는 스타벅스로 큰맘 먹고 갔다. 이제 자산에 맞게 배포도 좀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정 씨, 뭐 마실래? 내가 사줄게.”


“아니에요. 안 사주셔도...”


“어허, 소정 씨 아직 뭘 모르네~ 원래 어린 여자들은 나이 많은 남자들이 사준다 그럼 그냥 '감사합니다~'하는 게 예의야. 그리고 30 넘으면 여자가 남자한테 사줘야 돼. 그러니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


분위기가 싸했다.


너무 꼰대 같았나? 에이, 뭐 어때. 내가 내 돈 쓰면서 이런 말도 못 하나.


“요즘 인스타 보니까 벚꽃 라테 많이 마신다는데 저거 마셔볼래?”


그때 카운터에서 직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소쩡소쩡님~ 사이렌 오더 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저 여기 스티커 모아서 그냥 제가 주문했어요..”


변명을 하며 소정이 음료를 받아왔다. 머쓱해진 안경과장은 카운터에 가 에스프레소 한잔을 주문하고 소정이 앉아있는 곳으로 갔다.


“그래, 소정 씨 언제 입사했더라?”

“입사한 건 1년 조금 안됐고 여기 파견 나온 건 6개월이요.”


“아이고~ 벌써 그렇게 됐구나? 일은 할만하고?”

“네.”


“월급 관리는, 부모님이 해주셔?”

“왜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소정은 당황한 듯했지만, 자기 할 말만 신경 쓰는 안경과장은 운을 띄우기가 무섭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 내가 투자로 재미를 좀 봐서 좀 가르쳐줄까 했지.”

“주식이요?”


“아, 소정 씨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구나~ 요즘은 가상화폐지.”


신이 난 안경과장은 핸드폰을 열어 차트를 보여주며 이것저것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거 봐, 이거 보라니까. 이게 지금 하룻밤 새에 오른 거야. 손발 움직이는 노동은 이제 없는 것들이나 하는 거야. 이,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어야 진짜지. 내가 소정씨니까 말해주는 건데 소정 씨도 코인 한번 해봐. 내가 가르쳐줄게! 안 어려워.”


흥분한 안경과장은 말까지 더듬었다.


“내가 지금 차가 외제차거든."

“...”


“사실 BMW인데 내가 살 때는 가격이 진짜 좀 했는데 요즘은 좀 아무나 타더라고.”

“...”


“그래서 나이도 있는데 이제는 벤츠로 바꿔볼까~ 하고 있거든.”

“아...”


“외제차는 기름도 많이 먹고 유지비도 엄청 많이 들어요, 나도 국산차가 잘 나오면 타고 싶은데, 소정씨도 남자 친구랑 데이트할 때 남자 친구 차 타보고 했을 거 아냐. 외제차는 안 타봤겠지만, 확실히 국산차랑 뭔가 다르긴 다르거든.”

“...”


이게 아닌데?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요즘은 벤츠도 흔해져서 반응이 이런 건가?


“아니면 이 참에 포르셰나 람보르기니를 뽑을까 봐.”

“아.. 네..”


마침내 소정이 빨대에서 입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 시계를 한번 확인했다. 소정은 이제 들어가 봐야 한다며 먼저 일어섰다.


안경과장은 건성으로 인사하며 핸드폰으로 포르셰를 검색했다. 소정의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 뱉은 말인데 막상 뱉고 보니 '진짜 포르셰를 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이제 일반 월급쟁이들인
니들 같은 것들이랑은 급이 다르다 이 말씀이야.




퇴근 후 안경과장은 헬멧을 들고 베스파에 올라탔다. 안경과장은 여전히 매일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 몇 시간씩 라이더를 하고 있다. 월급은 빠듯한데 밀린 카드값과 계속 불어나는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이 짓도 조금 있으면 끝이다! 코인이 이대로만 계속 오르면 원금 회수는 한, 두 달이면 되겠는데? 그럼 한 6개월 있다 다 때려치워야지.’


두 번째 배달을 막 마치고 스쿠터에 올라탔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또 코인은 상승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수백만 원을 벌었다. 욕심이 났다. 6개월까지 못 기다릴 것 같았다.


‘카드론이라도 받아서 종잣돈을 늘려야겠어. 사람이 크게 놀아야 크게 버는 거지.’


벌써 자산가가 된 것 같았다. ‘존 리' 같은 부자는 BMW 따위는 타지 않을 것이다. 내친김에 이번 주말에 새 차를 둘러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메모장을 열었다. 수익이 날 때마다 안경과장은 메모 앱에 차곡차곡 기록했다.



구찌 가방
반클리프 양면
골프채
벤츠


‘그래, 이제 나 정도는 포르셰나 람보르기니 정도는 몰아야 급에 맞지.’

생각하며 메모장 맨 아래 ‘벤츠'를 지우고 ‘포르셰'라고 써넣었다. 잠시 오픈카를 타고 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퇴근길에 태워 주겠다고 하면 평소 자신에게 까칠한 박주임과 무뚝뚝한 소정 씨도 ‘어머, 과장님~’ 하면서 타겠지 싶어 흐뭇했다.


두 여자가 서로 자기가 타겠다고 실랑이하면 어쩌나, 쓸데없는 망상도 했다.


과장님~ 저 이렇게 비싼 차는 처음 타봐요.’ 라며 살며시 눈을 뜨는 박주임을 상상했다.


이런 차 타고 드라이브 가면 너무 좋을 거 같아요~’라며 드물게 웃는 소정 씨도 상상했다.


망상으로 입이 헤벌쭉 벌어진 안경과장은 헬멧을 조심스레 벗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살살 매만졌다.


‘돈 벌면 머리도 좀 심어야겠다. 일단 얼굴에 점부터 뺄까? 아, 간 김에 보톡스도 맞아야겠네..’


그러나,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판을 키우는 것.

안경과장은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시골에 계신 엄마를 시작으로  누나들과 아내를 설득해 장인어른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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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Photo by Luis Villasmi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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