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장 편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해진 안경과장은 회사로 복귀했다. 일이 많이 밀렸을까 봐 걱정했는데 파견 나온 직원이 커버하고 있었단다.
파견직 회사에 파견 고용된 직원이라니, 웃겼다. 어떤 한심한 인간이길래 '을' 회사에 ‘병'으로 채용되나 싶어 뒤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스카이를 나왔다고 한다.
‘뻥친 거 아냐? 학력위조 같은데…’
멋대로 판단한 안경과장은 곧 '파견회사에 파견 나온 직원'은 잊고 핸드폰으로 스쿠터를 검색했다. 이번 사고를 겪고 나니 킥보드보다는 스쿠터가 더 안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쿠터로 배달하면 배달 단가 센 장거리 배달도 할 수 있잖아? 그럼 스쿠터 값은 금방 뽕 뽑는 거지.’
요즘은 알바로도 라이더를 많이 하는 모양이라 스쿠터를 중고로 구매하려는 사람도 많은 거 같았다. 그런데 대충 훑어보니 딱 봐도 '배달오토바이'였다. '에이..' 하며 중고 앱을 닫았다.
안경 과장은 그나마도 남들 눈을 의식했다. 남들 보기에 ‘라이더'처럼 보이기 싫었다. 스쿠터도 무조건 브랜드, 명품이어야 했다.
‘명품 스쿠터' 검색을 하다 보니 베스파 스페셜 에디션이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장인이 만들었나, 가죽 시트가 고급스러웠다.
‘이 정도는 돼야 남들 보기에 괜찮지. 이런 건 주말에 한 번씩 타고 다녀도 뽀대 나겠는데?’
카드를 시원하게 긁어 스쿠터 구매를 마친 안경 과장은 이번엔 코인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출근길 커뮤니티는 시끌시끌했었다. 밤새 코인이 파란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떡락이었다.
그래도 손실을 본 사람들이 나 혼자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빚투를 시작한 이후로 밤새 울리는 코인 가격 변동 소식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엄마가 누나들 몰래 쥐여 준 딸의 대학 등록금은 하루아침에 날렸다. 떡락 그래프를 보고 있자니 바로 옆자리에 김과장이 있는데도 눈물이 고였다. 그때 다른 글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분 모든 투자가 그렇듯이 존버가 답입니다! 돈 벌기가 쉽다면 누구나 다 하겠죠! 일주일 전에만 해도 하루에 70만 원씩 뛰었습니다. 여러분 존버어어어!!!!
그래. 존버! 존버만이 답이다. 주식이랑 똑같은 거 아냐. 이렇게 떨어졌을 때 발 빼면 투자금 다 날리는 거잖아. 더 버티다가 투자금만이라도 회수하자.
‘그리고, 내가 이렇게 단기간에 돈을 날릴 수 있다는 건 바꿔 말하면 단기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지, 안 그래?’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할 때가 된 것이다. 엄마가 준 돈이야 어차피 공돈이나 마찬가지고 이제 7살인 딸이 대학을 가든 전신 성형을 하든 아직 13년이 남았다. 그 기간이면 잃은 돈을 되찾기에 충분했다. 충분하기 뿐인가? 10억은 만들 수 있는 기간이다.
이번에는 다른 코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수익 인증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왔다. 조회수가 가장 높은 글은 <수익률 1000% 인증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이었다.
‘이건 잡코인이라 일단 200만 원만 투자했었는데..더 할걸 그랬나?’
31억 인증샷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30살인데 곧 퇴사하고 작은 건물을 하나 구매할 계획이라는 글이었다.
‘그럼 천만 원을 투자하면 60억 버는 거네!’
이제까지는 초보 코인러에서 연습 기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존버하면서 공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할 때이다. 여태까지 손실금액은 수업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눈곱을 떼는 척하며 옆자리 김과장을 흘깃거렸다. 아이패드 화면에 영어 뉴스를 틀어놓고 오후 회의 자료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아주 혼자 일하는 척은 다하네.. 김부장한테 잘 보이려고 애쓴다, 애써.
이렇게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있는데.. 저것들은 뭘 저렇게 목숨 걸고 일을 하나...’
끌끌 혀를 찼다.
지이잉.
구독 중인 가상화폐 전문 유튜버 채널의 라이브 방송 알람이 떠 얼른 접속했다.
가상화폐만으로 이미 강남 건물을 사고 제주도에서 파이어족 라이프를 즐긴다는 이 유튜버는 안정적인 코인의 특징 몇 가지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유튜버는 각종 자료도 띄워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안경과장도 얼른 두꺼운 회사 다이어리를 펼쳐 메모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마친 유튜버는 양손을 짝! 겹치며 말했다.
“자~! 끝까지 제 강연 들어주신 우리 코다리 여러분~ 제가 진짜 귀한 정보 하나 알려드릴게요.
이건 딱 지금 라이브에서만 알려드리고
이 영상도 삭제할 겁니다!
귀 쫑긋하시고, 메모 딱 준비하고 들어주세요~”
그리고 유튜버는 처음 들어보는 코인 하나를 추천했다.
"이건 북유럽 몇 개 나라에서만 유행이라 국내에는 잘 안 알려져 있어요~ 눈치 빠른 분들은 딱 감이 오시죠?
제가 영상 준비하면서 오늘 새벽에 봤을 때보다도 400%나 올랐구요~ "
"지금 이 코인, 실시간 모니터하고 있는데..
자~ 보세요~ 오르죠? 계속 오르죠?
자~ 제 말이 맞죠? 제가 딱~ 말씀드렸잖아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여러분~
지금 1초라도 빨리 투자하시는 분이 단 돈 100만 원이라도 더 버는 거예요~"
짝!
말을 마친 유튜버는 습관처럼 또 양 손바닥을 마주쳤다. 동시에 안경과장은 눈을 부릅떴다. 빨려 들어갔다. ‘마감임박'이 빨갛고 커다랗게 번쩍이는 홈쇼핑을 보는 것 같았다.
수익률 1000%, 60억, 강남 건물.
이 세 가지가 눈앞에 뱅글거렸다. 흥분되는 마음에 심장이 널을 뛰며 조여왔다.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안경과장은 홀린 듯이 마이너스통장 계좌에 접속했다.
빨리, 서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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