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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미국 초등학교 등교 첫날

미나리의 초등학교 첫 날

by 엘레브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학교와 미나리의 학교가 개학을 했다. 나는 학과 온보딩이라 아직 수업은 아니지만 모두 참석해야 하고 9시부터 4시경까지 꽉 찬 스케줄이라 개강이나 마찬가지처럼 느껴진다.



미나리는 처음으로 등교를 하는데 미국 학교가 다 그런지는 몰라도 이 곳 대부분은 초등학교에 핸드폰을 못 가져오게 한다. 비상시에 엄마아빠에게 전화하면 달려가겠다고 신신당부를 해놨는데 못가져간다니! 다들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지역 선배맘들이 있어서 눈 질끈 감고 학교에 보냈다.



하루종일 전전긍긍하며 지냈다. 하필 구매한 차가 엔진 점검등이 켜지는 바람에 제이는 자동차 딜러샵에 다시 차를 가져갔고 이런저런 절차가 늦어져 내가 중간에 빠져나와 미나리를 픽업하러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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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유로 직접 아이를 픽업하는 다른 학부모들이 학교 옆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무슨 숫자가 커다랗게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는데 힐끗 살펴보니 학교에서 나눠준 모양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다가 무심한 듯 휙 휙, 혹은 '저렇게 해서 숫자가 보이나?' 싶을 정도로 까딱 까딱 종이를 학교 문 쪽을 향해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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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보니 아이들마다 정해진 코드 번호가 있어서 다같이 선생님과 함께 문 안쪽에 줄 서서 있다가 자신의 번호를 들고 있는 보호자가 보이면 선생님이 번호를 대조 후 아이를 하교시키는 시스템이였다. (미나리는 첫날이라 아직 번호는 못받아서 내가 담임과 직접 통화를 하고 나서 하교가 가능했다.)





걱정하고 밤잠 설친게 무색하게도 아이는 너무나 밝은 얼굴로 쏙 하고 학교 문을 나왔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아이를 맞이했다. (누가 보면 저 여자는 애가 저렇게 크도록 학교 처음 보내보나? 싶었을 거다.)



"학교 어땠어?"


"내가 그 질문 하지 말랬잖아."



샐쪽하게 말해놓고는 바로 수다를 늘어놓았다.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한 이야기, 한국과는 뭐가 다른지, 새로운 담임 선생님은 어땠는지, 점심시간에 친구와 간식 나눠먹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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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을 잘 하려나 얼마나 힘들까 몰래 눈물짓고 밤마다 제이를 붙잡고 걱정을 한바닥 늘어놓았는데. 참, 허탈했다. 적응을 아무리 잘해도 하루만에 해버릴지는 몰랐다. 화장실만 잘 다녀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튼 한시름 덜기는 했다.



"넌 이번 학기는 공부 금지야! 열심히 할 생각 하지도 마! 학교에 그냥 갔다 오고, 화장실만 잘 다녀오면 그냥 다 한거야. 알았지?"


"엥?"



좋은 변화라도 변화는 변화이고,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일테니까 집에 와서는 아이스크림도 칭찬과 함께 듬뿍 덜어주었다. 숙제도 아직 없다고 해서 TV도 실컷 보여주면서 충분히 늘어져 있도록 했다.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서 저 쪼그만게 하루종일 긴장했을 테니까.



역시 고단했던지 조그만 발과 종아리를 주물러주니 코를 도롱도롱 골며 잠들었다.

덕분에 나는 내 학교 온보딩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다 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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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011.JPG 미나리가 첫날 당당하게 그려온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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