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꼰대예방법)
오늘 어떤 글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Games have the power to be more immersive than film.
게임은 영화보다 몰입도가 더 높다.
게임 UX를 볼 때 영화, 소설, TV 등과 비교 가능한 동일 선상의 매체라고 여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태 각각의 몰입도 비교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위 대목을 읽고 궁금해졌다.
‘게임이 영화/책보다 몰입도가 높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을 때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설처럼 ‘당연한 사실 아냐?’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소설보다 몰입도가 높다는 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영화는 그래픽과 (실감 나는) 소리가 나오니까!”
게임이 가장 몰입도가 높다는 사람들에게 “왜?”라고 묻자 대부분 0.5초 만에 답했다.
“게임은 상호작용(interation)이 있으니까!”
“봐봐, 글만 있는 걸 읽을 때보다 소리랑 그래픽이 있으면 더 집중이 잘 되잖아. 거기에 인터랙션은 가장 강한 몰입도를 주는 요소인데 그러니까 당연히 게임이 몰입도가 제일 높은 형태인 건 당연한 사실 아냐. 이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소설은 글(텍스트)이다.
영화는 그래픽+사운드이다.
게임은 그래픽+사운드+인터랙션이다.
⇒ 그러므로 몰입도의 순은 게임 > 영화 > 소설의 순이다?
납득이 되기는커녕 궁금증만 더해갔다. 밖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 100명을 붙들고 물어봤을 때 ‘당연하잖아! 100년 전부터 당연했어. 조상 대대로 그렇게 믿었어.’라고 말한다고 해도 나에겐 근거가 필요하다.
100년까지 가지 않아도 10년 전에만 해도 진실이라고 믿었던 많은 주장들이
현재는 그 반대로 밝혀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100년까지 가지 않아도 10년전에만해도 진실이라고 믿었던 많은 주장들이 현재는 그 반대로 밝혀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특히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아무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 해도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제대로 찾아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오늘까지는 진리라도 내일은 거짓이 될 수도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젋은/늙은) 꼰대가 되지 않는다.
아래는 담배가 건강에 좋다고 믿었던(사람들을 속였던) 시절의 담배 광고들.
이건 대놓고 사람들을 속인 내막이 있어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담배가 건강에 좋다고 담배 회사에서 말했기 때문에 모두 믿었다.
모두가 이 사실을 믿고 있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다니는 상황에서 비판적 사고를 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맹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카더라'하는 정보를 믿기보다는 언제나 '묻고 따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The aim of argument, or of discussion,
should not be victory but progress.
논쟁이나 토론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진전(앞으로 나아감)이다.
- Karl Popper
먼저 완전히 동일한 내용으로 최대한 동일하게 3가지 미디어를 만들어 실험하는 게 애초에 가능한지, 그렇다 하더라도 과연 영화, 책, (디지털)게임처럼 이렇게 다른 형태의 것들을 ‘몰입도'라는 것으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할지, 등이 궁금했다.
단순히 길게 집중했다, 혹은 내용을 오래 기억했다 등이 아닐 것이다. 찾아보니,
...immersion can be measured subjectively (through questionnaires) as well as objectively (task completion time, eye movements)."
(Jennett et al., 2008, p. 641)
다시말해 몰입은 다음과 같이 측정 가능하다:
주관적: 설문지를 통해 측정
객관적: 과업 완료 시간, 눈의 움직임을 통해 측정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Oxford 사전: 어떤 일에 깊이 파고들거나 빠지는 것
국립국어원: 깊이 파고들거나 빠짐 (몰두: 어떤 일에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열중하다.)
‘미친 몰입도의 게임', ‘몰입감 높은 영화'라고 일상에서 자주 쓰는데 여기서도 흥미를 가지면서 집중할 수 있는 것 / 에너지가 완전히 쏠리고 활동을 즐기는 상태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을 다룬 책, 영화, 게임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스토리가 탄탄한 소설
스토리가 탄탄하고 화려한 CG와 음향효과의 영화
스토리가 탄탄하고 화려한 CG와 음향효과에 사용자가 탭 하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임
⇒ 여기서 게임은 ‘탭 하면 넘어간다', 즉 인터랙션 요소가 있으니 가장 몰입도가 높을까? 영화만 하더라도 영화관의 경험과 모바일로 시청하는 경험이 다를 텐데?
해리포터 시리즈, 혹은 넷플릭스의 위쳐 시리즈는 어떨까.
주변만 해도 어떤 사람들은 영화가 게임이나 소설이 주는 몰입도를 영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예들이 없어도 사람들은 소설(책)이 가장 몰입도가 높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게임이 영화나 책보다 가장 몰입도가 높다고도 한다. 개인의 호불호라고 하기에는 동일한 사람이라도 어떤 것은 게임에, 또 어떨 때는 영화에 더 몰입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케바케를 넘어 +사바사(사람 by 사람)인데 정설처럼 ‘게임이 영화/책보다 몰입도가 높다' 혹은 ‘게임은 가장 몰입도가 높은 형태의 매체이다'라고 단정 짓기 어려워 보인다.
‘게임과 영화 혹은 게임과 소설의 몰입도’를 비교한 믿을만한 논문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내가 가지게 된 의문은 게임을 다른 매체인 영화, 책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을 미디어 장르 범주로 분류하는 것이 합당할까? 게임 이외의 미디어 장르가 소비자들에게 주는 재미와 게임만이 줄 수 있는 재미는 동일한가?(이용설, 2017, p. 23)
하지만 게임과 몰입은 흥미로운 주제라 앞으로 몇개 글로 나눠 자세히 써보려고 한다.
구글에서 한글로 ‘게임 몰입’이라고 검색하면:
이번에는 영어로 ‘game immersion’이라고 검색했더니:
References
Jennett, C., Cox, A. L., Cairns, P., Dhoparee, S., Epps, A., Tijs, T., & Walton, A. (2008). Measuring and defining the experience of immersion in games. International Journal of Human-Computer Studies, 66(9), 641–661. https://doi.org/10.1016/j.ijhcs.2008.04.004
이용설. (2017). GAME 상호작용 이야기. 한언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