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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May 13. 2020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는 꼭두각시인거야.

우리 돈 수금하는 자리란다.

내 생일에 맞춰 제이가 잠시 한국에 들어온다고 했다. 방학도 했고 연말이기도 하니 겸사겸사 들어온다고. 그리고 마중나간 공항에서 제이가 프로포즈를 했다. 그 사람 많은 데서 아이패드를 열더니 '러브액추얼리'의 한 장면처럼 한장 한장 프로포즈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스케치북 종이의 감성대신 아이패드가 신박했고, 화려한 꽃다발 대신 그 아이패드를 내밀었다. IT 덕후인 나에게 완벽한 프로포즈였다.


나의 승락 이후 무서운 기세로 몰아붙이는 제이의 실행력으로 우리는 초 스피드 결혼을 진행했다. 준비시간을 길게 가져봤자 이것 저것 허례허식을 다 하는 한국 (일부) 결혼 문화를 따르다 결혼 파토나기 일쑤라는 제이의 주장 때문이었다. 주변의 쓸데없는 간섭을 처 내기에 시간 없다는 핑계가 제일이라는 것이다.


"난 우리 부모님을 너무 잘 알아. 자식보다 주변 눈이 더 중요하신 분들이셔. 남들 하는 거 다 하자고 박박 우기고 그러다 우린 내년에도 결혼 못 할걸."

"안 주고 안 받고, 결혼은 약소하게 하고 그 돈으로 결혼생활에 보탠다고 하면 되잖아."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남들 보는 눈이 있는데. 그딴 소리 할거면 나가!' 이러실 걸. 정신없이 몰아붙여서 쓸데없는 생각을 아예 못하시게 해야 돼."


과연 제이의 예상은 다 맞았다. 한국 부모님께 결혼식이란 본인들이 주인공인 자기들만의 일생일대 행사이기 때문이다. 논리는 너무나 단순 명료했다.


"우리 결혼할 때도 우리 부모님이 주인공이었으니 너희 결혼식은 당연히 우리가 주인공이다."

즉, '우리도 피해자였다.'라는 카드를 내민다.


또 '우리가 그동안 낸 돈을 거둬야하는 자리가 결혼식이니 우리들 마음대로 하겠다.' 라고 주장했다.


"네들은 네들 자식 결혼식 때 마음대로 하면 되는 거야. 원래 한국은 대대로 이런거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거야."

제이의 어머니는 덧붙였다.

"이런 게 바로 '내리사랑'이라는 거야."

(내리사랑이 이런 뜻이었다고?)





그나마 2달 안에 결혼식, 비자 신청 등을 모두 마치고 미국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부모님들이 휘두를 기회가 적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점점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 제이의 먼 외가 친척 어른들까지 결혼에 간섭을 시작하면서 차질이 일어났다. 부모님들에겐 자식보다 몇년 만에 이 결혼을 계기로 보게 된 친척의 기분이 더 중요한 듯 했다.


결혼식을 포함, 모든 준비 비용은 양가에서 똑같이 반반씩 부담했고 축의금은 단 한푼도 받지 않았다. (주지 않으셨고 받을 생각도 없었다.) 모든 비용을 반씩 나눴는데도 불구하고 제이의 부모님과 제이의 오촌아저씨(어머니의 사촌 오빠)까지 주례, 청첩장 글귀, 축하곡, 축하곡 부를 사람, 신랑신부 입장곡, 드레스, 심지어 신부 헤어스타일까지 간섭하려 들자 결국 우리 둘은 폭발하고 말았다.


특히 나보다도 제이는 예상보다 심한 '시부모'로서의 부모님들 모습에 과히 충격을 먹어 그만큼 거칠고 세게 전투했다. (얘도 '우리 부모님은 나한테나 그러지 다른 사람한테 그럴 분들은 절대 아니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우리는 신혼집과 혼수를 포함해 신혼여행 경비까지 양가에서 그 어떤 금전적 도움도 일절 받지 않았다.

"결혼에서 네들은 그냥 꼭두각시들인거야."

라는 말에 반발하여 그 끈을 전부 끊어버리는 게 우리의 '결혼식 및 독립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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