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던 날

금성이 가장 빛났다



한때 나는 그때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하며 지냈다. 버려지지 않았더라면 안 했을 생각이었을까?


살아가며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 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누구로 살기 위함일까?


대체 왜 이 세상에 나온 것일까? 어떤 사람이 되라고 했던 것일까? 이렇게 사는 게 지옥인 거라면 전생에 굉장한 큰 죄를 진건 아니었을까? 오래도록 생각했다.


한참의 시간들을 나의 정체성과 나의 뿌리에 대하여 고민하며 지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던 때가 있었을 때, 그때 마음먹었다.


내가 태어난 날을 축복의 날로 결정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약속이 있었을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올해 나의 4번의 을사년을 만났다. 자궁문을 열고 나오던 그 순간의 시간에서 우주의 별들이 나만의 명식을 만들던 그때, 나는 소중하고 귀하게 태어난 것이라고 외우기로 했다.


아들이 태어나던 날


내가 아이를 낳으려고 준비하던 그날 새벽 3시, 양수가 터졌고 비바람이 몰아치고 태풍이 불어왔다. 마치 드라마에 한 장면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12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가 태어났다.


엄마는 나를 낳은 날에 대하여 행복이었고 불행이었다고 했다. 생은 그렇게 행복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한 것이라 이상할 것 하나 없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말이지만 그 말 안에는 인생 전체가 들어있다.

나도 똑같이 내가 낳은 아들을 생각하면은 행복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너무도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 있기도 했고 짧은 행복의 시간이 있기도 했다. 아기였고 어린이 었고 그리고 지금은 청소년이 되었다 매우 주도적이면서도 유약한 아이는 매일 독립을 꿈꾼다


건강한 독립을 응원하지만 때때로 가슴에 비수를 꽂으며 떠날 준비를 한다 내가 맨 처음 아이를 낳았던 그날 낯설기도 했고 경이롭기도 했던 그날의 감격, 그걸로 된 것이다. 그것으로 아이는 자신의 몫을 다 한 것이다.


여수바다



새로 만나는 다음 발달단계


어린날이나 청년이었던 날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신이 났던 적이 있었다 마냥 즐겁고 몸 안에서 파티 DNA가 넘치는 사람처럼 매일이 축제였던 날들이 있었는데 내가 변했다.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다 상처가 싫은 것이다라는 어느작가의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 나는 왜 자꾸 상처받는 관계를 반복하는 걸까라는 책도 읽은 적이 있다. 붕어 마냥 돌아서서 가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낚시 바늘을 깨무는 것처럼 반복되는 상처들, 붕어들의 주둥이는 바늘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슬픔이란 없다. 우린 붕어가 아니니까 다만 잘 느끼는 만큼 잘 처리하면 훌륭한 것이다. 아이는 적절히 커가고 우리 부부도 적절히 늙어가는 중이다.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과정에 있는 것이니 염려하지 말기로 해본다.


노년을 잘 준비해 보자


여수바다


벌레로 태어나 나비가 되어
나비로 돌아가는 것

몇일전에 라운딩에 나가서 나무수국 이파리 위에 수백마리의 애벌레떼를 보았다 너무도 예쁜 나무수국 이었는데 꽃을 만지려다 놀라서 기절할 뻔 했다.


징그러웠다 나도 그렇게 징그러운 날들을 보내다 나비가 되고서야 이제는 살아도 되는 것 처럼 살고 있다.


내가 벌레로 태어났던 날, 나는 영영 벌레로 살 줄 알았다. 내가 나비가 될거라는걸 나비가 되고서야 알았다. 나비가 될거라고 알려준 사람도 없었고 나비가 되기 위한 준비도 다 하지 못한체 나비가 되어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길


외할아버지 마중 나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무덤에 모시고 난 후 그때 제비나비 한 쌍이 날아와 무덤 주위를 돌다가 날아갔다고한다. 우연일지라도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 마중을나왔다고 친척들은 말했다.


외할버지 무덤앞에 날아든 나비 한 쌍


나는야 나비벌레

좋은 나비가 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