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에 대하여

나는 누구인가!

언제쯤이면 진짜 나를 알 수 있을까?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큼 알고 있나요?

아주 어릴 때, 아마도 혼자 남겨졌다는 걸

알아차렸던 순간이었을 것 같다.

그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

그날 내게 했던 첫 번째 질문이다.

왜 태어났을까?

그 후로 나는 수도 없이 나에게 여러 질문들을 해왔다.

그런 후 17살이 되던 해에 나는 다시 또 새로운 질문을

했다.​​

나는 누구인가?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 당시 문체부에서 고등학생 대상

문예행사가 있었고 그곳에 나는 시를 공모했다.

그리고 입상을 했다.

대상은 장관상이었지만 나는 장려상이었고

시장상을 받았다.

​​

그때는 어린 마음에

어쩐지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얼마나 못썼으면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돌아보면 입상도 못한 사람도 있었을 텐데...

나는 나에게 늘 NO라고만 했다.

고교시절 1학년 입상한 나의 시 제목은

여보소! 내게 길을 알려주소

​시 내용은 가물거리지만 어렴풋이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

볼 수 있는 눈이 없고
들을 수 없는 귀가 없고
말할 수 없는 입이 없으니.... 중략

여보소, 내게
길을 알려주소

이때 나는 멘토가 절실했었다.

곁에서 조언을 해줄 어른이 단 한 명도 없었던

때라 앞이 막막했었다.


그리고 여러 세월을 지나 오늘이 왔고

나는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중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이 질문은 언제쯤이면 끝이 날까?

진정한 정체성을 찾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했다. 교육학을 전공하여 교사가 된다고 했다가

심리학으로 심리학 박사가 되었다. ​

박사가 되고 난 후 나의 걸어온 길을 보며 내가 왜

심리학을 하게 되었는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

나는 나를 몹시 궁금해했다.

내가 다른 사람과 조금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고통을 더 크게 느끼고 슬픔을 더 깊게

느낀다고 생각했다.

​​

반대로 기쁨, 즐거움, 행복, 감사 또한

그러했다. 조금 이상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하기 시작했다. ​

그때 아홉 살의 나의 질문과 40년이

지난 후 사십 아홉의 나의 질문은 여전히 같다.

그러나 다름이 있다.

​​

그 다름은

이제야 나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타인에게만 YES를 했던 내가

드디어 내게도 YES를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도 예스를 할 수 있어야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알 수 있다.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내담자와 동행하며 그들과 함께

수없이 했던 훈련을 오늘 나에게도

건네본다. ​

아는 것과 인정하는 것이 다름을

증명하려면 실천해야 한다.

​​

끝내 마지막 모습은 행동이다.

나는 어떤 행동으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볼 것인지

고민해 보기로 한다.​

오십을 준비하며 오십의

나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본다

​​

그대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