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함께하기

담아주고 안아주기

고통이 고통임을 아는 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떠오른 문장을 타이핑해 본다.


내게 일어나는 숨 깊은 방황들과 열심히 갈등 중이다.

언제나처럼 여전히 걸어가는 길 위에 있는 내가 못마땅한 듯 보인다.

이웃 블로거 이든 힐러님의 오늘의 글 제목이 인상 깊다.

이제 내게 열등감이라는 옷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지금껏 걸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나의 최종 목표를 이루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사 이후 직업으로는 교수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걸어왔으나 여러 가지 사정상 어려움이많았다. 엄마는 틈만 나면 묻곤 하지만 이제는 늦은 것 같으니 그만 포기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박사를 마치고 온 에너지가 빠져나가고 이젠 가죽만 남은 기분이다. 호랑이도 아닌데 가죽만 남기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거라는 고전 속에서 그저 꼰대가 되어가는가 보다. 오래전 법률스님의 강의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는 자녀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지는 마음이라고 했다.

아이는 차곡차곡 성인이 되어가고 나는 추적추적 늙어가면서 더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서로 같은 세상에서 다른 세계를 살지만 부모인 나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늘 전전긍긍하고 있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까 봐 매일이 조바심이 난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내가 세상에 어떤 유산을 남길 수 있을지, 적어도 아이에게 남길 유산은 무엇이 될까? 물론 100세 시대를 생각하면 반이나 남았다.


남편은 새벽 3시가 되니 일어나 출장 준비를 한다. 참 가기 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게도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인사를 하고 소란스러운 꿈속을 헤매며 잠을 자고 있었다. 잠시 후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이다. 여권을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당장 내가 여권을 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다른 일정이 없어서 아침 6시, 차를 몰고 인천 공항으로 달린다. 잠이 덜 깨서 운전을 하니 잠시 동안 몽롱했다.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하니 사색에 잠겼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늘 그러하듯 내가 가는 길에 무엇이 깃들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그냥 가면 되는 건지...

너무 많고 다양한 일들을 해오다 보니 익숙해지기 전에 능숙해지기 전에 다른 일로 갈아타는 것 같다.

결국엔 어느 것에도 능숙해지지 못하고 언제나 처음 같고 늘 초보자 같은 기분이다. 어떤 일에 오래도록 하는 것에 실증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35년 살고 일본에서 15년 살고 남은 생의 반은 다른 어딘가에 가서 살고 싶다.

남의 나라에서 살다 보면 나의 나라가 그리워지고 나의 나라에서 살다 보면 나의 나라가 지겨워지고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만족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늘 요구는 나를 불만스럽게 하곤 한다.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속 서랍이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답답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겠다.

지금은 그저 이대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는 이 순간도

결국은 내가 걸어가야 할 삶의 일부이기에

심리학에서 말하는 대상관계 이론에서처럼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안아주고 담아내고 버텨주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담자는 안아주기와 담아내기를 통해

내담자의 분열을 통합시켜야 한다.

안아주기란, 상담자가 내담자의 욕구와 내적 상태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이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고

담아내기란, 내담자가 두려워하는 감정, 충동, 경험을 상담자가 자신의 마음에 담은 후 내담자의 부정적인 마음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다.


방황하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냥 살아내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무엇이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 이대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으로,

이미 삶은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