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길이 닿은 구석마다 봄이 차오르고 있었다

​육아라는 긴 문장 속, 쉼표처럼 찍어둔 일상의 조각들

by 오롯이

오늘은 마음먹고 집안 곳곳을 정돈했다. 사실 거창한 봄맞이라기보다, 유난히 눈부신 햇살에 등을 떠밀려 시작한 청소였다. 산책을 나가기엔 볕이 너무 뜨거워 집 안에 머물기로 한 것인데, 문득 바닥을 유심히 살피는 아기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이제는 정말 닦아야 할 때'라는 신호가 온 듯했다.


​오랜만에 잡은 걸레질은 생각보다 정직했다. 처음엔 이런저런 잡념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내 쓸고 닦는 단순한 행위에 몰입하게 됐다. 어수선했던 공간이 비워지고 반짝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것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흐트러진 마음을 정갈하게 빚는 시간이었다. 땀 흘린 뒤 마주한 소박한 밥상은 그 어떤 성찬보다 달콤했고, 정돈된 집안은 비로소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청소를 마치고 거실 한편을 보니, 신생아 시절부터 우리와 함께했던 유모차가 보였다. 이제는 '졸업'을 시켜줄 때다. 처음 유모차를 고를 때, 조금이라도 더 튼튼하고 안전한 것을 주고 싶어 중고 마켓을 며칠이나 뒤졌던 기억이 선하다. 덕분에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기를 태우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볐다.

​든든한 유모차에 몸을 맡긴 아기가 잠들거나 창밖을 구경할 때면, 나 역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절을 만끽하곤 했다. 이제 그 묵직한 유모차를 떠나보내고 나니, 어느덧 돌을 앞둔 아기의 성장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온다. 우리 가족의 첫 산책들을 묵묵히 지켜준 유모차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인상 좋은 예비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그곳에서도 새로운 생명의 첫걸음을 따뜻하게 품어주기를.

​유모차는 떠났지만, 산책길에 만난 봄은 더욱 짙어졌다. 길을 걷다 문득 코끝을 스치는 꽃내음에 걸음을 멈춘다. 향긋하고도 다정한 이 공기는 육아라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산책을 결코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고요하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우리 가족 역시 이 계절 안에서 무탈하게 영글어가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동생이 챙겨준 '버터떡'을 꺼냈다. 요즘 유행한다는 그 이름만큼이나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쫀득한 식감을 즐기다 보니 문득 가족들 얼굴이 떠오른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 다음번엔 꼭 함께 나누리라 다짐하며 기분 좋은 디저트 타임을 즐겼다.

하루의 마무리는 필사로 채운다. 최근 김종원 작가의 문장들에 매료되어 시작한 루틴이다. 아기가 잠든 고요한 오전, 사각거리는 펜 소리와 함께 좋은 문장들을 옮겨 적는다.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문장들은 마음의 자양분이 되어 나의 언행과 일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대청소로 비워낸 자리에는 봄기운이 차올랐고, 아이의 성장은 유모차라는 물건 대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오늘도 나는 육아라는 긴 문장 사이에 작은 쉼표들을 찍으며,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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