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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10. 2024

[두산인문극장 2024] 더 라스트 리턴

개입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공연은 내가 원한다고 무조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찰나의 순간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내가 궁금하거나 좋아하는 극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보고 싶은 공연이 매진이라 포기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은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끌리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은 작가가 공연을 보러 갔다가 매진되어 취소표를 기다린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극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각자 저마다의 절박한 사연을 지닌 채 취소표를 기다리며 발생하는 일을 보여준다. 마침 천둥, 번개와 폭우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라 취소표가 더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그렇다면 누가 취소표를 차지하는 게 맞을까? 당연히 가장 먼저 온 사람 아닌가? 아니면 가장 간절한 사람? 간절한 사람이라면 그 간절함은 누가 평가할 수 있나? 이를 알려주기 위한 연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매표소 직원도 끊임없이 자신은 매표소 직원이지 줄을 세우는 건 본인의 업무가 아니라고 외친다. 자신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사연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니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줄을 서 있는 동안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 비단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맨 처음 줄을 선 사람은 사실상 실패자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1등이다. 다시 기회를 부여받았고, 그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장면에서 입시가 생각났다. 입시에서도 이미 합격한 사람들이 있고, 예비 번호를 부여받는 사람도 있다. 예비 번호를 받은 사람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기다린다. 다시 한번 기회가 생겼고, 실제로 운이 좋으면 합격의 문에 들어선다. 하지만 예비 번호도 부여받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럼 대기줄에 섰다는 자체만으로 행운인 걸까?



또한, 권리의 상대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 라스트 리턴>은 이런저런 상황으로 자신의 순서가 왔다 갔다 한다. 내가 1등이었을 때, 후순위가 될 때, 누군가 내 앞에 오게 될 때 등 때에 따라 말과 행동이 바뀐다. 그럴 때마다 각자의 추악함,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진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때 사회적 약자의 모습도 눈여겨보게 된다. 약자 사이에서조차 순위를 나누는 모습, 약자의 정체성을 하나만 가진 사람과 두 개 이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긴장감. 그러다 내 자리, 즉 내 권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때 사람들은 반응한다. 또한, 정당한 방법이든 아니든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모습, 약자가 약자로만 머무르지 않는 모습들을 보며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누가 취소표를 차지하는 게 맞다고 알려주는 극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취소표를 차지하는 사람은 관객의 몫일 줄 알았다. 따라서 왜 마지막에 누군가가 취소표를 차지하는 모습이 직접적으로 나오는지 궁금했다. 나의 기준으로 인물들의 절박함을 제단하고 있었지만, 섣불리 어느 한 명이 특출나다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까지 들은 후, 나름대로 깨달은 점은 시스템을 지킨 사람이 취소표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전개되는 장면들이 어색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게 시스템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을 때 발생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시스템 안에서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걸까. 



4월 매주 월요일, 두산인문극장 강연을 들으며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권리가 실현되는 모습들을 봐왔다. 한편 동시에 법이 전부는 아니라고 느끼기도 했는데, 권리 실현을 위해서 법은 무조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일까? 혹시 아직까지 우리의 시스템이 닿지 않는 곳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두산인문극장 #권리 #DO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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