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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배우고, 방한복을 얻다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4)

by 김엘리

다음 사당으로 가기 위해서 다시 땅으로 워프한 나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몬스터들이었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뭔가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묘한 울부짖음이 들린다. 등골이 서늘하여 뒤를 돌아보니... 헉! 뼈만 남은 해골들이 무기를 들고 쫓아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서쪽으로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달이 워낙 밝아서 어두워진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밤이 되면 하이랄에는 이런 해골들이 판치는구나.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가 쫓아오니 곤봉을 얼른 손에 쥐었다. 해골이 공격하는 타이밍을 보고 있다가 한번에 공격! 운이 좋게도 한 번 휘둘렀는데 두 마리 해골이 한번에 쓰러졌다. 바로 뒤를 돌아보니 뒤에서 나를 노리고 있는 또 한마리의 해골이 있기에 힘차게 곤봉을 휘둘렀다. 보기 좋게 명중! 헤헷, 시도하는 공격이 모두 먹혀들어가다니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정말 찰나였다. 해골이 부서져 흩어지기에 전투가 끝났나 했더니, 목에서 떨어진 해골 머리가 통통 튀어올라 다시 몸을 이룬 뼈 골격 위에 붙었다. 이런, 약점인 머리를 계속 노렸어야 했군! 곤봉 말고 좀 더 긴 무기가 필요하단 생각에 언제 줏었는지 모를 여행자의 창을 들고 연속 공격을 시도했다. 곤봉보다 타격감이 약하긴 하지만, 빠른 공격이 가능하고 적과 다소 거리를 두어도 공격이 되어 편했다. 창을 몇 번 휘둘러 해골의 머리를 모두 파괴하고 나자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해골 녀석들은 뭔가 징그러운 전리품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그 중 계속 움직이는 팔이 있기에 가까이 가서 보니 '보코블린의 뼈'였다. 길이가 제법 되어서 공격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들어보니 매우 가벼운데다가 튼튼해 보이지 않아 버렸다. 사실, 등에 매어 보니 계속 움직여서 소름끼치는 기분이 들었기에 주머니에 넣지 않고 버린 것도 있었다... 하하...;;


밤에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적들이 나타나므로, 어딘가 안전한 곳을 찾아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다. 생각해보니 처음 깨어난 동굴에서 일어난 이후 쉬지도 않고 계속 돌아다녀 피곤했다. 어디서 쉬면 좋을까, 주변을 돌아보다 큰 나무 뒤로 돌아갔다. 그런데 왠걸. 바로 앞에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터가 있는 게 아닌가. 몬스터들은 자고 있었지만, 한 발짝 들어갔더니 잠들어 있던 보코블린들이 모두 일어났다!


다시 전투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적은 모두 세 마리. 모두들 무기부터 챙기기에 무기가 놓여 있었던 나무 위로 올라갔다 점프하며 곤봉을 내리쳤다. 한 마리는 충격파에 비틀거렸고, 다른 한 마리는 바로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녀석들의 공격을 피해 가며 뒤로 빠졌다가 다시 공격하기를 반복, 차례차례로 세 마리를 모두 해치웠다. 헉헉...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이 정도가 되니 이제 붉은 보코블린들은 두렵지 않았다.


전투를 마치고 전리품을 챙겼다. 돌아 나오니 다시 첫 사당이 있는 방향이다. 어느 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 아침 해가 떠오를 것처럼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런... 그만 밤을 꼴딱 새 버렸네. 길을 돌아보는데, 왠 보물상자가 2개나 놓여 있는 늪을 발견했다. 처음 들어갔던 사당 주변이라 발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젯밤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한 번 빠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늪 위의 나무판자에 올려져 있어서, 어떻게 가져올지 조금 고민을 해야 했다.


생각해보니, 어제 사당에서 얻었던 시커 스톤의 힘이 떠올랐다. 마그넷 캐치를 사용하면 보물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마그넷 캐치로 사당 주변의 연못에서 보았던 긴 철판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늪 위의 나무판자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땅과 나무판자 사이에 철판을 조심스레 놓았다. 첫 시도는 실패. 철판의 한쪽이 늪에 빠져버렸다. 다시 마그넷 캐치로 철판을 들어 이리저리 시도한 끝에 간이 다리를 놓는 데 성공했다.


조심스레 다리를 건너 보물 상자를 열어보았다. 두 상자에는 모두 특별한 화살이 들어 있었다. 불의 화살과 얼음의 화살이 각각 5개씩! 이건 횡재야 싶어 기분이 좋아졌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활이 없었다. 어디서 활을 구하면 좋지? 활을 구하는 게 일단 먼저긴 하지만, 활을 내가 쓸 수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늪을 돌아가는데, 어느 나무 그루터기에 이상한 사슬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왜 나무에 이런 게 연결되어 있을까... 이상해서 마그넷 캐치를 켜 보니, 늪 안에 사슬과 연결된 병마개 같은 뚜껑이 보였다. 마그넷 캐치로 뚜껑을 들어 당겨보았다가, 왠지 뚜껑이 그루터기 윗부분과 맞을 거 같아 그루터기 구멍에 그 마개를 쑤셔넣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데구르르 구르는 소리가 나고, 넓은 나뭇잎이 달린 가지를 들고 날아다니는 초록 요정이 나타났다. 신나게 '냐하하!' 하며 나타난 요정은 나를 보더니 살짝 당황했다.

"어라? 보쿠린인 줄 알고 깜짝 놀랐네... 근데, 너! 내가 보이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이 요정을 보지 못한다는 건가? 나는 왜 이 요정이 눈에 보이지?


어리둥절했지만, 보이는 건 사실이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초록 요정은 자신을 '코로그'라고 소개했다. 코로그의 숲에 사는 요정이라며, 보쿠린을 만나면 이것 좀 전해 줘! 하더니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손에 받아든 그것은, 작은 씨앗처럼 생겼다. 한쪽은 살짝 뾰족하고, 다른 면은 둥근데... 안 좋은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코로그 요정은 내게, 자기와 같은 요정을 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뭔가 지나가다가 이상한 게 보이면 찾아보라면서 알 듯 하면서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보쿠린을 만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지도 모르지~ 라더니 그 요정은 또 봐! 하고는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기에 어디 사라지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고 그 요정은 계속 그 자리에 떠 있었다. 나는 왜 너를 볼 수 있을까? 보쿠린은 누구야? 물어봤지만, 코로그는 내 말이 안 들리는 건지...무시하는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또 보자는 인사만 한다.


허탈한 기분에 코르그를 등지고 돌아서서 숲 방향을 바라보는데... 어? 뭔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 가장 가까운 사당이 있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이었지만, 연기가 왜 나는지 궁금해져서 숲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숲에 들어가니 옛 건물의 흔적이 약간 남아 있는 곳에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 쓰러져 있는 나무를 보니 화살 그리고 활이 있었다. 앗! 이런 곳에 왠 활이 놓여 있지? 자세히 보니 여행자의 활이었다. 안그래도 활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잘 되었다. 활과 화살을 챙기고 고개를 들었는데, 숲 안쪽에서 그 수수께끼의 노인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뭘 하는 걸까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노인은 어딘가를 열심히 바라보며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뭐 하세요?"

물어보자 그는 나를 흘끗 보더니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면 모르나. 지금 사냥을 하는 중이지. 조용히 해 주게."


사냥!

왜 주변에 활과 화살이 놓여 있었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 활과 화살은 노인의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사냥이라는 말을 듣는데, 왜 이렇게 신이 나지? 나는 노인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멧돼지가 꿀꿀거리며 덤불을 뒤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노인은 멧돼지를 바라만 볼 뿐, 정작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다 답답함을 느껴 멧돼지 쪽으로 살금살금 몸을 낮추어 걸어갔다가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활을 쏴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렇게 하면 되겠지? 싶었다. 시위를 뒤로 쭉 당기면서 멧돼지의 머리 쪽을 겨누었다. 지금이야!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느낌에 화살을 놓았다. 화살은 보기좋게 날아가 멧돼지의 귀 주변에 맞았다. 하지만 덩치가 워낙 큰 녀석이라, 잠깐 충격을 받는 듯 하더니 다른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 멧돼지가 움직이자, 주변에 있던 다른 동물들도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도망가버렸다. 아쉬웠다.


잡지는 못했어도 멧돼지를 맞추었다는 사실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내가 활을 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던 것 같다. 동물들이 모두 흩어져서 다시 노인에게 갔더니,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가지고 있는 활, 나의 것이지? 좋아. 활을 쓰도록 해 줄 테니 사냥을 좀 해 보게. 나는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네..."


그는 장작이 타고 있는 모닥불 곁으로 다가가 커다란 냄비 옆에 앉았다. 이제는 사냥도 시키는건가, 뭐지? 이 노인... 하지만 활을 더 당겨보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나무를 등지고 앉은 그를 확인한 후 숲으로 더 들어갔다. 몸을 숙이고 조심조심 걷는데, 머지 않은 곳에 작은 사슴 한 마리가 있는 걸 보았다. 이번에야말로 머리를 단번에 맞출 테다! 최대한 몸을 낮추고, 조용히 다가가 숨을 고르며 활에 화살을 걸었다.


'휙- 퍽!'


가볍게 날아가는 화살은 보기 좋게 사슴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사슴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와! 사냥에 성공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슴은 이미 '짐승 고기'로 변해 있었다. 이것 참 편리하군 - 나는 고기를 챙겨 들고 의기양양하게 노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노인은 나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하세요?"

내가 다시 묻자, 그는 그저 쉬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난 듯, 내게 요리할 줄 아느냐 물어보았다.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본 그의 목소리는 꽤 부드러웠다. 요리를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하니,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냄비에 음식 재료를 넣기만 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아무 재료나 넣으면 좋은 요리가 나올 수 없다고 하더니, 재료끼리의 어울림을 생각해 보라는 팁을 주었다.


노인의 말에 곰곰히 생각하다, 아까 잡은 사슴고기에 돌아다니면서 땄던 버섯을 넣어보기로 했다. 고기와 버섯을 함께 불에 요리하면 뭔가 멋진 요리가 될 것 같은 - 사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니까 - 기분이었다. 재료를 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커다란 솥에 넣었다. 지글지글 듣기 좋은 소리가 나고, 재료는 맛있게 익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가 완성되었다.


'고기 꼬치구이와 버섯'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오! 기대보다 괜찮은데 싶어 노인에게 요리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노인은 곁눈질로 슬쩍 보더니 특별할 게 없다는 말을 한다. 재료의 조화를 생각해 보라는 건 이런 뜻이 아니었나? 노인의 반응이 별로였지만, 나는 그 앞에서 맛있게 요리를 먹어치웠다. 뭐, 노인에게는 별 게 아닐지 몰라도 맛만 좋은걸?


나는 가지고 있는 재료로 몇 가지 요리를 더 했다. 혹시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지면 먹을 생각이었다. 다음 사당으로 가려면 더 늦어지기 전에 이동해야 했기에 다시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몬스터 무리를 맞닥뜨려 전투를 했다. 이곳에서는 보코블린 방패를 얻었다.


지도에서 미리 봐 두었던 사당의 위치는 '동쪽 신전 옛터' 가운데였다. 길을 따라 가 보니 지붕이 없는 벽이 겹쳐져 서 있는, 너른 공간이 나왔다. 옛 신전 터가 꽤 넓어 여기저기를 보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유난히 이 주변에 커다란 병기들이 이리 저리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끼가 많이 껴 있는 병기 옆으로 가니 부품이 보이길래 하나씩 챙기며 신전 벽 안, 풀이 무성한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사당의 붉은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벽 위로 올라가면 잘 보이려나 싶어서 벽을 타고 올라가 위에 섰다. 1미터 정도 앞에 보라색 보물상자가 보여 반갑게 다가가 열었다. 상자 안에는 얇은 옷이 하나 들어 있었다.


'그것의 셔츠'


그것? ...의 셔츠? 이름 한번 특이하다 생각하고는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낡은 상의보다는 훨씬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그 때...

벽에서 내려와 땅을 딛는 순간, 내 앞에 기우뚱 놓여 있던 병기에 불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웅웅,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기의 윗부분이 빙글 돌더니, 가운데 있는 구슬이 파랗게 빛나고는 계속 움직인다. 앗, 지금도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잠시 그 병기를 쳐다보는데, 파란 구슬에서 붉은 빛이 나와 나를 겨눈다.


그 기계는 나를 겨누면서, 병기 안의 에너지를 모으는 것 같았다. 불길한 빨간 광선... 어디선가 마주친 적이 있는 느낌이었다. 곧 대단한 위력의 공격이 있을 것 같은 예감에 나는 옆의 벽 뒤로 숨었다. 잠시 붉은 광선이 사라졌지만, 내가 다시 병기 앞으로 나서자 눈처럼 생긴 구슬은 나를 겨눈다. 서둘러 벽 밖으로 나가려고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는데, 삐빗-하는 소리의 간격이 점점 짧아진다. 등에 뜨거운 에너지의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쾅! 등 뒤에 무언가 맞아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벽 아래로 내려오는 게 조금만 늦었더라도,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손 전체가 땀에 젖은 것이 느껴져 옷에 손바닥을 닦았다. 벽을 하나 넘었지만, 앞에 또 벽이 있고 다른 출구는 없었다. 이 벽을 오르면 또 공격을 해 오겠지... 그렇지만 사당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다. 빠르게 움직일 수 밖에! 심호흡을 한번 하고 다시 벽을 올라 뛰었다. 바로 나를 겨누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 때, 내가 넘은 벽 바로 앞에 붉은 사당의 불빛이 보였다. 아, 다행이었다.


나는 바로 사당 입구로 뛰어들어가 시커 스톤을 꺼내 인증시켰다.

사당 안에 들어왔다. 이전에 들어온 사당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내 앞에 놓인 물체는 판이하게 달랐다. 사당 바닥을 밟자마자, 어디선가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당을 찾은 자여, 나는 쟈.바시프... 여신 하일리아의 이름으로 시련을 내리노라..."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쁜 숨을 진정시켰다. 자꾸 방금 마주쳤던 커다란 병기의 붉은 빛이 생각났다. 이전에 어디선가 분명 본 적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병기가 뿜어내는 빛이 닿았던 집은 모조리 부서졌다. 이리저리 도망치던 사람들은 그것에 공격받고 쓰러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 때 누군가의 손을 잡고 공격을 피해 뛰고 또 뛰었다... 그 사람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 다급했던 순간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것이 노인이 말하던, 하이랄 왕국 멸망 100년전의 기억인가...'


눈을 다시 떴을 때 마주친 파란 불빛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는데, 자꾸 마주치니 오히려 이 푸른 빛이 안전하게 느껴진다. 주변을 돌아보니 시커 스톤 인증 장치가 있었다. 시커 스톤을 넣었더니 이번에는 폭발 공격을 할 수 있는 타이머 폭탄이 입력되었다.


쟈.바시프에게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들은 금이 가 있어서, 시커 스톤이 만들어내는 푸른 폭탄으로 쉽게 부술 수 있었다. 기폭 시간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점도 편리했다. 시련이라고는 했지만 폭탄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관문을 넘었고, 사당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쟈.바시프를 만났다. 그는 이전의 사당 지킴이와 같이 극복의 증표를 내게 주고 사라졌다.

사당 밖으로 나오니 밤이었다. 나오자마자, 어두워진 틈을 타 땅에서 솟아오르는 스탈 몬스터들을 마주쳤다. 무려 네 마리나 된다. 끝이 뾰족한 나무 창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공격하는 스탈 몬스터를 피해 다른 몬스터들을 먼저 때려주고, 부서진 해골 사이 머리를 찾아 공격했다. 정신 없는 사이, 뒤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한 대 맞았다. 아- 잠깐 어질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창을 들었던 스탈 몬스터가 공격 방법을 바꾸려는 사이, 가까이 다가가 사당 안에서 얻은 칼로 후려쳤다.


전리품을 챙기고 돌아 나갈 길을 찾아봤지만 없었다. 바로 앞에 있는 벽 가운데에 돌 무더기가 쌓여 있기에 그곳에 폭탄을 놓고 터뜨렸다. 쾅! 시원한 소리와 함께 벽 한쪽이 사라졌다. 이쪽으로 나갈 수 있나 했더니 - 맙소사, 다른 병기가 나를 인지하고 바로 붉은 빛을 겨눈다. 다른 길을 찾느니 저 병기가 에너지를 다 채우기 전에, 그저 빨리 뛰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나, 둘, 셋을 마음속으로 세고 후다닥, 동쪽 신전 터를 나가는 길이 보이는 쪽으로 서둘러 뛰었다. 나를 향한 뜨거운 에너지가 느껴졌지만, 다행히 중간에 무너진 벽이 있어 나를 가려주었다.


그렇게 동쪽 신전 터에서 빠져나온 나는 아까 요리해두었던 음식 하나를 먹고, 지도를 다시 켜 보았다. 다음 사당은 산 위쪽에 있었다. 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리며 헤매다가,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주변에 그 거대한 고대 기계가 없는지 주의하며 걸었다. 다시 해가 뜨는 아침이 찾아왔다. 멀리 지붕이 낮은 통나무집이 하나 보였다.


그 집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나무집 밖에는 요리 냄비에 불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집 문은 열려 있기에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집 안에는 거적이 깔린 나무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의자로 쓰일 만한 통나무 하나, 굴러다니는 토기 외에는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식탁 위에 빨간 열매가 세 개 놓여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추운 지방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던 '따끈따끈초 열매' 였다. 전에 그냥 먹었다가 매워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매워서 그런지 몰라도, 이 따끈따끈초 열매를 넣은 요리를 먹으면 몸이 더워진다.

식탁 위에는 왠 두툼한 책이 펼쳐져 있었다. 슬쩍 보니 그 수수께끼의 노인이 쓴 일기 같았다. 읽어볼까 말까 잠시 고민했지만, 노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지금도 나에게 호의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무슨 글을 썼을까 아주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금만 읽어보기로 했다.


일기엔 노인의 낙이 요리밖에 없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이런 저런 요리를 하다가, '화끈 고기와 생선구이'라는 요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요리만 있다면 추운 곳에서 방한복을 입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어쩌다 요리를 하게 된 거라, 사용된 식재료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누군가 이 요리를 다시 재현해 준다면, 그 사람에게 방한복을 주겠다는 내용도 쓰여 있었다.


기대보다 별 내용이 없네? 싶어서 일기 읽기를 그만두었다. 이 주변에 추운 곳은 없을 텐데, 왜 더운 요리가 필요한 거지? 화끈 고기와 생선구이라... 노인이 말한 음식 이름대로라면,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따끈따끈초는 당연히 들어갈 테고(노인도 이 재료는 기억하고 있었다), 고기라면 짐승 고기도 필요할 것이다. 생선구이라면 마땅히 생선도 넣으면 되겠지! 그런데 생선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해 보니, 생선을 어디서 구하나 막막해졌다. 분명 사당을 찾는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연못 몇 개를 보긴 했는데, 그 안에 물고기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생선을 구하기 쉽지 않아서 노인이 기억을 못 하는 걸까...


다시 집 밖으로 나왔는데, 저 멀리서 나무 찍는 소리가 들렸다. 망원경으로 보니, 칩엽수들이 여러 그루 모여 있는 곳에 그 노인이 있었다. 나는 다시 노인에게 다가가 뭐 하시냐고 물었다. 노인은 나를 보더니 나무를 베고 있다며, 도끼로 나무를 찍어 일정한 방향으로 넘길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그게 필요한 일인가?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자, 그는 자신이 준 도끼로 나무를 좀 베라고 말하더니 통나무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번에도 나를 부려먹을 셈인가 싶어 돌아서는 그를 쳐다보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건너편으로 넘어가려면,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는 다리가 없다. 지도를 다시 켜 보니 다음으로 가는 사당의 지름길을 찾으려면, 이곳에서 나무를 베어 계곡에 걸친 후 다리처럼 써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노인은 이미 내가 뭘 할 것인지 다 꿰고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노인이다...


나는 노인이 알려 준 대로 도끼를 꺼내, 반대편 땅 방향 쪽으로 나무가 쓰러지도록 도끼를 휘둘렀다. 두 번 크게 도끼로 나무를 찍었더니, 나무는 기대보다 쉽게 원하는 방향으로 넘어갔다. 조심스레 나무를 건너 반대편으로 갔는데, 절벽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위를 올려보다 돌아갈 길은 없을까? 싶어 절벽 왼쪽을 돌아보았더니 그 뒤편에 보코블린 두 마리가 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돌아 나오려고 했지만, 두 보코블린은 바로 나를 발견하고는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들고 있던 도끼로 그냥 공격했는데, 운이 좋게도 보코블린 둘 다 벼랑 아래로 떨어져 전투는 쉽게 끝났다.


지도를 다시 열어보니 벼랑을 타고 올라가면 가장 빠르게 사당으로 도달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암벽등반을 내가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막막한 기분에 잠시 깎아지른 벽 앞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좀 더 뒤로 물러서서 보니 중간 중간 발을 딛고 멈출 수 있는 곳이 있었다. 그걸 보니 먼 길을 돌아가지 말고 한번 도전해보자는 결정이 섰다.


막상 벽을 잡고 천천히 한발한발 올라 보니 어디를 잡고 오르면 될지 판단이 쉬웠다. 생각보다는 쉽게 암벽 오르기에 성공했다. 중간에 발 디딜 곳을 찾아 올라 서서 반대편에 보이는 하이랄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예전에 이런 등반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내 생각보다는 체력이 좋은 건가?


그런데, 벽을 한 번 올라보니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가 오른 벽 위에 또 벼랑이 있었다. 가쁜 숨을 거둔 다음 다시 벽을 올라다 보니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숨이 너무 차서 잠시 쉬고 싶었는데 발 하나를 놓을 평평한 틈이 없었다. 게다가 중간 이상 오르다 보니 경사가 매우 심한데다 점점 추워졌다.


시작의 대지가 높은 지형 위에 있어서 그럴까? 생각보다 너무 추워 온몸이 떨려왔다. 그 때, 손끝에 힘이 빠지며 나는 올라갔던 길에서 미끄러졌다. 힘들여 오른 것이 헛수고가 되었다.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내려오게 되자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앉았다.


방한복이 없는 현재의 나로서는 이 암벽을 오를 수 있다 한들, 버틸 수 없었다. 그 때, 노인이 일기에 썼던 내용이 생각났다. 몸을 데울 수 있는 요리만 할 수 있다면! 내가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노인에게 주고 방한복과 교환할 수도 있겠지? 당장 생선이 어디 있는지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지도를 켠 다음, 연못이 있는 곳을 체크하고 나무 다리를 건너 시간의 신전 쪽으로 갔다.


가는 도중 몬스터들이 고기 파티를 벌이고 있기에 - 좋은 무기 없나 찾을 요량으로 보코블린들에게 기습 공격을 먹였다. 마침, 몬스터들 주변에 화약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의 화살을 장전해서 쏘아 맞히니 화약통이 터지며 보코블린들을 쓸어버리는데, 위력이 대단했다.


전리품을 챙겨 시간의 신전 옛터로 왔는데 - 예상보다 빨리 깊은 물이 있는 곳을 찾았다. 깊은 연못을 들여다보니 펄떡! 하면서 왠 물고기 하나가 물 위로 튀어올랐다 빠르게 물 속으로 사라졌다. 바로 여기구나 싶어서 나는 얼른 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하는 수영이어서 그런지 금방 숨이 차서, 기대만큼 생선을 잡기는 어려웠다. 물 밖으로 나왔다가 뛰어들기를 10번 가까이 했을까? 겨우 겨우 '하이랄배스'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하이랄배스를 주머니에 넣다가 깨달은 사실 하나가 있다. 아까 사냥으로 잡았던 고기를 이미 요리하는 데 다 써버렸다는 사실이다. 나는 화살을 장전하여 활을 들고 낮은 자세로 숲에 기어들어갔다. 그러나 처음처럼 사냥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조금만 소리가 나도 멧돼지든, 사슴이든 모두 도망가버렸다.


화살을 한 대 맞은 멧돼지를 쫓아 달려가다, 숨이 차서 멈췄다. 지치니까 바보 같은 짓이나 하고 있었다. 나의 달리기 속도로는 멧돼지를 잡을 수 없는 걸 알면서 미련했다. 숨을 돌리고 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커다란 비둘기 한 마리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꿩 대신 닭'이라고 생각하며 화살을 비둘기에게 겨누었다. 새고기도 고기는 고기일 터. 잠잠한 가운데, 나의 화살이 공기를 가르고 비둘기에게 날아가 꽂혔다. 다행히 비둘기를 그렇게 잡아 '새 고기'를 얻었다.


다시 노인의 통나무집으로 가서 요리를 했다. 새 고기+따끈따끈초 열매+하이랄배스를 넣고 요리를 시작하자 매콤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요리가 될까?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 '화끈 고기와 생선구이'가 완성되었다. 요리를 끝내고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노인은 배고프지 않냐며 걱정되는 듯 물어본다. 요리를 해 보라고 하기에 방금 한 요리를 보여줬다. 그러자 노인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요리는! ...내가 고안해 낸 궁극의 요리, 화끈 고기와 생선구이가 아닌가...! 자네... 어떻게 그걸...?

자초지종을 묻는 노인에게, 이것저것 조합을 생각하다가 마지막 재료는 하이랄배스인것 같아 잡아서 요리했다고 알려주었다. 노인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하이랄배스'를 넣는다고? 확인했다. 고개를 끄덕이자, 나의 요리 센스를 인정해 주겠다며 바로 방한복을 주었다.


아, 이제 추운 설산으로 가도 걱정이 없다! 나는 바로 방한복을 챙겨 입고 지름길을 찾아 등산을 시작했다. 비탈길을 올라가다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을 찾으면 잠시 쉬는 것을 반복하며 올라갔더니, 목표했던 사당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사당에서 극복의 증표를 얻으면 한 곳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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