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3)
노인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상황을 말해주었다. 시작의 대지에 있는 탑이 움직이자, 다른 지역에서도 이 탑과 똑같이 생긴 여러 탑이 차례로 땅 위로 솟아올랐다 했다. 갑자기 그렇게 되었다니 대지의 숨겨진 힘이라고 생각할만 하다.
그러더니 노인은 이렇게 물었다.
"탑 위는 어떠했지?"
잠시 망설여졌다. 불길해 보이는 성에서 매우 번쩍이던 빛을 보았다고 말할까 싶었지만, 탑 위에서 다시 들었던 목소리의 정체가 궁금했다. 혹시 노인에게도 그 목소리가 들리는 건 아닐까?
"목소리가 들렸어요..."
나의 대답에 그는 매우 흥미로워했다.
"호오, 성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고...?"
그러더니 거침없이 내게 다시 물었다.
"누구 목소리인지 짐작이 가는가...?"
그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짐작이 가다니....? 그 목소리는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의 목소리라는 건가...? 이 노인은 뭔가 알고 있다! 아니면 이 노인 역시 그 목소리의 주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
안타깝다는 의외의 대답에 조금 놀라는데, 노인은 바로 시커먼 성 쪽으로 지팡이를 돌리며 말했다.
"자네도 보았겠지. 저 성을 둘러싸고 있는 불길한 원념 덩어리를..."
그의 말에 나도 다시 성을 바라보았다. 아까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붉은 기운에 둘러싸여 있는 성이었다. 저 기운은 무언가의 원념이구나.. 하는데, 노인이 바로 그 이름을 알려주었다.
"저것의 이름은... 재앙 가논...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이 땅의 하이랄 왕국을 멸망시킨 원흉이네."
역시 짐작이 맞았구나. 내가 잠들어 있었다던 100년 전에는 하이랄 왕국이 멸망할 지경으로 큰 일이 벌어졌구나... 나는 노인이 계속해서 하는 이야기에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놈으로 인해 마을은 파괴되어 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지...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년간...왕국의 상징인 하이랄 성에 저와 같은 모습으로 들러붙은 채... 그 움직임을 멈추었어."
어디선가 나타난 저 기분나쁜 원념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 저 원념은 무엇 때문인지 더 이상 활동하지 않고 성에 붙어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혼란스러웠다.
100년 전의 나 역시 하이랄 사람이었을 테고, 그럼 그 아수라장 속에 있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동안, 나는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살아남아서, 100년이 지난 후에 누군가에 의해 깨워졌다... 왜일까? 왜 나는 살아남게 되었지? 무엇보다 나는 왜 노인이 알고 있는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지? 노인이 안타깝다고 말한 것도 내가 그 난리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에 그저 성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노인이 다시 물었다.
"자네 혹시... 저 성에 가고 싶은 건가?"
성에 가고 싶냐고? ... 내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지금 이렇게 깼는지를 알기 위해선 목소리가 들려오는 성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 해야만 한다. 그것은 가고 싶다, 싫다의 문제로 나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갈 수 없다. 이 대지에서 어떻게 나가지?
노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던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갈 생각이군. 말하지 않아도 눈을 보면 알 수 있다네..."
내 마음을 읽는 건가, 당황하는데 노인은 이어서 계속 말했다.
"하지만 갈 생각이라도 지금은 무리일세. 여기는 육지의 고도... 이 절벽의 대지에서 나가기란 불가능해. 만약 무턱대고 뛰어내린다면... 지면에 내리꽂혀 잠시도 버티지 못할 걸세."
역시 노인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탑에서도 내려다 봐서 알았지만, 탑 아래의 대지 역시 높은 지대여서 내려갈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나는 그가 말한 것처럼 무턱대고 뛰어내릴 생각은 없었지만, 만약 안전하게 뛰어내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 노인이 갖고 있던 도구만 있다면... 그런데, 그 때 노인이 내 생각을 읽은 듯 이렇게 말했다.
"뭐어, 나처럼 패러세일을 갖고 있다면 얘기는 다르지만."
아, 그 도구가 패러세일? 나와 노인의 생각이 일치해서 놀랐지만,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그거, 주세요!"
나의 말에 그는 크게 웃었다. 당돌한 젊은이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던 그가 던진 말은 의외였다.
"허허허... 상관은 없네, 하지만... 그냥 줄 수는 없지...
그래, 그럼 어느 곳에 잠들어 있는 보물과 교환하기로 하는 건 어떠한가?"
갑자기... 보물? 뭐지? 이 할아범, 트레저 헌터라도 되는 거였나? 결국 그의 목적은 이건가... 좀 남다른 노인인 줄 알았는데, 보물을 노리고 있었다니...
그는 지팡이로 다른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 내 시선 끝에 있는 수상쩍은 사당 같은 것이 보이는가? 저건 탑이 지면에서 솟아남과 동시에 저렇게 빛나기 시작했지. 대개 저런 곳엔 보물이 숨겨져 있는 법이라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패러세일이 갖고 싶은 게지? 보물, 기대하고 있겠네."
그는 내게 사당으로 가 보라며 눈짓으로 말했다. 노인의 말을 꼭 따라야 할 건 아니었지만, 패러세일은 꼭 가져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붉은 빛을 내뿜는, 툭 튀어나온 바위처럼 생긴 사당. 저런 것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느낌이었으나 이미 내기는 시작되었다.
보란 듯이 보물을 가지고 오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는 노인을 뒤로 하고 사당이 있는 쪽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작은 연못 옆에 덩그러니 서 있는 사당 앞에 도착했다. 사당 옆에는 'EX'라고 쓰여 있는 보물 상자도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아이템을 챙겼다.
사당 입구에 서니, 시커 스톤을 인식시키는 장치가 또 있었다. 시커 스톤을 사용하여 인식 절차를 거치자, 사당 입구 바닥의 원 문양이 파랗게 빛났다.
"워프 지점으로 이 장소를 맵에 등록합니다."
그리고는 내부 잠금을 해제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눈 문양이 파랗게 빛나는 원이 있었다. 원 위에 서자, 바닥에서 갑자기 빛이 나와 나는 조금 놀랐다. 곧 자동으로 바닥이 움직여 나를 지하로 데리고 갔다. 지하에는 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이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천장과 어디가 끝인지 계속 이어져 있는 공간. 벽에는 처음 잠을 깼던 공간처럼 별자리 등이 들어와 있고, 곳곳에는 파란 등도 켜져 있었다.
움직이는 장치에서 내려오자마자, 어디선가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당을 찾은 자여, 나는 마.오누. 여신 하일리아의 이름으로 시련을 내리노라."
시련? 시련이라고? 하아. 보물은 그래... 쉽게 찾을 수 있으면 보물이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자력의 힘'을 이용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자력의 힘? 이면 자석을 찾아야 한다는 소린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탐색을 하는데, 시커 스톤 인식 장치가 한 구석에 있는 것이 보였다.
시커 스톤을 꺼내 탑에서처럼 그 장치에 넣자, 장치 위의 돌에서 여러 메시지가 나오더니 파란 물방울이 시커 스톤 위로 떨어졌다. 바로 시커 스톤의 화면이 밝아지면서 '마그넷 캐치'라는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마그넷 캐치는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물체를 들어 옮길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시커 스톤을 되찾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 요란한 무늬의 철판 2개가 놓여 있었다. 시커 스톤을 작동시켜 마그넷 캐치를 사용해 보았다. 마그넷 캐치의 자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내 몸보다 몇 배나 큰 물체를 들어 옮길 수 있었다.
철판을 들어 옮기니 바닥 아래에 길이 드러났다. 아래로 내려가 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돌로 막혀 있는 벽이 있었다. 벽 사이에 철 육면체가 끼워져 있어서, 마그넷 캐치로 그 육면체를 빼냈다. 돌벽은 쉽게 무너져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벽을 통과하는데, 반대편에 숨어 있던 작은 기계가 나를 보더니 빠르게 다가온다.
'뭐지? 저 기계는....'
둥그런 머리에 달린 눈에서 작은 빛이 번쩍이더니 공격을 해 온다. 딱히 쓸만한 무기가 없다 생각이 들었지만, 마침 마그넷 캐치로 아직 육면체를 들고 있었던 참이라서, 육면체를 기계에 부딪혀 공격해 보았다. 예상대로 작은 기계는 충격을 받더니 이내 파괴되었다. 사당을 지키는 역할의 기계인가... 마그넷 캐치를 끄고 보니 기계가 파괴된 자리에는 부품 소재가 떨어져 있었다. 전리품과 같은 소재를 챙기고 다음 방으로 건너갔다.
다시 마그넷 캐치를 이용해 물을 건너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신비한 푸른 빛을 뿜는 공간이 나왔다.
여러 기둥으로 둘러싸인 네모반듯한 의자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다. 저 사람이 마.오누이겠구나 싶었다. 앞에 놓인 계단을 올라 마.오누에게 다가가 보았다. 분명 이 근처에 보물 상자가 있겠지? 주변을 이리저리 찾아보았으나 보물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보물을 가지고 나가야 패러세일과 교환할텐데... 이런 생각에 나는 파란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 너머에 다른 게 있는지 보려고 마.오누가 앉아 있는 장소에 바짝 다가갔다. 그러다 눈 앞에 떠오른 눈 마크를 보았다. 왠지 이 안에 보물이 있을 것 같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손을 들어올려 살짝 눈 마크를 건드렸는데, 갑자기 그 파란 결계같은 공간이 깨졌다. 깜짝 놀란 내게 마.오누는 이렇게 말했다.
"시련을 극복하고 이곳에 도달한 자... 그대야말로 의심할 여지없는 용사..."
용사? 용사라고요? 제가...? 약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것이 시련이라면 생각보다는 도전할 만 하다 싶었다. 비쩍 말라 미이라처럼 보이는 마.오누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는 머나먼 옛날, 여신 하일리아의 계시를 받은 자이자 이 시련의 사당을 창조한 자, 마.오누...이곳을 찾는 자의 진정한 실력을 꿰뚫어 보고 재앙 토벌을 이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도사..."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삼각형 모양을 만들고 가부좌 모양으로 틀어 앉아 눈을 감은 채 꿈쩍하지 않는 그 도사에게서 '재앙 토벌'이라는 말이 나와 좀 놀랐다. 지금 하이랄 성에 들러붙은 재앙을 토벌하라는 소린가?
"영겁의 시간 속에서 드디어 진정한 용사가 나타났으니...
여신 하일리아의 이름으로 극복의 증표를 내리노라..."
'극복의 증표?' 그건 또 뭐지?
놀란 내게 마.오누의 손 사이에서 갑자기 신비한 빛이 튀어나왔다. 그 빛은 하이랄 왕국의 문장이 새겨진, 둥그런 물체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내 가슴 안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너무 놀라운 경험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증표가 스며들 때,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오묘한 빛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극복의 증표가 내게 전해지고 나니 뭔가 힘이 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다른 곳에서는 분명 얻을 수 없는 것일 터... 이것이 사당의 보물인가?
"극복의 증표는 시련을 극복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용사의 증표이다.
이것으로 나의 사명은 다하였으니... 여신 하일리아의 가호가 함께하길..."
당황한 나에게 마.오누는 마지막으로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는 초록빛을 내며 사라져 버렸다. 하이랄 왕국을 수호하는 여신 하일리아의 이름으로.... 용사에게 극복의 증표를 전해주기 위해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이런 사당을 만들었고... 그 사당에 지금 내가 들어와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여러가지 일들에, 나는 약간 어딘가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오누가 사라지고 나자, 잠깐 주변이 눈부시도록 밝아졌다. 정신이 들어 보니 나는 사당 밖으로 나와 있었다. 약간은 꿈을 꾼 것 같기도 한 기분에 얼떨떨하여 서 있는데,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아까 탑에서 내려온 나에게 접근한 것처럼, 패러세일을 타고 어딘가에서 날아와 사당 앞에 착지했다. 사당은 아까와는 다르게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노인은 나를 보자마자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극복의 증표를 손에 넣은 모양이군... 우선은 잘했다고 칭찬해 주마."
엑? 이 노인이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그걸 어떻게..."
노인은 허허허 웃으며, "천리안...이라고들 하지..." 라고 했다.
천리안이라... 가만히 있어도 천리 밖까지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다소 놀란 나에게 그는, 노인이라서 눈 앞의 것은 보기 힘들어도, 감추어진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했다.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 허허허..."
이 노인은 무엇을 감추고 있으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나는 그가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했다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는 믿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이 든 노인이니, 하이랄에 전해지는 전설 따위는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가 뭐라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내 허리춤에 달려 있는 시커 스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탑이 솟아오르고 사당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두 시커 스톤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싶어 긴장하여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시커 스톤을 만들었다는 '시커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커족은 하이랄 왕국에서 고도의 문명을 꽃피웠던 민족으로, 예지의 힘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 땅에 일어난 재앙을 알아차리고 몇 번이나 물리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 문명은 오랜 세월이 지나 끊어져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별로 없다고 들었다 했다.
"그러나... 설마 이런 사당에 숨겨져 있을 줄이야..."
그러더니, 방금 내가 나온 이 사당 외에도 다른 사당들이 몇 개나 더 있다고 했다. 이 시작의 대지에도 앞으로 3개가 더 있다고 하더니, 그 3개의 사당에서 모든 극복의 증표를 모으면 패러세일을 건네주겠다고 말을 바꿨다.
나는 약간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건... 말이 다르잖아요!"
하지만 노인은 내게 차분히 말했다.
"...음.. 조금 마음이 바뀌었거든. 그리고 이 일은 자네에게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잖나..."
힘든 일이 아니라는 말에 나는 약간 누그러졌다. 시련이라고는 했지만, 방금 이 사당에서 극복의 증표를 구하는 일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용사의 시련을 극복하고 증표를 모으는 것이 그 노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설마, 이 노인이 그 사당에서 말하는 용사인가? 용사라면 본인이 직접 모으면 될 게 아닌가...
그는 찌푸려진 내 표정을 보고, 나를 달래려는 듯 사당을 쉽게 찾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다. 사당을 잘 찾는 방법은 다름 아닌,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것! 이야기를 듣고 보니 비법도 아니네 싶어 좀 더 언짢아졌다. 높은 곳에서 보면 잘 보이는 건 누구나 아는 거지 않나... 그런 내게 한마디 더 거드는 노인.
"그래... 다시 한번 탑에 올라가 보는 것이 어떠한가?"
아니, 그 높은 탑에 올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사실, 내려올 때도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하며 내려왔거늘. 이 할아버지 농담이 지나친걸?
"농담...이죠?"
투덜거리는 내 말에 그는 허허허 크게 웃었다. 진심 나를 놀리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는 당황하지 말라며, 한가지 더 좋은 팁을 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는 시커 스톤의 지도를 열어보라고 했다. 시커 스톤의 맵을 열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맵에 자네가 나온 이 사당, 그리고 탑에도 파란 표시가 되어 있지? 그 파란 표시가 된 곳에는 시커 스톤의 힘을 사용하면 그 장소로 워프할 수 있다고 ... 들은 적이 있네... "
몸을 빙글 반대편으로 돌려 탑을 올려다보았던 노인은,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렇다곤 해도 옛날 이야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말일세..."
왠지 그 노인의 목소리가 약간 쓸쓸하게 들렸다. 내가 얼떨떨하게 노인 뒤에 그대로 서 있자, 그는 나를 재촉했다.
"자, 어서 시험해 보지 않고 뭐 하고 있나?"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아까 사당에 들어가기 전 워프를 등록한다고 했던 메시지가 생각났다. 그렇다면,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다 싶어 시커 스톤을 꺼냈다. 맵에서 파랗게 되어 있는 표시 중 탑을 선택하고 '워프하기'를 선택했더니, 갑자기 푸른 기운이 나를 감싸며 내가 서 있는 공간이 이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부신 빛이 비춰지고 다시 정신이 들었는데, 과연...
노인이 말한 대로 나는 탑의 워프 포인트에 올라 있었다. 노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시커족이 과거에 사용했다는 기술,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새삼스레,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알려주었던 시커 스톤이 내 길을 인도한다는 말의 의미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탑의 워프 포인트에 올라왔더니... 노인이 탑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노인, 대체 뭐지?
노인은 자신보다 늦었다면서, 놀림조로 나에게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노인이 여기에 올라와 있는 이유가 다 있겠지 싶어 나는 잠자코 있었다. 멀리서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붉은 사당이 여기 저기 보였다. 위치를 어떻게 파악하면 좋을까 싶었는데, 노인이 이윽고 팁을 알려 주었다. 시커 스톤으로 망원경 기능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망원경을 보면서 목표물을 보면, 색이 있는 표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따라서 멀리 보이는 사당에 다른 색색의 표기를 했다.
패러세일을 빨리 얻고 싶으면 서둘러야 하겠지?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사당을 찾아가 보자!'
나는 다음 사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땅으로 워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