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1)
서늘한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사방은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서 바람이 부는 걸까? 바람이 부는 곳은 어딜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목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번쩍 다가왔다.
반짝이는 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 작아졌다가도 이내 커지는 빛을 보니 내게 무언가 신호를 보내려는 것 같기도 했다. 무언가 웅웅 거리는 소리도 들렸기에 혼란스러웠다. 무슨 소리일까, 집중하다 그것이 사람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매우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뜨세요..."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좀 더 집중하자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눈을 뜨세요..."
눈을? 그럼 내가 눈을 감고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녀의 목소리에 눈을 살짝 떠 보았다. 내 눈 반대편에 처음 보는 무언가가 있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시력이 돌아오지 않아 흐릿하게 보이기도 해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물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눈을 뜨세요... 링크."
링크?
그게 내 이름인가?
물이 빠지는 소리가 멈출 때쯤, 주변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누워 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둡지만 파랗게 빛나는 빛이 사방에서 나를 감싸는 느낌이었다. 당황했다. 여기는 대체 어디지?
일단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 생긴 침대는 처음 본다. 타원형의 둥그런 침대 안은 움푹 들어가 있고, 그 안 바닥에는 생소한 무늬들이 있었다. 일어나 서 보니 침대 밖 울퉁불퉁한 바닥에는 일정한 소용돌이 모양의 주름이 잡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장은 높았고, 한쪽에는 아치형의 문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둥근 천장의 큰 방 안에 있는 셈이었다. 사방 벽에는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한 것처럼 보이는, 붉은 등이 여기저기 흩여져 있었다.
나를 둘러싼 주변은 모두 낯설었다. 방 안을 서성이며 돌아다니다, 파란빛의 띠를 두르고 있는 원 모양의 받침대를 발견했다. 받침대에 가까이 다가가자, 받침대 가운데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 잠시 머뭇거리는데, 다시 그 친절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시커 스톤...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당신을 인도해 줄 거예요..."
시커 스톤이라는 물건을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한쪽에는 사람의 외눈 모양을 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반대편은 아무것도 없이 평평하다. 네모지고 납작한 이 물건은 편리하게도, 손으로 잡기 쉽도록 옆부분에 손가락을 넣을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나를 인도하다니, 이게 무슨 물건이길래? 어쨌든 필요한 것 같긴 하여 허리춤에 시커 스톤을 달았다. 뭔가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물건이라 낯선데도, 마치 내 물건인 것 같았다.
시커 스톤을 가지고 앞에 나 있는 문으로 나갔다. 옆 방에는 커다란 나무 상자 몇 개와, 보물이 담겨 있을 것 같은 상자 2개가 놓여 있었다. 마치 '나를 열어 주세요'라고 말하는 듯 놓여 있는 보물상자를 먼저 열었다. 하나는 손으로 밀었더니 열렸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옷이 들어 있었다. 소매가 짧고 낡은 웃옷 한 장, 그리고 여러 물건을 걸고 다닐 수 있을 어깨 끈과 작은 주머니였다. 다른 상자는 왠지 귀찮아서 뚜껑을 발로 찼다. 맨발이었다는 걸 깜박했다. 발이 아팠지만 상자는 쉽게 열렸다. 그 안에는 발목까지 닿지 않는 길이의 바지 하나와 신발 한 켤레가 들어 있었다.
나는 보물 상자 옆의 나무 상자를 두드려 보았다. 안에 무언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도끼나 망치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일단 발견한 옷을 입었다. 옷이 조금 작은 듯했지만, 상관없었다. 일단은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처음 보는 이상한 공간이 아닌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심히 둘러보며 찾았다.
그런데 문이 없었다. 문처럼 보이는 곳은 어떤 알 수 없는 힘으로 굳게 닫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서성이며 둘러보는데, 아까 시커 스톤을 꺼냈던 받침대 같은 것이 또 있었다.
그 받침대 앞에 서자 갑자기 왼쪽 허리춤에 차고 있던 시커 스톤이 번쩍 빛났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시커 스톤을 대도록 하세요... 그것은 당신의 길을 여는 도구..."
문을 열려면 시커 스톤을 사용해야 하는구나! 시커 스톤을 조심스레 들고 둥근 받침대 위에 갖다 대자, 받침대가 빛나더니 인증을 마쳤다는 소리가 들리고 거대한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엇갈려 짜여 있던 돌들이 스르륵 움직여 문이 열렸다. 눈부신 밖의 빛이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눈이 부셔서 손을 들어 이마 아래를 가렸다. 밖의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어두움에 눈이 익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상냥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당신은 이 하이랄을 다시 비춰 줄 빛... 이제 떠날 때가 왔습니다..."
하이랄? 내가 있는 이곳 이름이 하이랄인가?
내가 다시 이곳을 비춘다니 무슨 뜻일까?
떠날 때가 되었다는 말은 또 뭐고?
그녀는 어디서 내게 말을 거는 것일까?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 많았던 나는, 빛이 비치는 곳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 밖으로 나가 내 키보다 높은 벽을 기어오르니 밖으로 나가는 길이 보였다. 구멍을 나섰을 때 내 앞에는 의외의 광경이 펼쳐졌다.
탁 트인 시야 안에 들어온 것은 넓고 넓은 대지의 모습이었다. 오른쪽 위에는 활발히 움직이는 화산이 하나 보였지만 그 외 풍경은 조용하고 평온해 보였다. 산과 산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듯한 산맥 앞엔 울창한 숲이 자리 잡고 있었다. 햇살은 이 아름다운 자연에 고루 퍼져 있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웠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나왔던 곳은 어느 바위산 절벽 아래 작은 동굴이었다. 주변에 키 큰 나무가 많고 동굴 입구가 작아서 누군가 숨어 있기에는 알맞은 장소 같았다.
밖에 나와 보니 동굴 안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기분이 나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이름은 링크라고 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사실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불러 주지 않았다면 내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은 하이랄이라고 한다는데... 나는 내가 누구이고, 여기는 어딘지 정말 모르겠다. 아름답다는 생각도 잠시, 막막한 기분이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른쪽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큰 건물이 있고...
그때, 내 눈에 어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큰 건물 앞쪽으로 내려가는 비탈길과 만나는 작은 언덕 앞에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분명히 내쪽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라면 뭔가 알고 있겠지? 좋아, 당장 가보자!
나는 그 사람이 있는 언덕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나무 주변 풀숲 사이에서 뭔가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걸까? 가까이 가 보았더니 그 빛나는 것은 버섯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버섯을 땄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붉은색이 도는 이 버섯은 독버섯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꽤나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왠지 허기진 느낌이 들어 단숨에 버섯을 맛보았다. 탱글한 식감, 버섯 특유의 향이 감도는 이 버섯은 기대보다 맛있었다. 그 맛에 버섯의 이름이 생각났다.
'아, 맞다. 이 버섯, 하이랄버섯이었지...'
하이랄 전역에서 흔하게 보이는 큼지막한 버섯. 분명 이전에도 먹었던 맛이다. 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몸으로 여러 번 익힌 건 쉽게 잊히지 않아."
누가 했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느낌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 나는 하이랄이라고 부르는 이 땅에서 살아왔던 사람이 맞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여기저기 하이랄버섯이 많이도 피어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보이는 대로 버섯을 땄다.
버섯을 따면서 나무 주변을 살피는데 잠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바로 앞 나무에 장수풍뎅이가 붙어 있었다. 정확한 이름이 뭐더라...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조심스레 나무 기둥 옆으로 다가갔다. 특이하게도 푸른 갑옷을 입고 있는 이 곤충은 이전에도 쉽게 찾을 수 없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 녀석은 잡아야 해!
몸을 낮추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숨을 고른 후, 단번에 손을 뻗었다. 풍뎅이를 놓치는 걸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내 손안에 들어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장수풍뎅이를 손에 쥐고서야 이름이 생각났다. 이 풍뎅이의 정확한 이름은 '칼날장수풍뎅이'다. 예전에 이 풍뎅이로 만든 물약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이 큰 뿔이 근육의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어 이 물약을 먹고 훈련을 하면 더 성과가 좋았었지.
가만, 훈련? 훈련이라고? 약을 먹었던 기억, 검을 들고 휘둘렀던 기억이 떠올라 나는 멈칫했다. 나는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인 걸까.... 검을 들고 땀을 흘리며 다른 사람들과 겨루던 기억에 멍하니 섰다. 눈부신 햇살이 나와 나무 사이를 내리쬐는 느낌에 머리가 어질 한 기분도 들었다. 그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 그 목소리였다.
"링크.... 링크..."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데 어디서 들리는 목소리일까...
"빨리 서둘러 주세요... 시커 스톤 안의 지도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 주세요..."
나는 재빨리 시커 스톤을 들어 평평한 면을 보았다. 시커 스톤이 켜지더니 그 안에 지도 같은 것이 나타났다. 하지만 명확한 지도는 보이지 않고, 빛나는 둥근 원이 깜박거리는 것만 보였다. 내가 있는 방향에서 멀지 않은 곳 같았다. 시커 스톤에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 있구나. 제법 편리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지도에 있는 이곳으로 가면, 그녀가 있는 걸까?
내려가는 비탈길에서 반짝거리는 나뭇가지를 하나 주었다. 손에 쥐고 휘둘러 보니 무기로 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이랄의 야생에는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만약을 대비해 나뭇가지 하나 정도 챙기는 건 필요하겠지.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비탈길을 내려갔다. 멀리서도 아까 발견한 그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과나무 뒤에 있는 작은 토굴 안에서 불을 지피고 앉아 있다.
나는 곧장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장작에 불을 지피고 바닥에 앉아 있던 그는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었다. 풍성한 수염을 가슴 주변까지 길렀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눈빛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는 그에게 나는 '누구시냐'라고 물었다.
이런 오갈 데 없는 황량한 곳에 자기 같은 사람이 있어 이상하냐 말한 노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그는 나에게 누구냐 물었지만, 나는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하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답 대신 여기가 어디냐 물었다. 그러자 그는 황당해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물음에 물음으로 답을 하다니... 요즘 젊은이는 정말 곤란하다니까..."
그는 나의 태도를 좋지 않게 보면서도 질문에는 충실히 대답해 주었다. 내가 있는 곳은 '시작의 대지'라 불리는 곳이며, 하이랄 왕국이 시작된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저 오래된 건물은 왕국의 제사에 사용되었던 신전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도 하이랄에서 살아온 사람이면 이 정도는 알 법도 같은데, 노인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 곁으로 조금 더 바짝 다가서는데, 발끝에 뭔가 채였다. 내려다보니 그것은 구운 사과였다. 얼떨결에 그 사과를 집어드니, 노인이 버럭 화를 냈다.
"이놈! 내 구운 사과를 훔쳐?!"
깜짝 놀라니 그는 의외로 화를 풀며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농담이라며, 사과는 구워야 제맛이라고 하고는 나에게 구운 사과를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사과나무가 있었지 싶어 나는 사과를 몇 개 더 따다가 노인처럼 장작불에 사과를 구웠다. 사과는 금세 구워져 달큼한 향이 주변에 퍼졌다.
구운 사과를 챙기며 나는 다시 그 노인에게 뭐 하시던 중이었냐고 물었다. 그는 그저 쉬고 있었을 뿐이라며 별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발길을 옮기자, 이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많다며 뒤편에 있는 자신의 도끼를 가져가도 좋다고 했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조언까지 주는 그의 호의를 마다할 건 아니란 생각에 도끼를 챙겼다. 어디선가 또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이었다.
'링크... 서둘러 주세요...'
다급한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 나는 일단 시커 스톤이 가리키는 곳으로 서둘러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