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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엘리 Jun 10. 2021

김치 먹이기 작전

설렁설렁 미각교육

육아를 하는 부모에게 있어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하는 일련의 활동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다 쉬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내게 가장 어려운 건 무엇인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들과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시기는 독박 육아를 해야 했을 동안이었다. 독박 육아란 언제 만들어진 말인지 잘 모르겠으나, 임신을 한 이후 자주 방문하는 육아 커뮤니티로부터 처음 접한 말인 것 같다. 약간 억울하다는 뉘앙스가 잔뜩 묻어 있는 그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재미있는 말이다라고 생각만 하고 지나간 적이 있었으나 훗날, 그 말이 나의 상황으로 닥치니 재밌기는커녕 버거웠다.


아니, 그냥 버겁다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남편의 장기 외국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각오를 하긴 했었지만, 언제나 육아 상황은 예상 이상 엎치락 뒤치락이었다. 안 그래도 분리불안이 심했던 아이였는데, 그게 더 심해졌다. 엄마 껌딱지가 된 아들을 보며 머리로는 이해를 하려 노력했지만,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미안해하기도 다반사. 그렇지만 나만 바라보고 있는 24개월도 안 된 아이를 보면 뭐라도 해야 했다. 아이가 낮잠 잘 시간까지만 어떻게든 버티자라는 마음을 가진 날도 많았다.


하루는, 아이가 힘겹게 낮잠에 든 것을 확인한 후, 멍한 기운에 그저 아이 옆에 누워 하얀 벽지가 발린 천장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그 질문이 떠올랐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것 중에서.....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건 무엇인가. 이렇게 뭔가 힘들어만 하다가는 버티기 힘들 거 같았다. 당시엔 독박 육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다른 해결 방법은 내게 없었다. 답답하게만 생각하기보다 긍정적인 부분을 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나는 육아가 즐겁지 않을까? 아들을 사랑하는데.


그러다, 즐거운 순간도 있다는 데 생각이 멈추었다. 그건 아들이 내가 해 주는 요리는 거부하지 않고 무엇이든 잘 받아먹는다는 거였다. 내가 만든 요리뿐만 아니라, 시어머님이 해 주셔도 친정 엄마가 해 주셔도 먹성 좋은 아들은 대부분 거부하지 않고 잘 받아먹었다. 시어머님께선 자신의 손자가 밥과 반찬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걸 보고 늘 감탄하셨다. 어쩌면 이렇게 잘 먹는지 신기하다 하셨다.


"OO아빠는 어릴 때 밥을 잘 안 먹었나요?"

"그럼! 입이 많이 짧았다. 동생도 잘 안 먹어서, 뭘 해 줘야 하나 참 고민이 많았지. 생각해보면 내가 요리를 다양하게 잘할 줄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때는 요즘 같지 않고 다 같이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그런데 어쩜 이렇게 잘 먹나."

"저희 남매가 어렸을 때 먹성이 좋았다고 해요, 어머님. 저도 엄청 잘 먹었고요."

"그렇구나. 울 손자 입맛은 외탁했구나. 참 다행이지 뭐냐."


시어머님과 나눈 그 대화가 생각나면서, 나는 육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을 꼽는 대신, 먹을 것을 챙기는 것만큼은 크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육아에 있어서 견딜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걸 찾아낸 점이 마음에도 약간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에도 스스로 놀랐다.


하지만 ‘잘 먹는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남편이 어릴 때 입이 짧았다고 해서 지금 음식을 가리는 것은 아니며, 우리 아들이 잘 먹는다고 해서 싫어하는 음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들은 만 세 살 시기가 넘어가면서 본인의 호불호에 따라 싫어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한 거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어쩔 땐 고기만 먹으려고 하거나 쌀밥만 먹으려고 해서 은근 애가 탔다.


하지만 나 혼자 속을 끓인다고 애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주는 것은 아니다. 말로 해서 듣는 아이라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을지 모른다. 어릴 때 골고루 먹었으니까 자라서 조금은 호불호에 누그러지면 다 먹지 않을까? 내가 그랬으니까 우리 아들도 그래 주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관련 책을 찾아 읽어봤다. 어릴 적 입맛이 고착화되기 전, 다양한 음식을 찾아 먹인 아이가 확실히 편식엔 덜 까다롭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그건 그 아이만의 이야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떡하지?


다른 건 몰라도 가장 우려가 되는 건, 아들이 점점 김치를 먹지 않겠다고 우기는 데 있었다. 어린이집 다닐 때만 해도, 다른 아이들 다 안 먹는 김치만은 먹는 아이였기에. 깍두기는 안 챙겨주면 왜 없냐고 찾던 아이였기에. 김치가 매워서 그런가? 싶어 씻어주기도 일쑤였지만 확실히, 이전보다는 스스로 먹지 않았다.


김치 안 먹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김치가 세상의 모든 음식도 아니고. 김치 안 먹는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 걸 알지만, 개인적으로 ‘김치’라는 음식이 내게는 의미가 남다른 음식이라서 아쉬웠다.


남편과 처음으로 시작한 독일 신혼생활에서, 우리 식탁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것은 김치였다. 스스로 배추를 사다가 절여, 양념을 만든 다음 처덕처덕 김치를 만들던 그 좁은 독일의 부엌이 아직도 생각난다. 김치 한 포기가 냉장고에 남아있다는 것은, 뭔가 해 먹을 수 있다는 의미여서 마음이 놓였다. 입덧 때문에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 일임을 김치 덕분에 깨달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독일 친구들이 수줍게, 김치를 맛보고 싶다고 했을 때 - 내가 김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다.


내 아이가 앞으로 어디서 살아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세계가 더욱 많은 교류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들에게 내가 남겨주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음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김치를 대신할 음식이 따로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 아이가 김치를 멀리하기 시작하자 식탁에 빨간 불이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중에라도 잘 먹을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아니라고 하면 계속 아닌 게 한참 지속되는 아들에게는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보경 박사의 책, <미각 교육 식판식> 이란 책을 구입했다. 아이의 미각 교육은 대략 이런 식으로 시작하면 된다는 예시를 제안한 책이면서, 미각 교육을 위한 요리 레시피를 소개한 책이다. 책을 쭉 읽으면서, 책에 나온 예시대로 미각 교육을 하면 아이가 반응할지는 미지수란 생각이 들었지만, 몇 가지 팁은 건질 수 있었다. 낯선 음식에 대해선 최소 8번 이상은 노출하고 맛 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함께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좋아하는 음식을 주면서, 김치와 어울릴만한 음식을 생각해보고 아들에게 시어머님이 담근 열무김치를 내놓았던 날이었다. 열무김치는 처음인지라, 역시 먹어보지 않을 가능성이 100% 였지만 일단은 내놓았다.



아들은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만 쏙 골라먹고 열무김치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에게 할머니가 만든 김치라고 소개를 해 주고, 한 입만 먹어보자고 이야기했지만 입을 꾹 닫는다. 웃으면서, (속은 답답했지만 이젠 나도 육아 연기 경력은 좀 되니까) 내가 먼저 선을 보이며, 아삭아삭 참 맛있네! 하고 먹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고개까지 휙 돌리는 아들이었다.


그다음 번 식사 때 열무김치를 상에 올리면서 생각해보니, 내 어릴 적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엄마가 직접 담가준 열무김치가 먹고 싶어서, 친정 엄마에게 “엄마, 꼴꼴이 김치 주세요?!”라고 했던 순간이었다. 아. 꼴꼴이 김치. 내가 스스로 작명한 이름이긴 했지만, 얼마나 오랜만에 떠올린 이름인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엄마에게 이야기하던 그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그게 기억이 났던 것은, 아마도 그냥 틀어놓았던 어느 유튜버의 화면에 캠핑하는 모습이 나와서였을 것이다.


내가 친정엄마에게 꼴꼴이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던 때는, 설악산으로 온 가족이 리얼 캠핑을 갔던 때였다. 훗날, 친정 엄마가 그 설악산 캠핑을 회고하실 땐 얼어 죽을 정도로 추웠다던 기억뿐이셨지만. 내게는 재미있었던 추억이었고, 엄마가 바리바리 싸 들고 오셨던 스뎅 김치통 안에 들어 있던 열무김치를 아삭아삭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던 캠핑이었다.


그래서 아들에게, 열무김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가 어렸을 적에 이 김치를 꼴꼴이 김치라고 불렀다고 말이다. 왜 꼴꼴이 김치라고 불렀을까 - 딱히 생각이 나진 않았지만, 꼴꼴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이야길 했다. 그리고는 아들에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던, 캠핑 이야기를 해 주었다. 생각해보니 딱 우리 아들 나이 때 갔던 여행이었다.


김치를 먹으라고 그 이야길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아들이 나의 이야길 듣더니 이게 그 꼴꼴이 김치인가요? 하더니 검지와 엄지로 김치 한쪽을 쓱 들어 입안에 넣고 먹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나의 눈이 정말로 동그래졌던 모양이다. 아들은 그런 내 반응에 더 놀라 보라는 듯, 또 한 번 김치를 집어서 먹었다.


“어때? 맛있어?”


그렇게 묻는 내게, 아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이 김치 안 매워요.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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