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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엘리 Jul 02. 2021

달큰해서 어색한 토마토

설렁설렁 미각교육

마트에서 구매한 스테비아 방울토마토

'설탕 토마토' 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

 

나에겐, 밭에서 막 딴 푸릇불긋한 토마토를 씻어 서걱서걱 도마위에서 대충 썬 후 넓적한 접시에 담은 후에 하얀 설탕을 쓱쓱 뿌려주셨던 외할머니의 주름 잡힌 손이 생각난다. 어느 지역으로 이사를 가시던지 집 주변 공터를 찾고 찾아 작은 밭을 일구고 상추, 고추, 토마토, 호박 등을 심으셨던 할머니의 자랑같은 결실의 끝엔 늘 설탕 토마토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달갑지 않은 간식이었다. 겉은 좀 딱딱한 듯 하지만 안은 너무 물컹하고, 시원하지 않으면 뭔가 찝찌름한 신맛이 그득 돌았던 토마토였기에.


토마토는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른 토마토 사이로 흥건히 흘러나와 괴어 있던 물을 접시에서 핥을라치면, 할머니는 다 먹지 그걸 왜 그러냐며 나무라셨다. 지금은 계시지 않는 외할머니와의 추억 한토막을 뒤로, 설탕 뿌린 곳은 달큼했지만, 그렇지 않은 쪽은 아무 맛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머나먼 기억이 설탕 토마토라는 단어를 접하면 떠오르곤 한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토마토라는 과일같은 채소의 입지는 참으로 달라졌다는 생각에 감탄이 나온다. 색깔도, 모양도, 맛도 너무나 다양한 토마토는 재배 지역이 어디인지에 따라 과질도, 또 맛도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는 식재료이다. 미국에 거주할 땐 잘 몰랐지만, 독일에 살 때는 수퍼마켓에만 가도 계절에 따라 서너가지의 다른 토마토 종류를 만날 수 있다는 게 내게는 참 신기한 일이었다. 토마토 재배환경으로 친다면, 사실 독일은 그렇게 좋은 축에 속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그러한데 - 토마토로 오만가지 요리를 다 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쪽은 어떠할까.


작년 이맘때였던가 더 그 전이었던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설탕처럼 정말 단 맛이 나는 신기한 토마토를 산지 직송으로 판다는 어떤 블로그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글을 쓰신 분은, 어릴 적 설탕 뿌려 먹는 토마토의 딱 그 맛이 나는 신기한 토마토라면서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을 극찬했다. 그 분 글의 진위를 떠나서, 설탕 맛이 나는 토마토가 있다면 나는 사먹게 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원래 단 맛에 대한 선호가 크게 높지 않기 때문에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고는 쓱 스마트폰 화면을 밀어서 창을 닫았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가 들여다보는 SNS에 심심찮게, 정말 신기하게 단맛이 나는 토마토가 있다면서 피드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기가 많다는 그 토마토의 이름은 다양하기도 했다. 누구는 토망고라고 했고, 혹자는 단맛토, 꿀맛토라고도 했다. 인기 절정 샤인마토라는 이름도 보았다. 정식 상품 이름은 스테비아 토마토, 스테비아 방울토마토이다. 이런 다양한 이름이 토마토 하나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가? 얼마나 맛이 있길래 그럴까? 자주 소통하는 한 인친님의 아이는, 앞으로 이 토마토만 먹자고 했다 한다. 아이의 귀여운 멘트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원래 그렇게 당도가 있지 않은 제품이 단 맛을 품으려면 어떻게 재배를 하기에 그럴까 싶었다.


대저 토마토처럼 지역적 특성을 타는 토마토일까? 아니면 특별히 그런 맛을 내는 품종이 생긴 걸까? 과일이 단 맛이 많이 나려면 일조량이 풍부해야 한다고 하던데 - 특별한 빛을 쪼여서 생산하는 토마토일까? 토마토는 이제 노지재배는 거의 없고, 하우스에서만 재배한다 들었는데 그러니 가능하지 않을까? 별별 생각을 다 하는 도중, 장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토마토 코너에 눈이 쏠렸다. 사실 토마토는 여름이 제철인지라, 6월 이후부터 제대로 맛이 올라온다. 아무리 하우스에서 재배를 해서 이젠 사시사철 토마토를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만, 겨울에서 봄 토마토는 가격이 비싸고, 대저 토마토를 제외하고는 여름의 그것보다는 '맛'이 제대로 들었다는 느낌이 없었다. 선입견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철을 만난 만큼 다양한 토마토들이 주르륵 진열대에 올라있는 것 중에, 토마토가 담긴 플라스틱 박스가 가장 적게 남아 있는 곳을 보니 '스테비아 방울토마토' 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인기 있다는 토마토로구나 싶어 냉큼 카트에 담았다. 기대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기도 했거니와, 남들도 다 먹어본다는데 하는 심리가 한 몫 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장바구니를 펼쳐 짐을 정리하자마자, 토마토를 몇 개 씻었다. 크기로는 그냥 일반 대추토마토 크기여서 외관상으로는 딱히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들을 불러서 함께 토마토 맛을 보았다. 방울토마토를 좋아하는 녀석이기에 큰 거부감 없이 토마토를 입에 넣고는 오물오물 씹는다. 그러더니 "음~~"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 역시 기대감에 얼른 토마토 과육을 씹어본다. 입안에 터지는 단맛. 정말 설탕 맛이었다. 달큼한 향이 입술 사이로 삐져 나올 것만 같았다. 깊은 단맛이라기 보다는 폴폴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맛 끝에 새콤함이 받쳐준다. 두 번째 토마토를 다시 입에 물었다. 신기하게도 설탕 뿌린 맛이 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아들도 엄지손가락을 쳐들며 맛있다고 웃었다. 금새 토마토를 담아두었던 그릇이 비었다. 아들은 또 없냐며 묻는다.


다시 토마토를 씻기 위해 냉장고에서 포장 패키지를 꺼냈다. 겉 부분에 쓰인 라벨을 읽어보았다. 그런데 농산품이라거나 과채류라거나 이런 말이 쓰여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과채 가공품이란다. 그리고는 어떤 물질이 첨가되었는지가 표기되어 있었다. 효소처리스테비아, 수크랄로스(감미료) .... 그렇다. 자연적으로 재배를 해서 낸 맛이 아니라, 단 맛을 내기 위해 효소처리를 하고 감미료를 첨가한 것이었다.




"스테비오사이드(Stevioside)는 설탕초라 불리는 스테비아에서 추출한 천연 감미료로 설탕보다 최대 300배 단맛을 낸다. 스테비아 토마토는 스테비오사이드를 물과 희석한 뒤 수확한 토마토를 담그는 침지(浸漬) 작업을 거쳐 기존 토마토보다 훨씬 더 달다. 특이한 점은 스테비아 토마토는 당도를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도계는 과즙에 빛을 비춰 빛이 굴절하는 정도를 측정해 당도를 환산하는데, 스테비오사이드가 물에 녹아 투명해지기 때문에 측정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코카콜라 제로에서도 사용한다는 감미료 "수크랄로스" 이름이 토마토의 가공품인 스테비아 토마토 이름 속에 숨어 있다니 기분이 묘하다. 위 링크를 건 기사는 사실상 '이마트' 광고 글과 맞먹는 글이긴 하다만, 내게는 이제 마트에서 식재료 유행을 충분히 견인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식재료 유통 시장이 재편되었고 그만큼 파급력이 크다는 걸로 읽혔다. 그 외 관련 글에는 설탕 대체제 아스파탐 이야기도 있고.... 복잡하다.


하얀 설탕의 과복용이 인체에 주는 악영향은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단 맛에 대해 절제를 적절히 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인간의 뇌는 편안한 걸 찾고, 더 맛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어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당뇨라는 성인병을 관리하는 수준인 현 실상에 대체제로 단맛이 나는 다른 식물들이 각광을 받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덕분에 우리는 칼로리도 없고 폭발적인 단맛이 나는 제품을 큰 부담 없이 맛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스테비오사이드가 너무나 단 맛이 강하다 보니 쓴 맛도 함께 동반하는데,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 수크랄로스라는 감미료 성분을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이다. 수크랄로스는 화학물이다. 설탕에서 뽑아낸다고 하는데, 이러한 화학식 구조에서 생성된 새로운 물질은 끊임없이 안정성에 대한 논란에서 빠질 수가 없다. 과학자들이 계속 검증하고, 실험하고, 안전하다고 밝히지만 그것은 일정 사용 용량의 허용치 안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니 뭔가 맛을 보면서도 석연치 않은 감정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엇이 사실이고 사실이 아니던간에, 먹을거리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결국 최종 소비자의 취사 선택을 요구하는 일이다. 이런 저런 기사를 읽고 나서 나는 앞으로 스테비아 토마토를 구매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단맛을 억지로라도 낸 것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시장이 원하고 있고, 설탕을 뿌려 먹는 것 보다는 안전하게 단맛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나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단맛에 길들여지는 삶은 싫다. 특히 소중한 아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툭하면 사탕을 쉽게 찾고, 빵을 먹을 땐 잼만 퍼먹고 싶어하며, 하원할 때 젤리를 먹고 싶다고 조르는 아들에게 나는 관대하게 대할 수는 없다. 단맛만이 세상에서 좋은 맛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도 싶다. 단맛만 나는 것은 재미가 없다고 말이다. 삶에는 때론 씁쓸하고, 새콤하며, 짭짤한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는 것처럼 - 설탕이 되기 보단 소금이 되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소금도 과하면 문제가 많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되지만)


다행히 그 일 이후로 아들은 달달한 토마토 어디 있냐고 더 찾지는 않았다. 순간 맛이 있기는 했지만 크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오늘은 시장에 가서 잘 익은 토마토를 찾아 장바구니에 담을 것이다. 크게 달지 않아도, 잘 익은 토마토가 주는 건강한 맛 자체가 좋다. 라이코펜이 풍부해 황산화작용에 좋다 어쩐다 이런 어려운 말은 접어두고, 빨간 토마토를 식탁에 올리며 건강한 여름을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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