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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엘리 Jul 29. 2021

식탁에서 먹방 찍기

설렁설렁 미각교육

요즘처럼 더울 때 가장 고역인 일 중 하나는, 부엌에서 요리하는 일이다. 폭염이 시작되던 며칠은,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배달음식을 주문하기도 했지만 - 이내 그만두었다. 배달앱으로 주문을 넣은 지 3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항의를 해야 하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가 적잖이 놀랐던 일 때문이다. 가게 사정으로 배달이 취소되었습니다'라는 톡이 뜬 걸 발견한 순간. 내가 뭘 잘못한 건 딱히 없지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문한 음식이 왜 안 오지?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아들의 목소리가 날아와 귀에 꽂힌다.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구나! 싶으니 마음만 급하다. 약간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부랴부랴 냉파를 하기로 했다. 마침 며칠 전에 쟁여두었던 몇 가지 채소류(양파, 감자, 버섯)가 보이고 해서 간단히 카레나 끓여먹어야겠다 싶었다. 부엌 구석에 잠자고 있던 감자를 꺼내 씻으니 아들은 부리나케 내 옆으로 달려와 감자는 자기가 담당이라며 성화다.


카레를 만드는 날이면, 유난히 그 메뉴를 좋아하는 아들은 요리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아들에게 감자를 깎도록 맡겨두고, 냉장고를 들여다보다 보니 살짝 고민이 되었다. 가뜩이나 고기파인 우리 아들에게 되도록이면, 그간 안 먹었던 식재료(되도록 채소)를 하나씩 소개하고픈 마음이 굴뚝같은데 - 마땅한 재료가 그날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레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향과 맛이 강한 소스에 새로운 재료의 맛이 좀 덮어질 테니 좋은 기회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내 등을 보고 있을 아들은 갑자기 소시지 타령이다.


하아. 그러는 중 냉장고 구석에 - 2일 전 개봉했다 남은 토마토 라구 소스통이 조용히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카레에 토마토 라구 소스를 넣는다면 분명, 맛은 더 풍부해지리라. 우스터소스가 남아있다면 그것도 조용히 털어 넣고 싶었지만 없었다. 기왕 남은 토마토도 다 카레에 넣어야지! 싶어서 토마토도 씻었다. 그런데- 감자를 어느새 다 깎은 아들이 개수대 옆에 와서는 묻는다.


"엄마, 그 토마토 카레에 넣어요? 난 싫은데 - 히잉"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얘가 콧소리가 늘었지?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나도 콧소리를 내며 응수해 보았다. 아니 왜엥- 토마토를 같이 넣으면 카레소스가  맛있어져요. 태양빛을 잔뜩 받고 자란 토마토들이라서  달콤해지고, 햇빛의 맛도  텐데?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토마토는 절대 넣지 말란다. 절대! 이유는 불문. 그냥 싫으니 넣으면  된다고 하여, 그럼 그냥 먹으라고 그릇에 식탁 중앙에 올려두었다.




원래 아들은 토마토를 좋아했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토마토는 참 좋아하지 않는 음식 중 하나였다. 달콤한 맛이 많이 나기보다는 시고, 어떤 것은 너무 단단해 씹기가 뭣했으며 물컹한 것은 너무 물러 토마토의 즙이 내 맘과는 달리 입술 밖으로 삐져나가기 일쑤였다. 외할머니께서 아무리 설탕을 뿌려주신다 한들, 그건 설탕으로 다른 맛을 가리는 것 같아 꺼림칙했다. 어떤 조미료(?)도 필요 없는, 그 자체로 당당히 맛있는 사과를 보라. 사과는 예나 지금이나 나의 최대 애정 과일인데 - 적당히 아삭한 식감은 씹는 소리도 좋고, 달기도 그 어느 토마토들보다도 달며, 즙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거나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우리나라 토마토 생산의 위상은 달라졌다. 내 어릴 적 기억의 토마토는 그저 밋밋했던 찰토마토 하나뿐이었는데, 요즘엔 정말 토마토가 다양하게 나온다. 한 번은 출산을 했던 독일에서 먹었던 바로 그 토마토 종류가 마트에 나온 걸 보고 너무 반가워서, 좀 비싼 가격임에도 구매를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임신 기간에 참으로 토마토를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토마토가 거의 사시사철 끊임없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이젠 하우스 재배가 많아져서 토마토를 아예 못 먹는 계절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독일에서 생활할 시절엔 꼭 임신 때가 아니었어도 토마토를 구워 먹기도 하고, 끓여서 주스로 갈아 마시기도 했고, 그냥 썰어서 샐러드로 먹기도 하는 등 - 툭하면 토마토를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먹었다.


그런 영향을 받아서였을까. 어릴 적 나와는 다른 식생활 배경에서 세상에 나온 아들은 이유식 시기에 요리한 토마토도 참 잘 먹었고, 뭐든 잘 씹게 된 이후부터는 생 토마토도 우적우적 잘 먹었다. 나와는 다르게 토마토를 잘 먹는 아들이 신기하기도 해서, 이렇게 저렇게 요리도 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인지. 쌓이는 아들의 식사 경험은 내 예상과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토마토 스파게티를 좋아했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생 토마토를 그냥 먹는 걸 좋아하는 볼 통통한 아이가 되었다. 아주 어릴 때는 상관없이 다 잘 먹었기에 이렇게 특정 질감과 맛을 좋아하지 않게 될 줄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점점 자신이 좋아하는 맛과 싫어하는 그 무언가가 생기는 아들을 보며,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틀 전, 라구 소스로 만든 파스타도 아들 녀석은 조금 맛보고 말았다. 그것도 안 먹겠다고, 안 먹겠다고 으름장 놓다가 엄마 아빠가 먹으니 분위기에 휩쓸려 몇 젓가락 먹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들 요리는 카레다. 그간 만든 카레에는 토마토소스를 넣지 않았지만, 예전엔 토마토를 익혀 으깨 넣은 적도 있었고 하니 이번엔 라구 소스를 섞어 만든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다 라구 아닌가! 토마토에 고기를 섞어 만든 소스니까, 고기의 풍미를 좋아하는 아들이 이 조합을 거부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재료를 얼른 썰어 넣고, 팬에 야채를 볶은 후 물을 부어 끓은 다음 카레소스를 풀어넣었다.


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카레 요리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신났는지 요리 과정 내내 부엌을 떠나지 않았다. 카레 페이스트 큐브는 직접 집어넣겠다며, 포장은 어떻게 뜯는지 한참 참견하는데 - 카레 소스를 풀어 넣고 나서, 얼른 라구 소스를 넣어야지 싶어 냉장고에서 소스통을 꺼내 카레에 1컵을 부어 넣었다. 잠시 소스의 맛을 보는데 - 나의 행동을 보던 아들의 표정이 점점 울상으로 바뀌었다.


"엄마! 그거, 그거 넣지 마요! 안 돼요- 아앙-"


토마토소스통을 가리키는 아들의 눈망울이 내 눈과 마주쳤다. 이미 눈물의 씨앗이 터졌다. 그렁그렁 눈물방울을 담은 두 눈이 나를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더 맛있으라고 넣는 건데?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아들을 대했지만 터진 눈물은 소용이 없었다. 아들은 내 한쪽 다리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조르는 일은 자주 있어도, 울음은 여간해서 터뜨리는 아이는 아니다. 길을 가다 넘어지거나 어디 부딪혀도 정말 아프지 않다면 웬만해서는 툭툭 털고 일어나는 아이라, 유치원에서도 선생님들이 씩씩하다고 칭찬 많이 해 주시는 아이인데. 이렇게 가끔 뭔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상황엔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아들이다. 원래 계획대로는 남은 소스 2컵 정도를 다 털어 넣는 것이었지만, 아이가 이렇게 우니 계획대로 라구를 더 넣을 수는 없어 소스통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넣었다.


" 자, 봐봐. 엄마 이제 소스 냉장고에 다시 넣었어. 이제 안 넣을게. 됐지?"


약간은 안심했는지 울음이 조금 들어갔지만, 아들은 여전히 울먹거리는 볼멘소리로 우물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카레소스에 이미 토마토소스가 들어간 게 아니냐는 것이다. 들어갔다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고, 맛이 더 좋아졌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끓고 있는 소스를 살짝 떠서 맛을 보았다. 분명, 내 기준에서는 기존에 내가 끓이던 카레보다 더 맛이 좋았다. 방글방글. 엄마의 얼굴을 보며 자기도 맛을 보겠다 한 아들은 - 후후 불어 식힌, 카레 소스 한 스푼을 냉큼 맛을 보았다. 이제 곧 수긍하겠지? 자신만만하게 아들을 향해 어때? 하고 웃어 보였는데 - 아들은 그런 내 얼굴을 보더니 서러운 듯 얼굴을 구기며 눈물을 다시 터뜨렸다. 아니란다. 이 맛이 아니란다.




보글보글 끓는 카레 냄비를 옆에 두고, 나는 일단 아들을 안아주었다. 서러워서 끄윽끄윽 눈물을 삼키는 아들의 얼굴은 이미 눈물 콧물의 나이아가라. 나는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고는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사과가 받아 들려 질 리 만무하다. 녀석의 선입견은 이럴 때 아주 확고하다. 부엌 옆에서 아들을 안고 앉아 있으니 너무 더웠다. 땀을 삐질 흘리며 한숨을 쉬는데, 마침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온다.


집 밖이 너무 덥다며 푸념을 잇던 남편은 부엌 옆에서 예상치 못한, 모자의 모습을 보더니 또 뭔 일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남편은 그게 뭐 큰 일이냐는 듯 아들을 부드럽게 타일렀다. 하지만 녀석은 더 결연한 눈빛으로 아니라며 고개를 도리질 치고는 다시 눈물을 쏟는다. 남편은 그런 아들을 한번 쯧- 하고 보더니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많이 시장한 지, 빠른 속도로 씻고 나온 그는 아들을 아직 안고 있는 나를 대신해 카레 냄비 옆에 가서 맛을 보았다.


"맛있는데?"


남편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아들을 쳐다보았다. 아들은 이제 아예 아빠의 얼굴은 외면한 채, 다른 쪽만 바라보고 있다. 남편은 일단 배가 너무 고프니 뭐라도 먹자며, 알아서 식탁을 차렸다. 밥에 소스를 부어줄까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들은 이렇게 기분이 나쁠 땐, 상차림에도 예민해진다. 덮밥이니까 당연히 밥 위에 소스를 얹어도 괜찮을 텐데, 이럴 땐 미리 물어보지 않고 얹으면 큰일 난다. 기분이 좋을 땐 밥그릇 따로 소스 그릇 따로 주건 아니건 상관이 없는데, 이렇게 기분이 나쁜 그날, 상차림까지 본인이 생각했던 스타일이 아니라면 아들의 식사는 다 한 셈이라 치고 한참을 먹어라 아니다 실랑이를 해야 한다. 평소엔 까다롭지 않은데, 기분 한번 거스르면 이런 상전이 따로 없다. 참, 이런 건 가르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예상대로 아들은 밥 따로, 소스 따로 달라고 했다. 아이도 약간은 울음이 누그러졌기에 - 식탁 차리는 남편을 도와 반찬을 꺼내 얼른 먹을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카레 덮밥을 보고 있는 아들의 시선이 잠시 멍하다. 남편은 밥을 먹으려다 말고, 전화가 와서 잠시 식탁에서 멀어졌다. 어렵게 차린 상.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한 시간이 늦은 저녁이 된 셈이 되었다. 배 많이 고프겠다 싶어서. 아들에게 먹어보자고 권했는데 요지부동이다. 에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먼저 먹는다고 말하고 한 술 뜨는데, 아들이 묻는다.



"엄마, 속상해요?"


그럼- 속상하지. 이렇게 맛있는 카레인데 안 먹어? 네가 다 준비했잖아. 감자도 네가 깎고, 당근도 네가 썰었지. 얼마나 맛있게 되었는데 -라고 하자, 아들이 묻는다. '사과를 넣었어요, 엄마?'


아니 이 여름에 웬 사과.... 아들이 원했던 바가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고 있었다. 녀석은 토마토가 아니고 사과를 넣고 싶었던 것. 카레에 사과를 넣는 건 할머니 스타일인데. 사과는 없어서 못 넣었다고 하니까 다시 약간 울상이 된 아들 옆으로 남편이 쓱 와서 앉는다.


그러자 아들은 이제 식탁 아래로 내려가버렸다. 정말 많이 심통이 난 모양이다. 나도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었다. 얼마나 먹네 안 먹네 실랑이가 길어질지는 알 수 없다. 배고파서 속상하고 화가 나느니, 차라리 나라도 좀 먹고 애를 달래 보자 싶었다. 내가 숟가락을 뜨자, 남편도 말없이 숟가락을 떠서 카레를 먹었다.




평소 같으면 어떻게든 아들에게 호기심을 일으켜 보고자, 할리우드 오디션 준비하는 연기자인 양, 오만가지 액션을 펼치며 먹방을 찍었을 것이다.


얼마 전 읽었던 '아이의 식생활' 책에는 이런 조언이 나온다. 아이들의 편식을 조금이라도 고치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그 음식을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책에서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평소 아이들이 아는 모습과는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만든 후에, 아이들에게 권했다. 결과는 - 맛은 똑같은데도 생긴 모양이 낯설어서 아이들은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낯선 모양의 과자를 아이들이 신뢰하는 주 양육자가 맛있다고 먹으면, 아이들은 엄마가 먹는 모습을 보고는 용기를 내서 따라먹는 아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 실험 결과를 읽고 나서, 나 역시 아들 앞에서 정말 채소를 맛있게 먹는 연기를 했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먹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단 한 사람. 아들을 위해서. 이렇게 맛있고 신선한 채소는 없다며 홈쇼핑 방송 쇼호스트 뺨을 치고 싶을 정도로 오버 연기를 했었다. 그 맛있다고 먹은 야채는 생 오이였다. 사실 평소에 오이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비빔국수 할 때 넣으려고 산 묶음 오이가 너무 많이 남아서 처리를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책을 읽고, 나만의 실험을 해보겠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아삭아삭 오이를 씹어먹으면서, 아 이렇게 물도 많고 시원하면서 사각사각 - 씹으니 너무 기분이 좋아진다고 환한 얼굴로 오이를 먹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말을 사용해서 오이를 맛있게 먹는 걸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느라 아들의 표정은 잘 살피지 못하고, 쌈장에 찍어먹으니까 간이 딱 맞잖아?라는 말을 하면서 와그작와그작 오이를 세 쪽째 먹고 있었는데... 나의 그런 얼굴을 빤히 보던 아들은 조용히, 내가 집어 드는 오이를 뺏어 들고는 한 입 베어 물었다.


아들이 오이를 먹는 순간, 나의 연기 가면은 깨져버렸다. 이렇게 빨리 아들이 호응해서,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오이를 먹을 줄이야.....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아들을 꼭 안아주면서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아들은 나의 리액션에 너무 기분이 좋았는지 잘 보라며, 오이를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카레를 얹은 밥을 먹으면서 오이를 먹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의 그 환한 미소에 나도 모르게 픽 웃었나 보다. 식탁 아래 앉아 몸을 배배 꼬는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약간 의아한 듯한 아들의 눈물은 이미 멈춰 있었다. 남편은 아들을 보고는 약간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배 안 고파?"


그 말에 아들은, 남편에게 약간 용기가 난 듯 물었다.


"아빠, 그 카레 맛있어요?"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평소보다 더 맛있는데? 하고 말이다. 이렇게 먹다 보면 두 그릇도 먹고 - 너 주려고 남겨둔 것도 다 먹을 수 있겠다면서 한술 더 떴다. 그러더니 정말 크게 한 숟가락 떠서는, 아들 보란 듯이 맛있게 입 안으로 밥을 넣었다. 뭔가 먹으면서 오버액션을 보이는 법이 없었던 남편인데, 그날은 내 눈엔 아들을 위해서 맛있는 연기를 하는 걸로 보였다. 아들은 아빠에게 토마토소스를 넣었냐 아니냐를 또 따지기 시작했지만, 남편은 진실과는 상관없이, 아들이 듣고 싶어 하는 대로 이야길 해 주었다. 토마토소스는 안 넣었다고 힘주어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들은 아들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나와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들은, 아빠 옆에 가서는 자신의 몫으로 차려진 그릇 앞에 앉아 카레 소스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러더니 아빠를 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말했다.


 "어? 맛있는데?"


아니, 아까만 해도 냄비 옆에서 맛을 보고는 그 맛이 아니라며 울었던 아들 어디 갔나. 허, 웃음이 났고 당황스러웠지만, 아들 앞에선 감춰야 할 감정이다. 능청스럽게 다시 이렇게 맛있는 카레가 없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아들을 보니, 이번엔 아빠의 먹방이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극적인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연기도 아닌 남편의 먹방. 오버액션을 해야 살아남는 연기를 하는 거라 생각한 나에게, 진정한 감정의 전달은 매소드 연기인 건가 하는 깨달음을 주는 걸까? 그러나 나는, 아들에게 내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게눈 감추듯 카레 접시를 비우면서, 앞으로 토마토소스를 카레에 넣는 모습도 절대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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