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71)
ㅇ월 ㄷㄷ일
젤다 공주와의 기억 하나를 우연히 찾은 뒤로, 그대로 남서쪽 방향으로 나아갔다. 탑 하나를 올라 주변 지도를 얻었다가, 새 인간을 테스트한다는 이상한 과학자를 만나기도 했고, 번개의 대지라는 곳에 불시착(?)해서 얼떨결에 숨겨진 사당을 찾고 히녹스와 한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대로 더 남쪽으로 갔다가 와슈어 언덕이란 곳에서 오랜만에 음유시인 카시와를 만나기도 했다. 그 커다란 악기를 들고 잘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카시와… 그는 여기서 다소 독특한 내용의 노래를 했다. 고대의 용사도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되어… 붉은 달의 밤에 받침대에 서라고?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붉은 달이 언제 뜨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엔 카시와의 노래만 듣고 다시 길을 떠났다.
하이랄에 서식하는 수목은 참 다양하지만, 생전에는 알았을 지 모를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을 지났다. 옛날에 읽었던 동화책에 나왔던… 나무가 실제로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슨 작은 별에 사는 왕자가 이 별 저 별 여행하다 비행사를 만나는 이야기였는데… 나무 이름이… 아! 바오밥나무? 였던 것 같다…
너무나도 굵은 나무 줄기에 감탄하며 나무 위로도 한번 올랐다가, 내려오기도 했는데…몬스터들이 구석구석 숨어 있는 것만 제외하면 거닐만한 숲이었다.
블루 보코블린을 처치 후 나무들을 뒤로 하고, 간만에 덩치 큰 동물들을 쫓아 사냥에 나섰다. 요리를 열심히 하다 보니 고기가 부족했기에. 특급 짐승 고기를 많이 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동시 소음이 적게 나는 은밀세트로 옷을 갈아입은 뒤 화살을 튼튼한 것으로 바꾸어 들었다.
사슴이 유난히 많고, 멧돼지도 많이 보이길래 쫓아 올라갔더니, 어느 새 산 중턱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 산, 기대 않고 올라왔다만 그간 올랐던 다른 산들과 많이 달랐다. 흰 눈 때문에 사냥 외에는 큰 소득이 없던 헤브라 산맥과 달리, 동물도 많고 과일과 다양한 식물이 천지로 널렸다.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수풍뎅이류도 두어 개 잡았고, 큰 버섯류들도 종종 발견했다. 왠지 신이 나서 보이는 대로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렇게 산을 오르다, 사당도 발견했다. 모. 라타니아의 사당은 그네처럼 생긴 발판이 많아, 자칫 잘못 발을 헛디딜 뻔 해서 계속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사당을 정복하고 밖에 나오니…
처음 보는 영롱한 옥색 빛이 산 전반에 퍼져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꽤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가 내 몸을 휘감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살짝 부는 가운데, 벚나무가 피어 있는 나무가 바위 계곡 너머에 보여서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굵은 벚나무 옆에는 깊지 않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 주위에는 놀랍게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빛나는 푸른 토끼>가 여러 마리 모여 있었다.
‘헉… 여기는 토끼들의 아지트?’
그런데, 그 토끼들 옆에는 빛나는 토끼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다른 동물이 있었다. 그 동물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몸을 낮추었다.
은밀 세트를 입어서인지 가까이 가도 놀라지 않는 그 동물은… 몸은 말처럼 생겼는데 얼굴은 푸른 토끼와 같았다. 혹시 올라탈 수 있나? 싶어 시도하려는 찰나… 그 신비한 동물은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엇…. 하고 놀란 사이에, 주변에 햇살이 비쳐들면서 공기가 온화해졌다. 주변에 있었던 빛나는 토끼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아… 루피를 쏠쏠하게 벌 수 있었는데… 아쉽네.
그런데 주변을 살피다 보니 큰 벚꽃나무 주변에 보물상자와 활력당근이 있는 걸 찾아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물상자를 조심히 열었더니 생각지도 못한 아이템이 나왔다! 무려… 고대의 고삐! 이거, 전에 얻었던 고대의 마구와 세트구나?
신비한 경험과 함께, 귀한 아이템을 찾아 기분이 좋았던 나는, 그 산을 내려와 더 남쪽으로 갔다.
어깨 높이만큼 자란, 긴 수풀 속을 헤치고 나아가니 잔디가 비교적 잘 정돈된 언덕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어딘데 이렇게 풀이 짧게 깎여 있지?
풀이 짧은 쪽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에 가까웠다.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몇몇 사람이 보여서, 나는 도로 쪽으로 가려고 방향을 약간 틀어 갔는데, 멀리 보이는 또 다른 언덕 위에는 내 눈길을 붙잡는 시설이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서 보니, 나무들이 모여 있는 석조 건물 위에 말 모양의 형상이 불쑥 솟아 있는 곳이었다.
말의 형상… 말 조각인가? 망원경을 거두고 그 조각 방향을 바라보는데… 젤다 공주가 노을 속에 서 있었던 모습이 훅 떠올랐다. 아… 여기, 젤다 공주랑 지나갔던 곳?
그렇다면, 기억의 빛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야!
어느새 말 조각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하루종일 헤매서 발이 좀 피곤하다 느꼈지만, 기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를 뛰어가는데, 시야에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하얀 백마가 서 있는 것이 들어왔다.
“…. 백마? 정말? 백마인 거야?”
나는 내가 본 것을 믿을 수 없어 두 눈을 비볐다가 다시 보았다. 분명, 순백의 백마였다…
백마… 이 하얀 말, 분명히 100년전, 내가 탄 적이 있다. … 이 말을 타고… 젤다 공주에게… 고삐를 건네주었고… 당근을 먹이고… 빗질을 해 주었던….
부드러운 눈빛을 지닌, 동그랗고 커다란 눈으로 나와 젤다 공주를 바라보았던… 이 백마!
나는 주머니를 재빨리 확인했다. 원기 물약이 다행히도 2병 있었다. 내가 최대 스테미너를 회복한 상황이긴 했지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백마는 체력, 스테미나 모두 최상급일 터…. 한번에 잡기 어려울 수 있다.
일단 은밀 물약을 삼킨 뒤 조심스레 몸을 낮추고 말 옆으로 다가갔다. 다시 이 말을 탄다면 기억을 찾을 것 같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넌 꼭 한번에 잡고야 말겠어… 다짐을 하면서도 나는 말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쪽을 보면서 몸을 낮춰 기어갔다. 이정도 최상급 말은 기척에 꽤 예민하기에, 이쪽에서도 말을 노리고 있다는 낌새는 최대한 죽여야 했다.
말 가까이 갔는데도, 백마는 다른 곳을 보며 경계를 하지 않기에 기회다 싶어 얼른 올라탔다. 말은 이내 나를 떨궈내려고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버티겠어! 버텨내겠어!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의 등을 계속 쓰다듬으며 허벅지의 힘으로 버텼다. 중간에 원기 물약도 한번 마셨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백마는 저항을 빨리 멈추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너와 함께 달리고 싶어… 속삭였던 것이 전해졌던 것일까?
말을 잡고 나니, 이 백마를 그냥 놓아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말을 탄 사람들이 빠르게 가던 방향으로 무작정 말을 몰았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길이 이어진 곳 끝에 마구간 표시가 있었다. 어라? 나 여기 언제 지나갔었나?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꾸 이탈하려는 말을 달래서 겨우 평원 변두리의 마구간에 도착했다. 아~ 여기 마구간이었구나… 시작의 대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발견했었던 마구간이었다. 그 땐 밤 늦게 도착해서 침대를 잠깐 쓰고 바로 떠났었지.
백마를 등록하려는데, 유난히 지쳐 보이는 마구간 직원이 주변을 서성거렸다. 신경이 쓰여,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너무 기운이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트롯이라는 이 마구간 직원은 특급 짐승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가격은 후하게 쳐준다면서… 주머니를 빠르게 검색해보니 마침 사토리산에서 잡았던 고기 중 특급이 있었다.
하나 건네 주니 트롯은 눈을 반짝이며, 사례로 100루피를 건네주었다. 우와?! 놀라는 내게, 다음에도 고기를 가져다 주면 사례를 하겠다고 했다. (꼭 기억하기 위해 적어둔다)
말을 등록하려고, 마구간 등록 창구에 갔다. 말 이름을 무엇으로 하겠냐는 질문에… 조금 고심했다. 이 백마에도 이름이 있었을 텐데, 그게 기억나지 않았다. 젤다 공주와 함께 이 말을 보살폈던 기억이 살짝 나는 걸 보니, 이 말은 내 말이 아닌 젤다 공주의 말이었을 것 같다.
말에서 내려, 말에게 활력당근 하나를 먹였다. 말은 기분 좋게 당근을 받아 우적우적 씹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 동그랗고 선한 눈빛.
말의 눈빛 덕분에 젤다 공주와 또 한 가지의 추억을 찾은 셈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랐을 때, 나는 마구간 창구에 이름을 알렸다.
“Memories… 로 ”
마구간 직원은 나를 보고 다시 확인했다.
“이 말의 이름은 메모리스…가 맞습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말의 이름은 그렇게 정해졌다.
말을 등록하고 뒤를 돌아보는데, 어떤 노인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와 백마를 번갈아 보았다. 노인의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맺혔다. 뭔가 사정이 있는 걸까,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정말 데리고 온 겐가… 백마가 있었어!”
자신을 토파라고 소개한 할아버지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그의 할아버지에게서 백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백마는 젤다 공주가 타고 다녔던 것… 하지만 지금 이 백마는 젤다 공주가 타던 백마의 후손일 것 같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보관했다 전해준 마구를 주겠네.”
토파 할아버지는 내게 왕가의 안장과 고삐를 주면서 바로 말에 장식을 얹어 주었다. 왕가의 안장과 고삐를 갖춘 말의 모습을 보니, 젤다 공주가 탔던 말의 모습이 확실히 기억났다. 아… 맞아, 이 장식이야!
나는 다시 말에 올라탔다. 메모리스를 잡았던 장소 근처에 있던 말 조각을 찾아보고 싶었다. 왠지 그곳에 젤다 공주와의 또 다른 기억이 있을 것 같았다.
활력당근 덕분일까. 메모리스는 박차를 가하자 너무나도 쉽게 속도를 올려 질주했다. 가는 도중 날씨가 급격하게 바뀌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메모리스는 아랑곳 않고 언덕 사이에 난 길을 따라 경쾌하게 달려갔다.
처음 말을 잡았을 때 보다는 확실히 말을 잘 들었기에, 메모리스에게 그대로 몸을 맡기고 편안히 있었다. 말은 이렇게 한번이라도 마음을 내어주면, 참 든든한 친구가 된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끈기있게 말을 보살피는 것. 그러려면 말을 이해해야 한다. 각각의 말이 지닌 다른 특성, 성격에 따라서 말을 대하면… 언젠가는 사람을 따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백마가 가는 대로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사딘 공원 옛터’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보니 역동적으로 뛰어오르는 말의 모습이 조각상으로 만들어져 서 있는 곳이었다.
말에서 내려 조각상 주변을 살폈다. 예상대로 기억의 빛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시커 스톤을 켜서 사진을 찾았다. 사진에 기록된 장면은 노을이 지고 있는, 아름다운 공원의 모습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 기억의 장소는 공원이 아니었다…
사딘 공원 근처, 언덕이 이어진 비탈길… 아까 메모리스를 잡았던 곳 근처에 젤다 공주와 내가 말을 타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젤다 공주는 메모리스를 … 아니 메모리스의 조상말을 타고 (ㅋㅋ)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유물 조사를 많이 다니려면 말타기를 배우는 건 필수였건만, 젤다 공주는 유난히 말 길들이기를 힘들어 했었다. 동물을 아끼고 사랑했던 그이건만…
젤다 공주가 갑자기 말 목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쓰다듬다 보면… 말에게 반드시 마음이 전해진다…”
“당신이 가르쳐준 덕분에 이 아이와 정말 사이가 좋아졌어요.”
아, 말 길들이기를 가르쳐 줬던 일을 말하는 거구나… 그때 내가 저런 멋진 말을 했던 기억은 없지만, 말 길들이기를 힘들어해서 곤란해하던 그를 보며 고삐 잡는 법을 알려 줬더니, 젤다가 내게 물어봤었지…
“링크는 어떻게 말을 그렇게 잘 다루나요?“
젤다 공주가 타던 말은 사실, 다루기 쉬운 말은 아니었다. 왕가의 성인 남성들이 타던 말 품종이었기에 젤다 공주에게는 다소 버거웠을 것이고, 성격이 온순한 편도 아니었기에…
하지만 끈기있던 그녀는 내 조언을 받아들였고, 정성을 들여 백마를 보살폈다. 그래서 이제 꽤나 그 말을 타는 데 익숙해졌던 것이다.
“… 이 왕가의 장비도 처음에는 이 아이와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익숙해져서 보기 좋아요.”
젤다 공주는 그 왕가의 장비가 자신의 어머니가 쓰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처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님이 쓰시던 거라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도 했다.
그리고 한번 더 말을 쓰다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란 게 정말 중요하네요......"
우리가 향하는 곳에는 사딘 공원이 있었다. 붉은 저녁 노을이 하늘을 가득 물들인, 아름다운 풍경 사이로 뛰어오르는 말의 조각상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젤다 공주는 한동안 말 없이 그대로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젤다 공주는 사딘 공원에 도착한 뒤에 말에서 내렸다. 말들은 여기 저기 나 있는 풀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젤다 공주는 언덕 아래 펼쳐진 광대한 하이랄 대지를 내려다보며 별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젤다 공주는 살짝 몸을 틀어 오른편에 있는 우뚝 솟은 산을 바라보았다. 정상 부근에 얼음과 눈이 쌓여 있는, 신비한 극한의 땅... 라넬 지방 쪽이었다. 하테노 마을에 갔다가, 라넬 산을 오른 적이 있었는데 방한 대책 없이는 얼마 가지 못해 얼어붙어버릴 것 같은 극한의 추위가 몰아치는 곳이었다. 하테노 마을은 그렇게 온화하고 따뜻한데 그 너머에 있는 산은 어떻게 그렇게도 추운 것일까?
그녀의 시선을 따라 쫓는데, 갑자기 젤다 공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너머에는 지혜의 신 넬의 이름을 딴, 라넬이라는 산이 솟아 있어요."
"[17세에 이르지 못하여 지혜가 부족한 자는 입산을 금한다]"
"... 라넬은 그런 관습을 가진 산이죠."
"힘의 샘에서도 용기의 샘에서도 제 힘은 눈뜨지 않았어요......"
지혜의 신 이름을 따서 '라넬'이라 불리운다는 그 산. 젤다 공주의 말을 떠올리니 생각났다. 라넬산 지혜의 샘까지 올라갔다가, 원념을 뒤집어 쓴 넬드래곤의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넬드래곤의 비늘을 받았던 일이 있었다는 사실.
100년전, 젤다 공주는 그 추운 곳에서 수행을 할 셈이었던 건가?
설마 하는데, 젤다 공주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라면...... 지혜의 신과 관련된 그 샘에서라면 어쩌면......"
기대를 걸고 싶은 마음. 아마 그 장소에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 힘을 일깨우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루 빨리 그 능력이 나타나 젤다의 ... 이 ... 무기력함을 상쇄하기를.
자신의 기대가 실제로 이루어질지 어쩐지 흔들리는 마음으로 젤다 공주는 나즈막히 말했다.
"근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지만 해 보지 않으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시도해 보겠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 희박하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저는 그것에 기대 보고 싶어요..."
그리고는 나를 향해 돌아보면서 말했다.
"내일 저는 17살이 됩니다... 그 산에 가 보려 해요."
내일이 17살... 그렇다는 것은...
이미 젤다의 일기장을 읽어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금 기억을 되짚어봐도 잔인하기 짝이 없다. 17살. 탄생에 대한 축복을 받아야 할 날에, 젤다 공주는 많은 이들과 죽음으로 작별을 해야 했다. 라넬산에서의 수행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슬픈 날.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다음 기억은 시커 스톤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바로, 라넬 로드 입구에서 찾았던 첫번째 기억으로 이어지리라. 그리고... 그 다음이 젤다 공주와 도망쳤던 그 숲길...
기억을 찾고 보니 어느 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공원 한켠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메모리스를 찾아 타고 마구간 방향으로 돌아갔다.
젤다.. 아니 젤다 공주와의 좋았던 추억도 잠시뿐이었다. 우리의 앞에는 너무도 큰 짐이 놓여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몰랐다. 차라리 모르고 있던 때가 더 행복했던 것이었을까? 운명은 잔인하게도 나를 빈사의 상태로 몰고 갔고, 나는 이제 그가 기다리는 하이랄 성으로 가기 위해 이렇게... 이렇게... 하이랄을 달리고...
차가운 비를 맞으니, 라넬 산에서 힘겹게 수행을 했을 젤다 공주의 모습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했다. 여러 기억들이 엉켜서,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내가 지나가는 길목 주변의 큰 나무를 쓰러뜨렸다. 메모리스가 놀라서 앞발을 들고 크게 울었다.
나는 메모리스를 겨우 달래어 마구간에 도착했다.
이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다음 마을로 서둘러 가야겠다는 마음에, 조금만 쉬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겔드 지방은 덥고 건조한 사막 지대이므로, 아마 메모리스를 데려가도 큰 도움은 안될 것 같기에 두고 가기로 했다.
마구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트롯이라고 하는 마구간 직원에게 길을 물었더니 방향을 알려 준다. 몬스터가 많다고 조심하라 하는데... 몬스터는 어디에나 많다. 특히 겔드 쪽이라고 더 많을까.
어젯밤에 그렇게 세찬 비가 내리더니, 거짓말같이 화사한 햇살이 대지를 비추는 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남서쪽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