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 사람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70)

by 김엘리


ㅇ월 ㄱㄴ일


하이랄 성을 나온 후, 며칠 동안은 처음 발을 내딛는 대지와 강, 숲, 산을 돌아다녔다. 되도록 마지막 신수가 있는 남서쪽 방향을 신경 쓰면서 가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만큼 하이랄 왕국은 넓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많다. 100년 전에도 이러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재앙의 잔재와 흔적을 돌아보는 건, 씁쓸하기도 하지만 보상이 숨어 있어서 안 뒤져 볼 수도 없다. 쉽게 부서지는 무기 때문에라도, 보물 상자는 무조건 열고 봐야 하는 법이다. 무기 외에 보석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러다 사당을 발견하면 들어가서 극복의 증표를 받았다. 사당은… 이제 대략 60개 정도 들어갔나 싶은데… 많이 찾았다 싶어도 또 발견되는 것이 신기하다. 만년 전의 시커족은 용사 단련을 위해 이렇게나 철저히도 준비를 했다는 건가?!


이제는 사당에 들어가면 꽤나 재미를 느끼는 곳도 생겼다. 처음에는 무섭고, 뭐가 나올지 몰라 긴장하기만 했는데 … 점점 사당의 시련에도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전투 사당은 이제 만나면 반갑기까지 하다.



하이랄 성에서 좀 떨어졌지만, 평원에는 어김없이 빨간 눈을 달고 돌아다니는 보행형 가디언들이 있었다. 처음엔 보기만 해도 몸이 굳어버리는 느낌이었지만… 이제 그쯤은 두렵지 않다.



보행형 가디언은 특히, 시커 스톤의 잠금 기능을 이용해 움직임을 잠깐 멈추고, 사방으로 뻗은 다리를 절단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작동한다.


고대의 무기가 있다면 금상첨화긴 하지만, 없어도 다리만 연이어 절단할 수 있으면, 철 해머 2개와 기사의 양손검 1개쯤으로도 해치울 수 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말이다.


좋은 무기가 별로 없을 때 도움을 주는 건 공격력을 높여주는 요리다. 공격력 업 요리 재료로는 예전에 필로네 지역에 갔다가 많이 따 놓았던 칼날바나나가 요긴하게 쓰인다. 칼날잉어나 칼날게도 좋지만, 쉽게 구해지는 재료가 아니라서 요즘엔 공업 과일찜이나 과일전골을 주로 만드는데. 조금 질린다. 다른 레시피는 없을까?



어제였나. 그렇게 보행형 가디언을 해치우고 돌아다니다가 젤다 공주와의 기억을 찾게 된 건….



다른 초원보다 들꽃이 더 많이 피었다고 느끼며, 하이랄 성의 북서쪽 지역을 하염없이 걷고 있을 때였다. 숲과 한참 떨어져 있는 풀밭인데, 굵은 나무 한 그루가 혼자 서 있다. 그 아름드리나무 주변엔 작은 덤불조차도 없었다. 그게 왠지 이상하게 느껴져 나무 가까이 가는데, 길게 하늘을 향해 뻗은 잡초들 사이에서 기억의 빛이 반짝거리는 걸 보았다.



시커 스톤을 켜서 같은 풍경의 사진을 찾아봤다. 사진을 보니 사진만으로는 장소를 찾기가 너무 어려울 것 같았다. 이런 풍경은 하이랄 평원에 비슷한 곳이 천지니까…


하지만, 사진을 들여다보다 눈앞에 보이는 하이랄 성 방향을 올려보니, 젤다 공주가 풀밭에 앉아 있는 모습이 살짝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가 있었다. 눈부신 햇살이 풀꽃들 위로 흩어지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야외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게 언제 있었던 일이지?



젤다 공주는 꽃의 모습을 시커 스톤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다양한 꽃을 보면서도, 학구적 태도는 여전했다.


“이것도… 아아, 저것도!”



음… 언제 있었던 일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타고 나왔던 걸 보면, 어디론가 가던 길이었던 것 같다…


젤다 공주는 꽃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하이랄의 꽃은 아름다운 것뿐만 아니라 염색이나 가공의 원료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리고 사람에게 유용한 능력을 주는 꽃도 있…”

친절히 이것저것 설명하던 젤다 공주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건….”



그의 시선이 머무른 곳을 보니, 고요한 공주가 피어 있었다. 이렇게까지 꽃을 가까이, 세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었는데… 하얀 꽃이라 막연히 생각했건만 아니었네.


”…고요한 공주라고 하는 멸종 위기종 꽃이에요. “



고요한 공주라는 꽃에 대해서는 젤다 공주가 설명해 줘서 알고 있었던 거였구나… 쉽게 찾지 못하는 꽃이라고 막연히 알았는데, 멸종 위기에 있었던 것인 줄은 몰랐었다. 임터와 오제이가 열심히 찾아다녔던,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는 꽃이기도 했지.


젤다 공주는 조심스레 꽃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얼마 전부터 인공 재배를 시작했지만, 좀처럼 잘 번식하지 않아서 …“



그러다 젤다 공주는 체념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멸종할지도 모르는 공주……인 거죠.”


그 말에 난 반쪽짜리 공주, 무능한 공주라는 비난을 들었다는 하이랄 왕의 말이 생각났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이 꽃에 자신을 빗대기까지 하고 있는 거야?


공주라는 이름이 붙은 꽃… 청초한 모습에 고요하다는 장식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젤다 공주가 그저 풀포기에 지나지 않는 꽃에 자신을 대입하고 있다니… 마음이 아팠다.


멸종이라니, 아니에요! 공주… 그런 꽃에 자신을 갖다 대지 마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살짝 떨리는 것 같은, 가녀린 뒷모습. 쓸쓸한 표정을 지은 공주의 어깨를 꽉 안아 주고 싶다….



그런데 공주는 뭔가 발견했는지, 갑자기 앞으로 무릎걸음을 종종거리며 나아갔다. 두 손으로 뭔지 모를 그것을 잽싸게 낚아채면서 외쳤다.


“여기 좀 보세요! 여기!”



응? 어리둥절한 내 앞에 젤다 공주는 두 손을 내밀며 신난 톤으로 빠르게 설명했다.

“이거, 별미로 유명한 식용종이지만 최근 연구에서 사람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판명되었죠!”



헉… 젤다 공주가 보여준 손 안에는 개구리가…

근데, 이거 고고개구리잖아? 이거… 100년 전에 이동 속도를 빨리 높여주는 효능을 발견했던 거구나…


젤다 공주는 조심스레 개구리를 감싸고 있었지만, 이내 그 개구리를 내게 내밀었다.



“요즘 성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효능을 상세히 조사하고 있는 중인데, 탁월한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당신도 부디 이 연구 조사에 협력해 주셨으면 해요! “



아!? 협력…? 하지만… 생 개구리를 …?

“링크는 뭐든 잘 먹으니까… 그렇죠? 자~! “

젤다 공주는 생글생글 웃으며 개구리를 내게 들이밀었다. 아… 물론 뭐든 가리지 않고 먹는 편이긴 한데… 생 개구리는 좀….


나도 모르게 역겨운 느낌이 들어 “엑“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젤다 공주는 아랑곳 않고 내 눈앞에 한번 더 개구리를 들이밀었다..


“자!”


아… 젤다 공주 너무하잖아…. 아무리 공주라지만….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헉… 개구리….!”

기억을 찾고 나서야 … 고고개구리는 왠지 징그럽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깨달았다. 빨리 이동하기 위해 가끔 만들어 쓰는 고고물약. 나는 개구리보다는 도마뱀을 사용해서 주로 만드는 편이다. 개구리보다는 도마뱀이 월등히 자주 발견되니까 그랬는데… 개구리도 풀밭에서 가끔 마주치지만, 왠지 꺼려지는 느낌이 들어서 안 잡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었을 줄은….


다시 기억을 떠올리다 나는 혼자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 웃어버렸다. 젤다 공주, 분명 일부러 그런 거야.. 내가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었겠지… 평소 무뚝뚝한 나와 다르게 정말, 어쩔 줄 몰랐었으니…



지나가는 바람에 100년 전 기억의 그날처럼, 가지각색의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 산들산들 춤을 추었다. 젤다 공주를 상징하는 그 꽃, 그날과 다르게 고요한 공주는 여기 없었다… 내 옆에 젤다 공주가 지금 없는 것처럼.


젤다의 연구실에 피어 있었던 고요한 공주가 떠올랐다. 마치 공주 대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마냥… 멸종할지도 모르는 위기의 꽃… 하지만 100년이 지나도 그 꽃은 살아남았고, 젤다 공주도 … 각성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이랄 성을 바라보며, 젤다 공주가 내게 장난치던 순간도 있었음을 생각했다. 환하게 웃으며 개구리에 대해 신나서 설명하던, 발랄한 모습도 의외였다. 잠시나마 우리는 힘든 현실을 잊었던 순간이었다. 재앙 가논만 아니라면 그렇게 밝게 빛나는 공주이건만……


난 … 다시 그의 아름다운 미소를 꼭 보고 싶다.

더 이상 마음 아플 일 없게, 지켜내고 싶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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