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억의 조각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72)

by 김엘리


겔드 방향으로 가다 보니, 지도를 얻지 못한 지역이라는 생각에, 높은 지대를 찾아 계속 올라갔다. 시커 타워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겔드 지역 시커 타워는 모두 두 곳. 겔드 지역에 가까운 탑 이름이 겔드의 탑이고, 또 다른 곳은 황야의 탑이었다. 처음엔 황야의 탑만 밝히면 지도가 다 열리겠거니 했는데, 아니어서 서남쪽으로 계속 내려가야만 했다.


겔드의 탑을 열자, 저 멀리서 모래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 미지의 사막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겔드의 탑에서 내려오다, 블랙 모리블린 두 세 마리를 해치우고 계곡 아래를 보니,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렸다. 근처에 마구간이 있다는 의미다. 마구간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행이다! 부족했던 화살도 마련하고, 요리는 부족하지 않은지 확인해야지.



겔드 캐니언 마구간에는 칸기스 할아버지도 있었고, 카시와도 있었다.



이제 여기저기서 여러 번 보았더니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부터 든다.


겔드 캐니언 마구간은 겔드 지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마구간이라고 했다. 내 짐작대로, 낮에는 너무 더운 날씨와 모래 때문에 말은 데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들 말은 이곳에 맡겨 두는 모양이다.



준비를 끝내고, 계곡 너머의 뿌연 황야를 바라보았다. 사막이라는 곳… 100년 전에도 왔었을 테지만, 지금의 나에겐 미지의 공간이나 다름없다.


출발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모래벌판으로 들어섰다. 바람이 꽤 많이 불어 모래먼지가 계속 피어올라 후드를 뒤집어썼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상당했다. 이거, 정말 생각치 못한 더위인걸?


열기에 생명력이 줄어들고 있다… 아… 어쩌지? 주머니를 뒤져보니 뭔가 꽁꽁 얼어붙은 요리가 있었다. 어? 이게 언제 생겼담….? 더위를 잊게 해 준다기에 얼른 입에 음식을 밀어넣었다. 얼음은 햇볕에 순식간에 녹아버렸지만, 신기하게도 더위가 가셨다.


모래 사이로 희미하게 남은 길 자국을 따라 속도를 내어 따라갔더니,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이내 시야에 푸릇한 야자나무들이 하늘로 뻗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는 뭘까? 하는데,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의 땅이 우르르릉 울리며 흔들리더니, 저 멀리서 어마어마한 모래바람과 함께 번개가 번쩍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커다란, 네 발 짐승이 걸어가는 듯 했는데… 발에는 보랏빛 불빛이 번쩍거렸다.



저것이 사막의 신수?’

모래먼지 속에서 천천히, 하지만 힘있게 움직이고 있는 그 물체는, 햇살을 받아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낙타 처럼 생긴... 망원경을 통해서 그쪽을 들여다보다가, 울림이 멈추어 시커 스톤을 집어넣었다.


이제 또 다른 신수를 만나러 가야 하는구나... 잠깐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르게 내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두렵기만 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어떻게든 해내리라. 어떻게든.



야자수가 늘어선 길 주변에 마침, 꽤나 날이 서 있는 창을 들고 서 있는, 붉은 머리의 여인이 보이기에 말을 걸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카라카라 바자” 라고 대답했다.


겔드의 마을까지 가는 길의 휴식처 같은 곳이란다. 그럼 여기가 마을이 아니구나…



그 창을 든 무서운 인상의 여자는 생각 외로 친절했다. 여행자라면 카라카라 바자에서 쉬어 가는 것이 좋다고, 사막의 기후는 밤에는 춥고 낮에는 매우 더우니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충고를 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브오이라 겔드의 마을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 여자는 신수가 날뛰고 있으니 마을 쪽으로 가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차피 신수 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신수가 날뛰는 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마을에 들어갈 수가 없는데 어떻게 족장을 만나서 신수에 들어가지??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겔드의 마을에 대해 물어보았다.

“겔드의 마을은 여기에서 남서쪽 방향에 있어. 이 부근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지. 교역으로도 유명해서 늘 불야성을 이루는 걸로 유명한 마을이야.“



교역으로 유명하다고? 사막에서 애초에 교역이 쉬운 것은 아닐 텐데…. 싶었지만. 불야성을 이룬다니 여행자라면 가 보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레 들 것 같았다. 그러나…


“다만, 겔드족의 규칙 때문에 브오이… 즉 남자는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


아, 브오이가 남자라는 뜻이구나… 겔드의 말인가? 흠… 남자가 들어갈 수 없다는 건… 겔드의 마을은 여자들만 있는 곳인가보네? 이제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어째서 남자가 들어갈 수 없는지, 그런 규칙은 왜 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여자들만 있는 마을이라니 이거 참… 흥미로웠다.



그녀에게는 신수에 대한 정보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신수 이름은 바. 나보리스. 얼마 전부터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해, 모래폭풍을 일으키고 번개를 내리꽂고 있어 아주 위험하다고 했다.


얼마 전 부터라는 건, 아마 다른 신수들이 이상 징후를 보였던 그 시점부터겠지… 번개를 내리친다니 만만치는 않겠구나… 아.


어쨌든 사막으로 가려면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주의를 한번 더 받고, 나는 그 앞에서 물러나 호수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막에 있는 호수라 그런가, 다른 곳보다 더 맑아 보이는 투명한 물 속을 보며 주위를 천천히 걷는데, 어라? 호수 안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시커 스톤을 켜서 자석 기능을 발동했더니, 호수 아래에 보물상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


거리가 너무 멀어 자성의 힘을 쓸 수 없었기에, 아이스메이커로 얼음을 만들어 보물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100루피가 들어 있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 뒤로는 마을에 있는 건물 안에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어떻게 하면 겔드의 마을에 들어갈 수 있을까?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싶어서 정보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게에 들어가니 처음 듣는 인사말이 들린다.


"브아사크"


일단은 뭘 파는지 알아보려고 물건을 사고 싶다는 말을 건넸는데, 사막의 신수가 나타난 이후로 물건을 갖춰 놓은 것이 없어서 진열대에 있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 옆에는 바로 여관이 있었는데, 여관의 주인도 상점 주인과 비슷한 푸념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정말이지... 사막에 신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손님이 완전히 줄어 버렸어..."



손님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그의 말에 그냥 가기가 왠지 미안해져서 푹신푹신 침대를 이용해 쉬어 가기로 마음먹었다. 신수의 발자국 소리가 시끄러워서 편히 쉬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하는 여관 주인의 말에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내가 자고 간다고 하자, 매우 기뻐하는 그였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다행히 신수는 크게 난동을 부린 것 같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잠이 들면 잘 깨지 않거니와... 쉽게 잠들어서 잠드는 데는 발군이라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었으니, 신수가 난동을 피웠는지 아닌지는 알 바 아니다. 나는 여관 주인에게 점심때 깨워 달라 부탁했기 때문에 잠깐만 자고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호수의 방향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본 풍경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시커 스톤을 켜서 사진기의 사진을 열어보니, 역시 예감이 들어맞았다 싶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사진기의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 본 덕인지, 아니면 기억이 점점 자연스레 돌아오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진기 속 모습은 노을이 지고 있는 저녁 시간의 풍경...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야자수 옆에 테리가 앉아 있는 것 빼고는 거의 변한 게 없네... 하는데, 점점 기억 속 풍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이 야자수가 늘어선 카라카라 바자 옆의 사막...



젤다 공주가 너무나도 위태로운 표정으로 허겁지겁 도망을 가고 있었다.



앗.. 젤다 공주의 앞을 가로막은 .... 저 이상한 복면의 녀석들은 ... 이가단? 100년 전에도 여전했구나!



이럴수가... 젤다 공주를 에워싼 이가단 세 명... 공주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호위 기사라는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공주가 두려움에 떨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그 때.

이가단은 드디어 공주를 잡았다며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었다...



참수도를 번쩍 든 이가단은 공주를 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재빠르게 무언가 뛰어드는 소리가 나고, 참수도가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공주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 눈을 감았으나... 사방이 의외로 조용하자 다시 눈을 떴다.



그녀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어디선가 내가 숨어있다 나타났기 때문이었을까?

아, 그래. 이 기억을 보니 이제 생각났다. 젤다 공주가 유물 조사를 위해 통보도 없이 가 버리는 일이 잦아서, 나는 한동안 그녀의 눈에 띄지 않고 몰래 미행을 다녔던 일들이 있었다는 것. 이 날도, 그녀가 혼자서 단독 행동을 해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가단이 내가 있는 줄 모르고 습격을 했었던 것이었다.



내가 한 번에 이가단 한 명을 해치워 쓰러뜨리자, 나머지 둘은 어쩔 줄 모르고 주춤거렸다. 젤다 공주 앞이라 함부로 싸우기 보다는, 겁을 줘서 보내버리고 싶었기에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 싶어 더욱 긴장했던 순간이었다.



그런 나를 완전 달라진 눈으로 보고 있었던 젤다 공주....

얼굴에 홍조까지 띄고....



나는 그 때 이런 모습이었구나...

공주를 호위하는 기사로써의 나는... 공주의 눈에 이렇게 비쳤었구나....



젤다 공주...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로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모습....

그러더니 갑자기 기억이 확 사라져버렸다.



헉....!

아 뭐지? 그 다음은 어떻게 된 거야~~~ 더 기억나게 해 달라고...

하지만 기억은 언제나 그쯤까지였다. 아마 그 이가단은 도망갔을 것이고, 나는 젤다를 호위하여 하이랄 왕궁으로 돌아갔겠지? 흠... 이번 기억은 상당히 아쉬웠다. 과거 나의 활약을 좀 더 보고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때 분명히 난 퇴마의 검을 들고 있었구나. 숲에서 봤었던 그 마스터 소드... 이렇게 기억 속에서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얼른 ... 가서 뽑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분명 이렇게 쉽게 부서지고 깨지는 기사의 검, 근위의 검과는 차원이 다를 터.



시커 스톤을 다시 끄고 넣으려고 하는데, 다른 때와 다르게 빛이 나길래 뭐지? 하고 봤더니...앨범에 담겨 있는 사진의 모든 장소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렇다는 건.....


"12장의 사진에 있는 장소를 모두 찾았다!"



내가 찾은 마지막 기억은....

젤다가 나를 누구보다도 신뢰하게 된, 그리고 마음을 열게 된 계기였다. 그것이 이런 곳에서의 이가단의 습격이었을 줄은... 몰랐다.


기억을 다시 돌이켜보다가, 젤다 공주의 일기가 생각났다. 내게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했던 일기 내용 말이다. 아마 그 일기를 쓴 날이, 이가단과 맞닥뜨렸던 이 날의 일이었을 거다. 젤다의 일기에는 내가 그녀의 목숨을 이가단의 칼날에서 지켜 주었다고 써 있었으니...


우리는 그래서 그 이후로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누구보다도 서로 ... 의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간 젤다와의 기억들이 하나 하나 떠올랐다.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던 눈빛도 떠올랐지만, 불안해 하면서도 자신의 결심을 밝히던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빛도 떠올랐다.


‘기억을 다 찾으면 오라고 했었는데…’


임파가 젤다 공주와의 기억을 다 찾으면, 자신에게 오라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네 번째 신수를 얌전히 만든 다음 가야지. 마지막 영걸 우르보사를 구해야 해…


그럴려면 겔드의 마을로 어떻게든 들어가야 한다! 금남의 구역에…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카라카라 바자 주변의 행상인들을 지나쳐 가는데, 외지인으로 보이는 왠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자일까? 아닌 것 같은데… 하일리아인이 분명한 그 남자는 약간 초조해 보였다. 일단은 말을 걸어봐야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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