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병원에 다닌다.
다만 예전처럼 환자를 직접 돌보지는 않는다.
지금은 치료의 ‘현장’이 아니라, 그 현장이 돌아가도록 뒷단에서 일하는 자리에 있다.
처음엔 낯설었다.
손끝으로 사람을 만지던 일을,
이제는 문서와 데이터, 일정표로 이어가고 있으니까.
환자의 이름보다 연구 번호가 먼저 보이고,
의료의 온도보다 시스템의 정확성이 더 중요해지는 자리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됐다.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일정 하나를 맞추는 일도
결국은 사람을 향해 있다는 걸.
임상은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미래의 환자에게 닿을 치료의 씨앗이고,
내가 맡은 작은 지원 하나가
언젠가는 누군가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예전엔 환자 곁에서 ‘지금’을 지켰다면,
이제는 미래의 환자를 위해 오늘을 기록한다.
돌봄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그 마음의 방향까지 달라진 건 아니다.
병원이라는 세계는 여전히 크고 복잡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가 맡은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예전보다 느리지만,
조금 더 깊게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