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첫날, 교수의 영어가 마치 물결처럼 흘러갔다.
단어는 알아듣겠는데,
문장이 머릿속에 닿기도 전에 다음 문장이 이미 덮쳐왔다.
모니터 속 얼굴들이 웃으며 토론할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 박자 늦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었던 건 영어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전 병원에서는
내 손끝이 곧 답이었고, 망설임 없이 움직이면 됐다.
지금은 키보드 위에서 단어를 고르고 문법을 맞추며
자주 멈춰 선다.
익숙하던 자신감은 잠시 접어두고,
나는 다시 초보자가 되어 있었다.
낯선 언어로 배운다는 건
단순히 단어를 익히는 일이 아니었다.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함께 흔들리는 일이었다.
교재 속 문장을 해석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남아 있던 오래된 습관들까지
같이 번역되고 있었다.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과
‘틀리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것도 그즈음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낮보다 밤에 더 자주 일어났다.
아이를 돌보고 병원 일을 마친 뒤,
밤이 깊어야 비로소 학생이 되는 나날이었다.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허탈함보다 뿌듯함이 먼저 남는다.
하루를 무사히 버텨냈다는
작은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가끔,
남편이 “수업 과제 많아?” 하고 물으면
그 한마디에 어깨에 쌓여 있던 긴장이
조금 내려간다.
누군가 내 노력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날은 충분해진다.
미국 대학의 수업은 어렵다.
하지만 그만큼 정직하다.
시간을 들인 만큼 따라올 수 있고,
포기하지 않는 만큼 성장한다.
영어 문장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중얼거린다.
“괜찮아, 조금 느려도 돼. 이건 단거리 경주가 아니니까.”
그래서인지
배움의 속도는 여전히 느리지만,
시야는 분명히 넓어졌다.
언어가 벽이 아니라
창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다시 세상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