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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Sep 08. 2019

새벽에 담배를 태우며 하는 생각



 글에 앞서, 나는 [간헐적] 흡연자임을 밝히는 바이다.


 흡연자면 흡연자고, 금연자면 금연자인 것을 앞에 구차하게 간헐적이라는 관형사를 붙이는 것은 무슨 구차함이냐고 코웃음을 치겠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 렇게 하면 글이 더 짜임새 있게 기워지고 더해지냐며 물으신다면 과학적 근거를 댈 수는 없으니 이에 대한 변론은 따로 덧붙이지 않도록 한다.


 흡연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대는 해가 서녘으로 기울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새벽 시간. 동양식으로 따지자면 丑시. 바로 소의 시간이다. 왜 하필 寅인時가 아닐까. 호랑이의 시간에 담배를 피운다고 하면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라는 표현도 쓸 수 있고 더 멋들어질 텐데. 어쨌거나 담배는 소의 시간에 피워야 맛이 좋다. 필터 끝에 타들어 가는 불빛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눅눅하게 깔린 어둠 속에서 점멸하는 불빛을 보며 항상 데미안을 떠올린다.

 


「당신은 언젠가 내게…….」그는 말했다.「음악이 도덕적이 아니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말했소.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 자신이 바로 그 도덕가가 되어서는 안 되오!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시오. 가령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어놓았다고 해도 타조가 되려고 애써서는 안 된단 말이오. 당신은 번번이 자기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자책하고 있소.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시오. 그래서 어떤 예감이 당신을 찾아들고 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에 당신의 몸을 맡기시오.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어떤 흠모하는 신의 뜻과 일치되는지를, 그들의 마음에 드는가를 생각하지 마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파멸해 가는 거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그저 안전한 땅 위를 걷게 되고 그러다가는 희석이 되어 버리는 거요. 이봐요,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프락사스요. 그는 신인 동시에 악마지요. 그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소. 아프락사스는 당신의 생각이나 꿈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것이오. 결코 이것을 잊지 마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흠잡을 데 없이 모범적이고 평범한 사람이 되면 그는 당신을 버릴 것이오. 당신을 버리고는 자기의 사상을 요리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찾아가고 말 것이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시오. 그래서 어떤 예감이 당신을 찾아들고 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에 당신의 몸을 맡기시오.' 이 구절이 내 속 어딘가에 인장처럼 박힌 탓이다. 카인의 표식처럼.

 

 나는 필터 끝에 매달린 담뱃불을 보며 나만의 '어떤 예감'을 들여다본다.


 이따금 니체의 말도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어오르기도 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나의 예감을 들여다볼 때, 내 속의 나의 예감 또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우리는 침묵처럼 무겁게 깔린 어둠 속에서 미끄러지듯 시선을 맞춘다. 그것은 무겁고 또 가벼우며, 쓰고 감미롭다. 연기는 우리 사이를 잇는 매개체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지고, 날린다.


 바로, [번번이 자기를 별난 사람이라고 느끼는 그 감정]을 축복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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