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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Nov 10. 2019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 없는 이유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가 나름의 미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인간의 찬사와 찬미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찬사를 덧붙인다고 해서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 인간에게 필요한 법률이나 진리, 친절과 예의도 마찬가지다. 이것 중 어떤 것이 찬사를 받는다고 아름다워지며 비난을 받는다고 더럽혀지겠는가? 에메랄드의 아름다움이 찬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추해지는가? 황금과 상아, 장미와 숲의 나무가 그렇던가?     

 

로마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5 현제 중 다섯 번째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상록 중 한 구절이다. 그가 안토니누스의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했던 때가 161년이었으니까, 1천8백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의 메시지가 빛바래지 않고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글 서문에 옛날 옛적 로마 황제의 말을 구태여 가져온 이유는, ‘우리의 가치’에 대해 논해보기 위해서다. 현대인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본인들의 공허함이나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존재를 옆자리에 구겨 넣는다. 마치 얼음 트레이 빈자리에 물을 채워 넣듯, 훵한 크리스마스 트리에 아무 장식이나 허둥지둥 매달듯이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에 깊이 빠져든다. 스스로 자신에게 뱉어주지 못한 말들을 다른 이가 대신 지껄여주길 바라면서. 때문에 그들의 비평은 마치 소셜커머스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상품처럼 곧 자신의 가치와 직결되고는 한다. 


 별점 다섯 개 중에 네 개 반! 
실물이 더 예뻐요!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더 귀엽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인생이 100자도 채우지 못하는 상품평으로 전락해버린다. 고유성과 그에 대동하는 아우라는 상실된 지 오래다. 성의가 없다고 표현해야 더 적절하려나. 어디서 본 듯, 읽은 듯한 비슷비슷해 보이는 발언들. 드라마에서 봤던가, 영화에서 봤던가?      


 “진짜 예쁘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예뻐. 아니, 내 눈에는 서울시에서 네가 제일 예뻐.”
 “넌 너무 작고 소중하고 귀여워.”
 “우리 아기 지켜주고 싶을 정도로 보호 본능을 자극해.”
 “코카콜라에 소송 걸래? 콜라병, 네 몸매 보고 본떠서 만든 거 아냐?”     


 아우렐리우스는 현대의 우리에게 묻는다. ‘에메랄드의 아름다움이 찬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추해지는가? 황금과 상아, 장미와 숲의 나무가 그렇던가?’라고. 이에 감명을 받은 것인지 몰라도 어떤 연사는 강연 중에 별안간 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 꾸깃꾸깃 구기고 구둣발로 쾅쾅 짓밟은 다음 객석을 향해 ‘이 더럽혀진 돈을 가지고 싶으신 분 계십니까?’라고 묻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관객 대부분이 주저 없이 번쩍번쩍 손을 들자, ‘여러분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라는 멘트를 던져서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에메랄드 보석처럼, 1등 당첨 복권처럼, 그 존재 가치에 대한 코멘트를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들의 가치는 퇴색하지 않는다. 다이아몬드가 ‘예쁘다’라는 칭찬을 듣지 못해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며, 몇천만 원이 쌓여 있는 적금 통장이 ‘사랑스럽다’라는 말을 밤낮으로 듣지 못해 자괴감에 휩싸이지도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노래 가사도 있었겠는가.     


Men grow cold as girls grow old
남자들은 여자들이 늙으면서 차가워지고

And we all lose our charms in the end
결국엔 우린 매력을 잃어가게 돼

But square-cut or pear-shaped
하지만 사각형이든, 배 모양이든

These rocks don't lose their shape
보석은 본 모양을 잃지 않아

- Nicole Kidman & Jim Broadbent - Sparkling Diamonds


 어린 나이에 시절 인연을 통해 얻는 코멘터리는, 미안한 얘기지만, 값이 그리 후하게 쳐지지 않는다. 쿠팡 상품평이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당신이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 ‘나 젊은 적에,, 남자들이,, 연애 한번 해보자고,, 문밖에 줄을 섰어,,’라고 회상하는 것과, ‘나 젊은 적에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 원 없이 도전해 봤고, 내 명예를 내 손으로 잡아서 지금 이 집을 얻게 되었지’라고 회상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에메랄드와 같은 값어치가 있는 일이 되겠는가?     


 다시 묻는다.

 당신의 삶은 작품으로 남겨질 것인가, 소셜커머스에 올라온 20자 상품평이 될 것인가? (15자 미만으로는 등록도 안 된다. 아, 생각난 김에 네이버 쇼핑 가서 밀린 상품평 올리고 적립금이나 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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