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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Oct 02. 2020

V8! V8! 해외에서 여자 혼자 매드 맥스 찍는 법

회사를 그만두고 여기저기 떠돌며 혼자 살기를 하던 시절, 호주를 거쳐 발리에 머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를 적어보자면 빈땅 맥주도, 저렴한 마사지도, 멍키 포레스트도, 자연 환경도, 바다도 아닌 교통 시스템과 관련된 기억들이다. 우붓에서 한달 살기를 할 집을 구한 날, 근처의 스쿠터 샵을 기웃거리다가 영업 마중을 나온 사장님께 “사실 난 운전 면허가 없다”고 말하며 ‘그냥 둘러 보러 왔다’는 말을 에둘러 했으나 사장님은 “너 자전거는 탈 줄 아냐?”고 되물으며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서 자전거는 탈 줄 안다니까 그럼 스쿠터도 탈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Only 10 Minutes.” 


“Sorry, what?”


“Take only ten minutes to learn how to drive.”



순간 내 귓가에 이효리의 텐미닛 노래 구절이 울려 퍼졌다. Just a ten minutes, 내 것이 되는 시간……. 사장님은 우리 집 8살짜리 조카도 타는데 왜 네가 못 타겠니,라며 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까지 흘리며 단숨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10분 간의 초스피드 강습 후 스쿠터는 ‘내 것’이 되었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발리편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때 사장님과 나, 아마 우리는 미쳤었죠……. 왜 하필 많고 많은 영화 중에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라고 묻는다면, 바로 발리의 교통 인프라 때문이다. 이해를 위해 잠깐 설명을 좀 곁들여 보자면, 




1. 도로에 신호가 잘 없다. 아니, 거의 없다.


2. 2차선 도로에선 큰 차가 대빵이다. 중무장 트레일러인 '전투 트럭(워 리그/ War Rig)'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와 관련하여 황당한 광경이 종종 연출되기도 하는데, 커다란 짐을 싣고 가던 차가 별안간 길 한복판에 멈추어 서 짐을 내릴 때 뒤에 차들은 자연스럽게 대기 신호에 걸린다. 


3. 우붓에는 비포장 도로, 특히 논밭 길 옆으로 난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이 많다. 밭 고랑이 파져 있기 때문에 자칫 핸들을 잘 못 움직이면 바로 구덩이 행이다. 하지만 발리니즈들에게 그런 도로 환경은 전혀 위협거리가 되지 않는다. 생후 몇 개월 안된 작은 아기를 한 손에 끼고 스쿠터를 운전하는 사람, 엄청 큰 물통을 등과 어깨에 하나씩 들쳐 메고 배달 가는 아저씨, 삼단으로 합체하여 운전하는 초등학생 아이들……. 


4. 도로에 자가용보다 스쿠터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 그래서 가끔 대기 신호를 받고 스쿠터 무리에 섞여 멈춰 있을 때면 거대 폭주조직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묘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다같이 두 손을 하늘 위로 치켜들고 V8!! V8!!이라고 외쳤다 해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도로 위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코너를 돌 땐 말이지~ 양손으로 다 브레이크를 잡지 말고 도는 방향의 브레이크만 잡아 봐. 예를 들어서 오른쪽 커브를 돌 때는 오른쪽 브레이크만 잡는 거야!"


자전거로 사이클링을 하던 호주인 아저씨에게 배운 코너링. 


“너 가방 열렸다아아------!”


천천히 달리는 나를 앞질러 가며 가방 잠그라고 신나게 소리쳐 주던 발리니즈 아저씨, 산길에서 쓰러진 스쿠터가 흙 길이 마치 제 침대인냥 편하게 누워있을 때 나대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스쿠터를 기상시켜주고 핸들도 제자리로 돌려주던 흑인 청년, 개떡같이 주차할 때 자리를 잡아 주던 이방인들, 헬멧을 대충 백미러에 걸치고 어딘가 다녀오면 헬멧 버클을 곱게 채워서 헬멧 걸이(?)에 걸어 놓은 얼굴 모를 사람들…

이렇게 나는 운전을 도로 한복판에서 배워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친절(?)이 모여 내 운전법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름하야 십시일반 교육법. 이것은 마치 플라톤이 제창하던 유토피아적 양육법과도 같았다. 공동체에서 아이를 함께 기르는 공동 육아법과도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은가! 마치 화이라는 영화에서 깡패 아빠들이 소년 하나를 살인 병기로 키워냈듯, 도로 위에서 스친 수 많은 인스턴트 교관들이 나에게 거친 도로 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나를 현지인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매드 드라이버로 키운 것은 8할이 비포장 도로요, 2할이 도로 위의 워보이들이었다. 


어쩌면 발리니즈들 눈에는 내가 워 리그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ex: 일방통행 길가 혼자 역주행하기) 내가 지금까지 운전을 수월하게 하고 다니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나를 피해 다니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 페이지를 마무리하는 순간 번뜩 뇌리를 스치고 있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또 저런들 어떠하리? 당신들의 가르침들… 영원히… 


“기억할게! (Witn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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