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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Oct 08. 2020

부족한 사람끼리 모이면 더 부족하지 않나요?

외로움에 관한 고찰

0.5 + 0.5 = 1이 아니라, 0.5 x 0.5 = 0.25가 아니냐는 발상이었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게 아니라 (멍청이 둘이) 얇은 종이 맞들려고 하다가 백지장 찢어진다! 정도가 되려나?

언젠가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연예인들을 모아 놓고 한국어 관련 퀴즈를 내고 맞추는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었다. MC가 한국어와 관련된 힌트를 주면 그를 바탕으로 외국인 게스트들이 정답을 맞히는 코너였는데, 중간에 MC가 게스트들을 향해 이런 대사를 했다.


“나도 부족하잖아(부족한 면이 있잖아). 여러분도 한국어가 부족하고. 부족한 사람끼리 만나서 (정답을) 완성시키는 거야!”


우리 모두 좌절하지 말고 힘내 보자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으나, 별안간 한 게스트가 손을 번쩍 들고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내뱉어 MC를 당황하게 했다.


“근데, 부족한 사람끼리 모이면 더 부족하지 않나요?”




 


0.5 + 0.5 = 1이 아니라, 0.5 x 0.5 = 0.25가 아니냐는 발상이었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게 아니라 (멍청이 둘이) 얇은 종이 맞들려고 하다가 백지장 찢어진다! 정도가 되려나?

그 장면을 보는데 문득 며칠 전에 가족들과 용인에 있는 한국 민속촌에 나들이를 짚신을 만드는 공방 앞을 지나칠 때 본 안내판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과거에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한 바람으로 짚신을 한 짝 씩만 보관하기도 했다’는 옛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속담이 여기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 속담 때문에 위와 같은 미신적 관례가 생긴 것인지 몰라도, 샤머니즘의 나라 답게 암암리에 많은 사람들이 옷장 속에 짚신 한 짝을 고이 보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짚신 한 짝으로는 길을 떠날 수가 없는 법. 짝과 짝이 만나야 비로소 신발의 온전한 기능을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너는 나의 반쪽!’타령이 등장한 것이었을까? 



멀리서 널 보았을 때

다른 길로 갈까 생각했는데

변한듯한 널 보고 싶고

짧은 인사할까 하는 마음에

두근대는 가슴으로 한 걸음씩 갈 때

네 어깨 손 올리는 다른 어떤 사람

화가 난 네 얼굴은 미소로 바뀌고

두 사람은 내 옆을 지나갔지

둘이 되어버린 날 잊은 것 같은 너의 모습에

하나일 때보다 난 외롭고 허전해

네가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그래서 넌 둘이 될 수 있었던 거야



둘이 되려면 이분의 일(0.5)가 필요한데, 네가 다른 어떤 사람과 눈 맞아 가버리는 바람에 일과 이 분의 일인 채로 남아 버렸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인데, ‘아니, 그럼 떠난 여자는 뭐예요? 그냥 1(정수)도 아니고 0.5(분수)짜리 인간이란 말입니까? 가사 속 남성 화자의 자아가 너무 비대한 거 아닌가요? 진짜 제 분수도 모르는 소리 하고 자빠져 있네 ………’라는 등의 이성적 추론은 잠시 접어 두도록 하자. 요지는 전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그 빈자리만큼 허하다는 시적인 의미이니…. 혹시나 1(온전한 정수, 짚신 한 켤레) vs. 2분의 1(=0.5 반쪽짜리 정수, 짚신 한 짝)이라는 뜻이었다면 바로 앞 문장의 격렬한 비판은 점잖게 사과드리겠다. 아니 근데 제목을 제대로 썼어야지 왜 2분의 3이라고 오해할 수 있을 법한 제목을 선정했나? 게다가 ‘네가 가져간 나의 반쪽(0.5) 때문에 둘(2)이 되었다’는 표현은 오해의 여지가 다분하지 않은가? ‘소수점 첫째자리 버림’ 화법도 아니고 뭐야 정말……. 어쨌거나 여기에서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더하기(+)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가사 속 남성 화자의 생각과는 다르게 서문에 나온 타국 출신 가수의 발언처럼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는(x) 행위라면? 

이 논리 속에서 반쪽짜리 인간들의 만남은 아무리 곱해봐야 점점 0에 수렴해 간다. 게스트의 말처럼, 부족한 사람끼리 만나면 더 부족해지는 것이다. 


‘이것은 필시… 둘이 만나 정수가 될 생각보다, 혼자서도 불완전 소수가 아닌 온전한 양의 정수가 되라는 뜻이다!’


아마 한국민속촌 관계자도 짚신 공방 안내판 앞에서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린 한 방문객의 후기를 읽으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마치 할머니 생신에 드릴 카드를 예쁘게 그려보는 수행 평가지에 ‘삼성 카드’를 그려 내는 한 초등학생의 답안 같달까… 어쨌거나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한국민속촌에서 1인 가구의 해답을 찾았다…! 외로울 때 외로운 인간 만나면 더 외로워진다! 그러니 외롭고 적적하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가정을 꾸릴 생각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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